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천리마시대를 상징하는 기념비

 2020.12.7.

천리마시대를 상징하는 기념비인 천리마동상은 사랑하는 우리 조국의 수도 평양의 만수대언덕우에 조선인민의 영웅적기개와 무궁무진한 창조력을 과시하며 창공높이 솟아있다.

20세기초 망국의 비운이 드리웠던 조선을 돌아보고 간 유럽의 한 탐방객은 지게를 진 조선소년의 구슬픈 모습을 담은 조각상을 만들어 내놓았다. 세월이 흘러 영웅조선의 기상이 만방에 과시되던 때에 다시 우리 나라에 온 그는 천리마동상을 보고는 이것이 진짜 조선사람의 표상이라고 말하였다.

지난 시기 기마상이라고 하면 뛰여난 개인의 영웅성이나 위훈을 찬양하여 세우는 조각으로 인정되여왔다.

초기에 천리마동상우에 개별적인물의 모습을 형상하려고 하였던 조각가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의 모습을 형상하라고, 이 도시를 일떠세운 사람들, 천리마의 주인들이 어떤 개별영웅이 아니라 인민이라는것을 똑똑히 알리게 하라고 절절하게 교시하시였다. 바로 그날에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가 세월의 언덕을 넘어 우리 귀전에 숭엄히 울려오는것만 같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웅장하게 일떠선 왕재산기념비와 삼지연기념비, 개선문과 천리마동상, 평양지하철도벽화, 전경화 〈대전해방작전〉과 반경화 〈소왕청방어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혁명적대작은 다 대중교양의 거점으로 되며 승리의 한길로 전진하여온 조선혁명의 년대기와 조선로동당의 현명한 령도밑에 끝없이 륭성번영하는 우리 인민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서사시적화폭으로 펼쳐보이고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5권 338~339페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마동상을 천리마시대 우리 인민의 영웅적투쟁을 반영한 작품으로 만들것을 결심하시고 우리 식의 새로운 기념비창작에로 창작가들을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천리마운동을 세차게 벌릴것을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호소하는 주체47(1958)년 9월 당중앙위원회 편지를 피끓는 심장에 받아안은 우리 인민들은 천리마를 탄 기세로 질풍같이 내달려 혁명과 건설에서 새로운 기적을 련이어 창조하였으며 마침내 우리 나라는 온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천리마조선》으로 그 이름을 떨치게 되였다.

바로 이러한 때인 주체48(1959)년 4월 당시 모란봉공원건설장을 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수대언덕우에 천리마시대를 상징하는 기념탑을 하나 세워야겠다고, 동상은 말 같은것이 좋겠다고 교시하시였다.

창작가들은 천리마동상을 세우기 위한 크나큰 창작적흥분을 안고 초안창작에 달라붙었으나 어느 창작가도 기마상을 창작해본 일이란 없었으며 더우기 천리마의 형상은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만 있는것이여서 아무도 실지 눈으로 본 일은 없었다.

한달이상 창작한 초안을 가지고 첫 합평회를 가졌으나 저마끔 의견이 달라 하나도 통과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때인 주체48(1959)년 11월 17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마동상초안을 보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시된 초안들중에서 집체창작한 말 세필이 하늘을 향하여 달리는 초안을 자세히 살펴보시더니 천리마동상을 군중적으로 구상한것은 좋은 일이지만 말이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는것이 결함이라고 지적하시면서 말을 세필로 하지 말고 한필로 해서 각계층 인민들을 대표하여 남자와 녀자가 타는것으로 하면 어떻겠는가고 대번에 초안이 가지고있는 본질적인 부족점을 지적하시고 그 해결방도를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마는 상징적인 동물로서 비상히 빠른것을 상징하는것이니까 날개를 다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며 천리마에 날개를 달고 말을 한필로 하여 남녀가 타되 남자는 붉은 편지를 들고 녀자는 무슨 기구를 들게 하며 앞에는 남자가 타도록 하는것이 좋겠다고 교시하시였다.

