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조국해방전쟁사의 갈피속에는 원쑤와의 판가리싸움에서 용감히 싸운 나어린 수호자들, 소년근위대원들의 위훈도 새겨져있다.
세상사람들은 오늘도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10대의 조선소년들이 벌린 용감무쌍하고 결사적인 소년빨찌산투쟁을 믿기 어려워하고있다.
인류전쟁사에는 개별적인 소년들의 투쟁위훈에 대한 이야기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다. 하지만 우리 소년들처럼 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조직적인 투쟁대오를 뭇고 적극적인 투쟁을 벌린 례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공화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는 소년근위대가 수많이 태여났다.
《우리 나라 소년들은 정말 영웅적인 소년들입니다. 지난 시기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청년들이 근위대를 조직하고 투쟁한 일은 다른 나라들에도 있었지만 소년들이 근위대를 조직해가지고 싸운 일은 드물것입니다. 소년들이 근위대를 조직하여가지고 싸운것은 우리 조국력사에 길이 빛날 일이며 세상에 내놓고 널리 자랑할만한 일입니다.》 (
조국해방전쟁시기 소년근위대원들의 투쟁은 10대의 나어린 소년단원들이 벌린 조직적인 투쟁이였으며 그 투쟁범위가 대단히 넓었다.
조선에서 침략자들의 피묻은 군화발이 닿는 곳마다에서 련이어 어린 복수자들의 대오가 생겨났다.
황해도지구에서는 구미포소년근위대, 중산소년공작대, 국사소년공작대 등이 조직되였고 평양시와 평안남북도지구에서는 모란봉소년근위대, 안주탄광소년근위대, 공산승리소년근위대, 선천애육원소년근위대 등이 무어졌다.
함경남북도지구에서는 박주산소년근위대, 불꽃소년근위대, 원흥소년복수대, 룡원소년활격대, 길주소년근위대, 수북소년근위대 등 원쑤들이 일시적으로 강점한 공화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소년근위대들이 련이어 태여나 주체39(1950)년 10월과 11월기간에 조직된 투쟁대오수만도 무려 60여개에 달하였다.
한개 소년근위대의 인원수를 5~30명으로 추산하여보아도 전국적범위에서 활동한 소년들의 수는 한개 련대규모와 맞먹는것이였다.
소년근위대는 비록 10대의 나어린 소년단원들로 조직되였지만 조직성과 규률성이 대단히 강하였다.
실례로 립석중학교 학생들로 조직된 안주탄광소년근위대원들은
소년근위대원들이 조직의 투쟁강령에 얼마나 충실하였는가 하는것은 근위대전원이 적들에게 체포되였지만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
아무리 전시라고 하여도 아직 아는것보다 모르는것이 더 많은 철부지소년들이 원쑤들과 싸우지 않는다고 탓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조국수호전에 떨쳐나 총을 들고 원쑤와 판가리싸움을 벌렸다.
소년근위대원들은 1950년대 조국수호자들중에서 가장 어린 세대를 대표하는 애국투사들로서 나어린 소년들까지 판가리싸움에 떨쳐나선것은 조국땅을 침범한 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전인민적항전이 얼마나 높은 단계에 올라섰는가를 뚜렷이 실증하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소년근위대원들의 투쟁은 활동범위나 대오의 규모에서뿐만 아니라 그 위훈과 공적 또한 세상을 놀래울만큼 대단한것이였다.
처음 소년들에게는 무기도 없었고 초보적인 군사지식도 없었다. 그러나 소년근위대의 투쟁형태와 내용은 대단히 폭넓고 다양했으며 원쑤들이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로 엉뚱하고 기발하였으며 대담한것이였다.
지남산인민유격대의 소년근위대원들은 사과에 작은 바늘을 꽂아 적들에게 먹이기도 하고 숨박곡질을 하는척 하면서 수십대의 자동차의 배기관에 무우토막을 틀어박아 적들의 기동에 큰 지장을 주는것으로 투쟁의 첫발을 떼였다.
