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특수위수구역으로 된 굴간

 2020.3.16.

위수구역은 제정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경비를 서는 지역이다.

일반적으로 중요군사대상이 자리잡고있는 곳을 위수구역으로 정하는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한 사람의 령구를 보관하기 위하여 굴간 하나를 특수위수구역으로 만드는 력사에 류례없는 일화가 태여났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혁명적동지애의 최고화신이시였다. 혁명은 곧 동지이고 동지는 곧 혁명이라는 철리에 기초하여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혁명투쟁을 시작하신 수령님께서는 혁명적동지애의 가장 아름다운 력사를 수놓아오시였다.》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이 벌어지고있던 주체40(1951)년 1월 31일 새벽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무한히 충실하였던 내각 부수상 김책동지가 희생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불과 몇시간전에 만나시였던 사랑하는 전사가 희생되였다는 비보를 받으시고 도무지 믿기 어려우시여 최고사령부를 떠나 그의 시신이 있는 내각청사로 향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책동지의 시신앞에서 그를 부르고 또 부르시다가 그의 림종을 지켜주지 못한것이 가슴에 맺힌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김책동지의 공적을 영원히 기념하도록 하기 위한 내각결정을 채택하도록 하시고 그의 장례를 잘 치를데 대한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군들에게 그의 묘지는 어디에 쓰기로 하였는가고 물으시자 한 일군이 모란봉에 쓰기로 하였다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즉석에서 그의 말을 부정하시며 평양시에 대한 적들의 폭격이 악랄하게 감행되는 조건에서 모란봉은 적당치 않다고, 모란봉에 쓰지 말고 대성산에 안전하고 맞춤한 자리를 잡아썼다가 전쟁이 승리한 다음 모란봉으로 옮기도록 하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살아있을 때에도 그의 운명을 지켜주지 못했는데 죽은 다음에라도 손끝 하나 다치지 않게 지켜주고싶다고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김책동지의 령구는 그가 사업하던 방에 안치하고 발인할 때까지 자신과 내각부수상들,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들과 정치위원들, 상들과 인민군대의 책임일군들이 교대로 지키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지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령구발인을 빨리 하자는 제기를 반대하시며 아무리 긴장한 전시조건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인민의 풍속대로 3일장으로 하여야 하겠다고 강조하시였다.

2월 2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인의 령구발인에 참가하시기 위하여 령구가 안치되여있는 방을 찾으시였다.

흰천이 씌여져있는 령구앞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흰천을 가슴아래로 내리우시고 붉은기를 덮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령구를 발인할 때에는 령구의 앞채를 자신께서 직접 메시였다.

한 일군이 자기가 메면 안되겠는가고 말씀드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과 김책동지와의 관계는 수상과 부수상의 관계이기 전에 준엄한 혁명의 길에서 생사운명을 같이한 혁명동지들사이에만 이루어질수 있는 전우의 관계였다고, 그것도 가장 가까운 혁명전우의 관계였다고, 그러니 령구의 앞채는 자신께서 메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앞채를 메시였다.

김책동지의 령구를 자동차에 옮겨싣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애써 참아오시던 오열을 터뜨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찾고 또 찾으시며 우리가 그렇게 찾는데도 눈 한번 떠보지 못하고 영영 가다니, 혁명을 같이하자던 우리를 두고, 시련을 겪는 조국과 인민을 두고, 해야 할 많은 일을 두고 이렇게 가버리면 어찌하는가고 비분을 억제하지 못해하시였다.

대성산에서 김책동지와의 영결식이 숭엄하게 거행된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객들이 돌아간 기회에 한 일군을 조용히 부르시여 아무도 모르게 특별과업을 주시였다.

그날밤 전화의 불비속을 헤치며 화물차 1대가 승용차의 안내를 받으며 극비밀리에 조심스럽게 북으로 달리고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물론 호송에 동원된 군인들도 무슨 일때문에 어디로 가는지 차에 싣고가는 호송대상물이 극비문건인지 아니면 국보인지 모르고있었다.

차행렬이 한참동안 달려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평안남도 덕천군(당시)의 어느 한 깊은 골안에 이르렀을 때였다.

몇명의 인원이 차에서 무엇인가 조심히 내리우고 그곳에 있는 잘 은페된 굴간으로 정히 날라들여갔다.

그로부터 얼마후 한 군관의 인솔하에 1개 소대의 군인들이 굴간앞에 당도하여 주야로 경비근무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그 구역은 일체출입금지된 특수위수구역으로 되였다.

경비성원들도 비밀굴간에 도대체 무엇을 보관하였기에 그처럼 엄엄한 경계근무를 서야 하는지를 마지막까지 알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의 어려운 때 혹시 나쁜놈들이 김책동지의 시신을 어쩔수 있기때문에 묘지에 빈관을 묻게 하시고 쇠로 만든 관에 그의 시신을 안치하여 극비에 이곳에 보관하도록 하시였던것이다.

한마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력사상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동지애로 진을 친 특수위수구역을 만드신것이였다.

이 사실은 위대한 수령님외에 몇사람밖에 누구도 모르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시도 그를 잊지 않으시다가 전쟁이 끝나갈무렵 그의 령구를 대성산에 옮겨오도록 하시였다.

이 세상에 기이한 전설들이 수없이 전해지고있지만 준엄한 시련의 시기 간악한 원쑤들의 더러운 손길이 닿지 못하도록 떠나간 혁명전사의 령구를 비밀리에 안치하였다가 해빛밝은 봄날의 언덕에 안치한 그런 전설은 알지 못하고있다.

정녕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동지들을 위해서는 정도 많으시고 눈물도 많으신 위대한 인간이시고 위대한 동지이시였으며 혁명적동지애의 최고화신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평생 수놓아오신 동지애의 력사는 위대한 장군님에 의하여 변함없이 이어져왔으며 오늘은 경애하는 3708 동지에 의하여 더욱 빛나게 꽃펴나고있다.

위대한 수령님들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계시여 동지애로 개척되고 전진하여온 우리 혁명은 동지애로 빛나게 완수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