과학연구

3명의 똘스또이

 2019.11.26.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군들은 문화정서적소양을 높여야 합니다.

혁명적인 사상의식과 고상한 도덕의리, 풍만한 감정정서는 혁명가의 사상정신적품격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4권 395페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56(1967)년 6월 27일 일군들과 함께 새로 번역되여 나온 예술영화를 보시게 되였다.

그이께서 이제 보게 될 예술영화에 대하여 설명하시자 한 일군이 쏘련예술영화 《고난의 길》을 보았는데 그것이 똘스또이작품이더라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고난의 길》은 아. 똘스또이의 작품이지만 이제 보게 될 《깝까즈의 포로》는 레브. 똘스또이의 작품이라고 알려주시였다.

일군은 똘스또이라는 작가가 쏘련에 두명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위대한 장군님께 그대로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쏘련에 똘스또이라는 작가가 두명이 아니라 세명이 있었다고 하시면서 레브. 똘스또이와 아. 똘스또이 그리고 아.까. 똘스또이 이렇게 3명이 있었다고 교시하시였다.

일군이 똘스또이라는 작가가 많기도 하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고나서 3명의 작가들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주시였다.

레브 똘스또이는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초엽에 이르는 82살까지 창작활동을 한 비판적사실주의작가였는데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 까레니나》와 같은 좋은 작품을 많이 쓴 사람이였다.

아.까. 똘스또이는 19세기 중엽에 창작활동을 한 비판적사실주의작가였는데 풍자시 《뽀뽀브의 꿈》, 서정시《로씨야국가의 력사》와 단편적인 소설, 극작품들을 쓴 작가였다.

아.까. 똘스또이의 작품들은 세계문학사에서 취급하지 않았기때문에 그의 이름은 로씨야문학계에만 알려져있다.

세계문학사에 일류급의 작가로 알려진 레브. 똘스또이와 아. 똘스또이는 로씨야귀족출신으로서 부르죠아교육을 받았으며 부르죠아군대의 장교생활을 하다가 탈퇴하여 인민의 편으로 돌아선 량심적인 애국자들이였다.

여기까지 이야기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에게 레브. 똘스또이가 장편소설 《부활》을 몇년동안 썼는지 알고있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이 7년동안 썼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가볍게 머리를 저으시며 레브.똘스또이가 7년동안 쓴것은 《전쟁과 평화》였고 《부활》은 10년동안 썼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있는데 그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스스로 10년동안 당대사회의 불합리성과 계급적모순을 분석비판한 글을 썼다는것은 장편소설 《부활》이 량심적인 창작태도와 진지한 노력의 산물임을 의미한다고 하시면서 레닌은 레브. 똘스또이를 가리켜 《로씨야의 거물》이라고 평가하였고 고리끼는 그를 《유럽소설계의 발자크, 쉑스피어와 함께 3대거장의 한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일군에게 아. 똘스또이가 자기의 자서전적인 소설 《고난의 길》을 20년동안 썼다고 하시며 이 소설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과 로씨야의 2월혁명, 사회주의10월혁명과 쏘베트국가의 창건, 공민전쟁과 같은 크고작은 사건들을 취급하면서 혁명과 지식인문제를 론하였는데 그것은 작가가 시대의 변화과정에 복잡한 정신적고충을 겪으며 진리를 탐구하였다는것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야말로 막힘이 없으시였다.

3명의 똘스또이로 시작된 위대한 장군님의 세계문학강의는 일군들에게 특히 일군으로서의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하여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