꾀꼴새소년근위대원들이 두달 남짓한 기간에만도 4 000여명의 인민들을 대상으로 구두선전과 수천여장의 삐라, 벽보, 만화 등의 직관선전으로 사람들을 고무하였는가 하면 고원과 정주의 소년근위대원들은 적들이 둥지를 튼 건물에 람홍색공화국기를 힘차게 띄워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다.
꾀꼴새소년근위대원들은
안주탄광의 소년빨찌산대원들은 수십개의 못판을 도로에 묻어 적자동차들을 파괴하였으며 대담하게 적비행장에까지 들어가 신호등을 파괴해버렸다.
소년근위대원들은 가는 곳마다에서 적들의 통신선을 잘라버려 적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처음에 통신선을 절단만 하던것을 다음부터는 적들이 끊어진 부위를 찾을수 없게 피복안쪽의 쇠줄만 교묘하게 자르거나 끊어진 부위를 천으로 다시 감아놓기도 하였으며 단번에 몇십m씩 잘라 땅속에 묻어놓기도 하였는데 령미애육원소년근위대원들이 10여차례에 걸쳐 자른 전화선만도 1 200여m에 달했다.
신경이 마비된 적들은 도처에서 무리죽음을 당하였다.
소년근위대원들은 투쟁속에서 단련되였으며 더욱더 대담한 활동으로 적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전쟁의 혈액이라고도 말할수 있는 연유가 보관된 적들의 연유창고들이 공산승리소년근위대와 철원소년근위대원들과 같은 용감한 소년들에 의해 순간에 재더미가 되여 날아났다.
주체39(1950)년 12월초 원산항에 적들이 끌어들인 수많은 전투기술기재와 방대한 군수물자들이 단번에 불길속에 휩싸이게 한 유명한 사건도 나어린 두 소년근위대원들이 대낮에 해제낀 장거였다.
키가 장총길이보다 훨씬 더 작은 소년빨찌산대원들이 차디찬 얼음판을 기여 적병영에 들어가 기관총까지 탈취해오고 자기보다 몇배나 체통이 큰 원쑤놈들을 복수의 총탄으로 징벌하고 병으로 뒤통수를 내리치고 몽둥이로 때려서 처단한 그 용감한 투쟁은 참으로 력사에 전무후무한것이였다.
이처럼 조국해방전쟁시기 과감하게 벌어진 소년빨찌산, 소년근위대들의 투쟁은
나어린 소년들을 영웅적조선인민의 아들딸답게 용감한 소년근위대원으로 키워주신 분도 그리고 준엄한 시련의 시기 승리의 앞날을 바라보며 고향땅에 기여든 원쑤들을 족치는 투쟁에로 이끌어주신 분도 바로
어른들도 무색케 할 그러한 위훈을 세운 나어린 소년근위대원들은 천대받던 어제날의 식민지소년들이였다.
해방전 길가의 조약돌처럼 딩굴어야 했고 피여나기도 전에 된서리를 맞고 시들어버려야 했던 그들이였다.
그러나
하기에 그들은 당과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정심을 지니고 사랑하는 조국땅을 지켜싸우는 투쟁에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 싸웠던것이다.
소년근위대원들의 활동에 대하여 높이 평가해주시며 세상에 널리 내놓고 자랑할만한 소년영웅들이라고 치하해주신
그러시고는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경축 열병식에서 지난날의 소년빨찌산대오가 보무당당히 행진하도록 해주심으로써 조선소년들의 영웅성을 온 세상에 과시하도록 축복해주시였다.
조국을 보위하는 성스러운 싸움에서 세운 전투공로로 공민증보다 훈장을 먼저 받은 새 세대, 전화의 나날에 부모와 조국, 인민이 주는 사랑보다 수호자의 사명을 먼저 깨우친 소년영웅시대가 이 땅우에 태여났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나어린 소년영웅들을 배출한것으로 하여 소년근위대이름을 단 어제날의 소년근위대원들의 모교에는 1950년대의 그들의 투쟁모습을 그대로 형상한 조각군상이 세워져있다.
세계최초의 소년근위대원들의 자랑스러운 그 모습!
비록 나이는 어리고 키는 작지만 수령의 부름이라면 세월을 앞당겨 철이 든 용감한 소년들을 그리도 잊지 못하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