창작가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3점의 초안을 완성하여 주체49(1960)년 2월말 위대한 수령님께 보여드리였다.

그때 창작가들이 가지고간 3점의 초안들은 천리마형상에서 속도를 위주로 한것과 기상을 위주로 한것 그리고 번개에 태운 천리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마의 속도를 위주로 남성로동자가 붉은 편지와 마치와 낫과 붓을 한손에 쥐고있는것을 형상한 두번째 초안이 좋을것 같다고 하시면서 한손에 붉은 편지 하나만 들게 하며 말의 배에까지 새털을 새겨놓았는데 그렇게 하니 새의 배같이 보이므로 없애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천리마를 탄 로동자, 농민의 형상으로부터 말의 날개와 그 털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어느 부분 하나 놓치지 않으시고 세심히 보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번째 초안과 두번째 초안을 대비하시며 초안 1번의 말머리가 좋으니 그것을 참고하며 세번째 초안에 있는 녀자의 형상이 좋으니 그것을 참고하는것이 좋겠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구름을 박차고 달리는 천리마의 기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구름을 형상한 조각대를 보시며 조각대는 좋기는 하지만 좀 물결 같은감이 있으니 연구하는것이 좋겠다고 교시하시였다.

창작가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은 때로부터 한주일 남짓한 사이에 천리마동상의 본작을 위한 축소모형을 완성하게 되였다.

주체49(1960)년 3월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축소모형을 가까이에서 다음에는 멀리에 서시여 주의깊게 보시고나서 아주 잘되였다고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천리마동상은 천리마시대를 상징하는 기념비인데 원형과 꼭같은 크기로 모형을 만들어 세워놓고 인민들의 의견도 들어보자고 교시하시였다.

하나의 기념비를 세워도 그것이 후세에 가서도 손색이 없을 불멸의 기념비로 되게 하며 거기에 인민들의 념원과 지향이 뚜렷이 반영되게 하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끝없는 탐구력과 한없이 겸허하신 인민적풍모에 창작가들은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창작가들은 한달도 못되는 사이에 실물과 꼭같은 크기의 모형을 만들어 현지에 세우고 두권의 의견기록부를 그밑에 걸어놓았다.

천리마동상이 일떠선다는 소식을 들은 각계층 인민들은 앞을 다투어 만수대언덕으로 달려와 자기들의 의견을 기탄없이 적어넣었는데 공통적인것은 동상이 좀 작다는것이다.

바로 이러한 때인 주체49(1960)년 6월 10일 모란봉공원을 돌아보려고 나오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마동상의 모형을 친히 보아주시면서 천리마동상이 좀 작지 않는가고 일군들에게 물으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며칠전에 지방에 나가면서 올려다보니 좀 작은것 같더라고, 자신의 생각같아서는 지금보다 2배로 확장하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하시면서 천리마시대를 상징하는것인데금년 8.15가 아니라 래년까지 하더라도 좀 크게 하여야겠다고, 위치는 잘 정했는데 천리마동상아래를 잘 정리해야지 잘못하면 말우에 또 말이 탄것같이 보일수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창작가들과 창작집단은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전달받자마자 단 36일동안에 당시까지 세계적으로 제일 큰 기마상인 천리마동상의 원형제작을 끝내고 석고취형과 주물작업을 다그쳐 그해 당창건기념일전으로 천리마동상을 훌륭히 제작해내게 되였다.

천리마동상의 시공을 맡은 건설자들도 대중적영웅주의와 창조적지혜를 발휘하여 마침내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49돐을 맞는 주체50(1961)년 4월 15일에는 력사적인 개막식을 가지게 되였다.

참으로 천리마동상은 위대한 수령님의 비범한 예지와 천재적안목에 의하여 태여난 천리마시대의 자랑찬 창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