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조선에는 근면하고 재능있는 조선인민이 제조하고 즐겨마시는 평양소주와 개성인삼술, 불로술과 생강술, 감홍로와 인풍술을 비롯하여 훌륭한 술들이 많다.
그가운데는 국가연회상에 오르는 술들도 있다.
조선의 국가연회용술의 력사는
주체34(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식민지통치에서 조선이 해방되였다.
조선은 해방되였다고는 하지만 당시로서는 귀한 손님들이 와도 그들을 접대할수 있는 봉사체계도 없었고 손님들을 먹이고 재울수 있는 초대소조차 없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술을 마련하느라고 항일의 녀성영웅
해방이 갓 되였으니까 별수 없지 하고 다들 심상하게 여기였지만 김책동지만은 이런 실태를 두고 상당한 정도로 마음을 썼다.
《그는 우리 집에서 차린 식탁에 좋은 술을 내놓지 못하는데 대해 은근히 걱정하였습니다.》 (
김책동지는 나라사정이 딱한것도 사실이고 우리 수중에 돈이 없는것도 사실이지만
해방직후 조선에서 제일 좋다고 소문이 난 술은 룡강에서 만드는 술이였다. 그 술을 한 양주업자가 딸과 함께 만들어냈는데 해방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마셨다고 한다.
김책동지는 그들을 찾아 룡강으로 내려갔다.
김책동지의 이야기에서 큰 충동을 받은 양주업자는 나라에 양주기술자가 필요하다면 자기딸을 데리고가라고 하였다.
그 딸이 강정숙이였는데 강정숙은 그때부터 김책동지의 집에서 술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강정숙이 양주작업장을 꾸리기 시작하자 김책동지는 한 일군을 데리고 장마당에 가서 쌀을 사왔으며 김책동지의 숙소는 인차 양주장으로 변하였다.
며칠후 김책동지는 처음으로 뽑은 술을
술을 맛보신
조선의 첫 국가연회용술은 단순한 연회보장을 위한 술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