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박사 부교수 박철
2021.9.20.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혁명생애는 오로지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바치신 위대한 한평생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한평생 오로지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시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남기지 않으시고 순간의 휴식도 없이 초강도강행군길을 이어가시다가 달리는 렬차에서 순직하신 장군님과 같으신 그런 령도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위대한 장군님의 성스러운 혁명실록의 갈피마다에는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신 절세의 애국자의 숭고한 세계를 보여주는 감동깊은 이야기들이 수없이 새겨져있다.
성스러운 혁명령도의 전기간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우리 인민과 새 세대들에게 만복을 안겨주시기 위하여 멀고 험한 초강도강행군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면서 1년 365일 사계절 어느 하루 쉬신적 없으신 어버이장군님이시였다.
그 나날 어버이장군님께서 뜻깊은 명절날, 자신의 탄생일마저 인민의 행복을 위해 바치신 이야기, 도시와 농촌, 벌방과 두메산골, 외진 섬마을과 어촌마을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 방방곡곡을 찾으시며 인민생활문제를 두고 자나깨나 마음쓰신 사연깊은 이야기들을 꼽자면 이루 다 헤아릴수 없다. 그중에는 이런 감동깊은 이야기도 있다.
주체71(1982)년 2월의 명절을 앞두고 당중앙위원회로는 위대한 장군님의 탄생 40돐을 성대히 경축할데 대한 절절한 청원의 편지들이 그칠새없이 올라왔다.
온 나라 인민의 한결같은 념원을 담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당시)에서는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해 거대한 업적을 쌓으신 위대한 장군님께 2월 16일에 즈음하여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해드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탄생을 맞으시는 위대한 장군님께 삼가 축원을 드리는 전체 인민의 뜨거운 마음을 헤아리시여 2월 16일 점심시간에 간소한 연회를 마련하시였다.
그 뜻깊은 연회에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원래 김정일동무는 절대로 자기의 생일을 쇠지 않겠다고 하였다, 사실 그전에는 그의 생일을 쇤적이 없으며 그저 집에서 식사나 함께 나누었을뿐이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그의 생일을 꼭 쇠여야겠다고 생각하였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는 연회참가자들의 가슴가슴은 세찬 격정으로 끓어번졌다.
1년 365일 언제한번 편히 쉬지 않으시고 인민을 위해 자신의 생신날까지 바쳐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단 하루만이라도 편히 쉬시옵기를 절절히 바라는 인민들의 간절한 소원이 풀리게 되였구나 하는 기쁨에서였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연회가 끝나자 위대한 장군님께서 또다시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였기때문이였다.
못잊을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김정일동지는 이때까지 언제 한번 생일때 쉬여본적이 없다고, 생일에는 좀 쉬여서 일하라고 하면 더 많은 일을 하는것이 자기의 보람이고 휴식이라고 하면서 밤낮없이 일만 하였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오늘은 꼭 쉬게 하려고 했는데 쉬지 않는군이라고 조용히 뇌이시며 이윽토록 창밖을 바라보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인민의 념원을 담아 친히 송시를 쓰시여 축복해주신 탄생일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송시의 구절구절을 마음속에 간직하시고 앞으로 혁명에 더 충실하실것을 맹세다지시며 헌신의 자욱을 이어가시였다.
인민을 위한 길에서 보람을 찾으신 분시이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의 탄생일도 백두산지구에 대한 현지시찰의 길에서 맞으시였다.
그해 2월의 명절이 갖 지난 어느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 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섭섭해하는 그들의 마음을 눅잦혀주시며 자신께서는 인민들을 푹 휴식시키기 위하여 될수록 국가적인 큰 행사들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고, 그리고 자신께서 평양에 그냥 있으면 동무들이 여러모로 마음쓸것 같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며칠동안 여기에 와서 일하였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가까스로 격정을 참던 일군들은 종시 눈물을 보이고야말았다.
세상사람들모두가 생일날이면 처자, 친척, 벗들의 축복속에 뜻깊게 즐긴다. 그리고 그해의 2월 16일은 어버이장군님 탄생 60돐이 되는 뜻깊은 날이여서 이날을 성대히 경축하려는것은 우리 인민들과 세계 진보적인류의 한결같은 소망이였다.
하건만 어버이장군님께서는 그 하루만이라도 즐겁게 쉬시옵기를 바라는 온 나라 인민들의 간절한 소원마저도 사양하시고 눈보라치는 백두산지구에 대한 현지시찰의 길에 계시였으니 일군들이 가슴가슴은 인민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격정의 눈물을 흘리랴 하는 생각으로 저도모르게 뜨거워났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생신날 단 하루만이라도 편히 쉬시였으면, 이것은 2월의 명절을 맞을 때마다 우리 인민의 가슴에 차넘친 소원중의 소원이였다. 그러나 인민의 이 소원은 언제한번 이루어진적이 없다.
인민생활을 높일데 대한 불후의 고전적로작을 발표하시며 그리고 인민군부대들과 인민경제 여러 부문 사업을 지도하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탄생일을 휴식없이 보내시였다. 금수산기념궁전(당시)건설장을 찾으시고 위대한 수령님을 더 잘 모실데 대하여 교시하신 력사의 그날도, 인민들의 식생활을 개선할 방도를 가르쳐주신 그날도 2월 16일이였으니 위대한 장군님께 있어서 해마다 맞으시는 탄생일은 항상 평범한 로동일이였다.
이 세상에 정치가들은 많아도 이렇듯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탄생일마저도 고스란히 바친 위인의 이야기가 기록된적은 없다.
참으로 위대한 장군님은 오로지 인민만을 마음속에 안으시고 인민의 행복을 위해 휴식도 때식도 뒤로 미루시고 자신의 탄생일까지도 바치시며 끝없는 헌신의 자욱을 새기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한평생 그렇게 단 하루의 휴식도 모르시며 불철주야로 헌신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로고속에 조국땅에 번영의 튼튼한 토대가 마련되고 인민의 값높은 생활이 꽃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