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한없이 겸허하신 인민의 어버이

 2024.1.30.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민의 령도자로서의 품격을 훌륭히 갖추고 인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고있는 김정일동지가 우리의 사상과 령도를 믿음직하게 계승하고있기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는 오늘뿐아니라 앞으로도 모든 일이 잘되여나갈것이며 우리 혁명은 어떤 풍파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활력있게 발전해나갈것입니다.》 (김일성전집》 제94권 312~313페지)

주체60(1971)년 2월 16일, 민족최대의 경사의 날에 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은 영광스럽게도 위대한 장군님을 한자리에 모시게 되였다.

촬영소의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은 탄생일마저 편히 쉬지 못하시고 주체적문학예술의 대전성기를 펼쳐주시려 불면불휴의 로고를 바쳐가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르며 그이에 대한 존경과 흠모의 정이 가슴속에 가득차올랐다.

당시 문학예술혁명을 진두에서 이끄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직접적인 보살피심과 지도를 받으며 창작가, 예술인들은 위대한 장군님을 천리혜안의 비범한 예지와 무비의 담력,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왕성한 패기, 뜨거운 인간애와 한없이 넓은 도량, 고결한 혁명적의리와 겸손하고 소박한 인민적품성을 지니신 위대한 령도자로 높이 칭송하며 우러러 따랐다.

그 나날 온 나라 인민들도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의 마음을 안고 위대한 장군님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라고 높이 칭송하였다.

이날 온 나라 인민들의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의 정을 담아 창작가, 예술인들은 자기들이 창작한 충성의 송가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하렵니다》를 위대한 장군님을 모신 자리에서 합창하였다.

노을이 피여나는 이른아침에

인자하신 그 미소를 생각합니다

고요한 밤하늘에 별이 웃을 때

따사로운 그 사랑이 그립습니다

… …

그런데 묵묵히 노래를 듣고계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안광에는 저으기 심중한 빛이 어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한없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머금고 노래를 다 끝내자 촬영소의 책임일군에게 무슨 노래인가고, 누가 이런 노래를 지으라고 하였는가고 엄하게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그이께 우리모두의 심정과 우리 인민모두의 념원을 담아 노래를 지었다고 말씀드리자 아무 말씀없이 한동안 심중한 안색을 짓고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둘러보시며 한결 가라앉은 어조로 동무들의 심정은 알만하다고, 그러나 동무들이 그러면 안된다고, 자신께서는 이렇게 하는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러시면서 자신께서도 수령님의 한 전사이라고, 앞으로 함께 일하는 과정에 이런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그루를 박아 말씀하시였다.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마음을 괴롭혀드린 죄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이께서 책망하신 말씀을 그대로 따를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이를 높이 칭송하며 경모하는것은 온 나라 인민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였던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을 내세우는 일은 그 무엇이든 다 막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62(1973)년 2월의 어느날에도 평양대극장에서 자신의 탄생일을 축하하는 공연을 조직하려는 일군들에게 그런 공연을 조직하지 못하도록 오금을 박으시였다.

자신을 내세우는데 대해서는 그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신 위대한 장군님.

이렇듯 너무도 겸허하시고 소박하신 인민적품성을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기에 주체81(1992)년 4월 15일에는 예술영화화면에 자신의 영상을 모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영화예술부문 일군들에게 자신을 형상하겠으면 다음대에 가서 형상해야 한다고 그 일에 대하여서도 극력 반대하시였던것이다.

자신을 오로지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로, 근로하는 인민의 아들로 여기시며 그 어떤 특전과 특혜도 바라지 않으시고 조국과 인민을 위한 혁명의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한없이 겸허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고매한 풍모를 보여주는 이런 가지가지의 혁명일화들을 다 전하자면 끝이 없을것이다.

참으로 위대한 장군님은 한없이 겸허하고 소박한 인민적품성을 지니신 인민의 령도자,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