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령도자
《우리 어머님은 언제나 인민들과 고락을 같이하시였으며 남들이 겪는 불행과 고통에 대하여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면서 그들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하여 마음을 많이 쓰시였습니다. 우리 어머님의 인정세계에는 정말 끝이 없었습니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는 숭고한 인간애와 뜨거운 인정미를 지니신 위대한 혁명가이시였다.
고기는 물속에 살고 사람은 인정속에 산다고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인정미는 꽃에 비유하면 향기와 같은것이다.
꽃에 향기가 있어 벌과 나비가 찾아드는것처럼 인정미가 뜨겁게 넘치는 사람에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든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뜨거운 인정미와 성실한 인간성을 지니신 인간중의 인간이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인정미는 사람들을 혈육의 정으로 사랑하고 위하는 가장 친근하고 다정한 인정미였으며 사람들의 불행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는 불보다 뜨거운 인정미였다.
자신을 인민의 딸, 인민의 충복으로 여기시고 언제나 인민들을 혈육처럼 친근하고 다정하게 대하시고 인민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는 불보다 뜨거운 인정미를 지니시였기때문에 인민들은 김정숙동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서슴없이 내대였다.
항일무장투쟁시기 김정숙동지께서 도천리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나날 적들에게 체포되시였을 때 김정숙동지의 숭고한 인정미에 매혹된 인민들에 의하여 하루밤사이에 500명분의 량민보증서가 작성될수 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을을 지나시다가 밭갈이하는 집이 있으면 그 집안의 한식솔이 되시여 씨앗도 뿌려주시고 애기도 보아주시며 일손을 덜어주시였고 오래동안 앓고있는 한 로인의 집을 자주 찾으시여서는 정성껏 간호도 해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한 마을의 지주가 열병에 걸린 부엌데기소녀를 산중초막에 내다버렸을 때에도 한몸의 희생을 무릅쓰시고 소녀와 침식을 같이 하며 간호하면서 불쌍한 소녀의 생명을 구원해주시였다.
하기에 도천리사람들은 김정숙동지를 자기들 가난뱅이들을 구원하자고 하늘에서 내려보내준 귀인이라고 따랐으며 위험하기 그지없는 량민보증서에도 서슴없이 도장을 눌렀던것이다.
위대한
김정숙동지께서 지니신 인정미는 혁명에 대하여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그릇된 길을 걷던 사람들과 혁명을 멀리하던 사람들도 순간에 감화시키고 그들의 얼어붙었던 심장에 혁명의 불씨를 심어주는 커다란 감화력을 가지고있었다.
김정숙동지의 뜨거운 인정미, 숭고한 인간미에 매혹되여 사상과 정견, 신앙이 다른 각계각층의 광범한 인민들이 그 진실하며 웅심깊은 인정의 바다속에 뛰여들어 자기들의 삶을 빛내이고 항일대전의 승리와 새 조국건설의 위력한 력량으로 자라날수 있었다.
김정숙동지의 인정미에 끌리여 눈물많은 가정사를 놓고 한탄하며 세상을 멀리하던 장백현 신흥촌의 어느한 집 녀성도 조국해방을 위한 혁명의 길에 나섰고 해방후 청진의 거리에서 거지로 떠돌아다니던 한 처녀도, 친일파로 몰리여 모대기던 한 개인병원의사도 새 조국건설의 거세찬 흐름속에 뛰여들수 있었다.
김정숙동지의 인정미는 민족과 국적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한품에 안아주는 뜨겁고도 다심하고 웅심깊은 인정미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지니신 따뜻하고 차별없는 인정미에 의하여 항일무장대오안에서 함께 싸우던 중국인출신의 대원들과 지어는 일본인출신의 대원들도 친누나, 친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사상정신적으로 견실한 투사들로 자라났다.
주체60(1971)년 10월 위대한
그 편지는 해방후 어느날 위대한
주체35(1946)년 초 어느날 위대한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처녀들에게 위생사업도 하게 하고 밥상도 차려주시며 따뜻히 보살펴주시였다. 그리고 며칠동안 저택에서 함께 생활하시며 새옷도 마련해주시고 뜨거운 인정미로 그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시였으며 떠나는 날에는 위대한
그들중의 한 처녀가 25년이 지나 평양으로 떠나는 인편에 꿈같은 사랑을 받아안은 잊지 못할 추억을 담아 편지를 보내였던것이다.
위대한
참으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는 인민들에 대한 가장 뜨겁고 진실하고 웅심깊은 사랑으로 가득찬 인정미를 지니신것으로 하여 한평생 만사람의 사랑과 신뢰속에 계시였고 오늘도 위대한 인간으로 인류의 마음속에 영생하고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