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 부교수 김용화
2019.3.6.
작고도 큰것이란 말이 있다.
오이 아홉개, 우리 당의 70여년력사의 추억속에서 아홉개의 오이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작은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모두가 알지 못하는 가슴뜨거운 이야기가 깃들어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혁명가적풍모에 있어서나 인간적풍모에 있어서나 그 누구도 견줄수 없는 위인중의 위인이시다.》
주체36(1947)년 겨울에 있은 일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저택의 자그마한 온실에서 갖가지 남새를 손수 가꾸시였다. 그해 겨울에는 남새들이 잘 자라서 첫눈이 내릴즈음에는 벌써 싱싱한 오이들이 주렁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날 한 일군에게 그 오이를 다 따오라고 하시였다. 오이는 모두 아홉개였다. 그이께서는 오이를 두개씩 나누어놓으시였다. 두개씩 네몫이 되고 오이 한개가 남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흰종이 넉장을 가져오게 하시더니 그우에 손수 김책, 최용건 … 하고 각각 이름을 쓰시였다.
그러시고는 그것을 네몫으로 나눈 오이우에 놓으시며 요즘 일군들이 일에 묻혀있다나니 건강이 나빠졌는데 입맛이라도 돋구게 나누어주라고 이르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은 오이 하나를 집어 한쪽옆으로 내놓으시였다. 결국 그이께는 오이 하나가 차례지게 되였다.
사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조국건설을 위하여 누구보다 헌신분투하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 인민을 1947년 인민경제계획수행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고 새해벽두부터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였다.
1월에는 수송문제를 푸시기 위해 청진철도공장을 찾으시였고 나흘후에는 원산철도공장(당시)으로 가시였다. 뒤이어 2월과 3월에는 평안남도의 여러군을 현지지도하시였으며 그후에는 문수봉에 오르시여 나무도 심으시고 남포시를 찾으시는 등 공장과 어장, 농촌으로 쉬임없이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였다.
조국과 인민을 위해 불면불휴의 로고를 바쳐가시면서도 언제나 자신보다 먼저 동지들을 생각하시는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일군은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사실 그 전해 여름에도 꼭같은 일이 있었다.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척분을 댁으로 청하시여 그에게 지금 건국사업이 복잡하다나니 우리 동무들이 밤잠을 자지 못하고 일하는데 많은 동무들이 건강이 나빠지고 허약해진다고 하시며 젖소 다섯마리를 드릴터이니 우유를 내여 우리 동무들에게 공급해주라고 하시였다.
당시로 말하면 해방되여 한해가 되나마나한 때여서 아직 인민생활이 넉넉치 못하였다. 일군들의 생활도 다를바가 없었다. 그런 형편에서도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새 조국건설의 앞장에 서서 한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였다.
그러한 일군들을 보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마음은 아프시였다. 오랜 세월 산에서 싸우느라고 갖은 고초를 다 겪었고 해방후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그들의 건강이 몹시 걱정되시였다. 그래서 그들의 영양보충을 위하여 여러가지로 생각하시던 끝에 우유를 공급하시려고 생각하신것이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에 부담을 주지 않으시려고 그 일을 가까운 친척분에게 부탁하셨던것이다.
몇달후 젖소에서 우유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며 책상우에 종이 한장을 내놓으시더니 손수 이렇게 쓰시는것이였다.
우유배정표;김책 한되, 최용건 한되, 최현 한되, … 김일성 반되.
전해에 있었던 이 일을 되새기는 일군의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오이를 몇개만 더 남겨놓자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음식이란 많이 먹어서 배가 부르는것이 아닙니다, 옛날부터 우리 조선사람들은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꼭 이웃끼리 나누어먹군 하였습니다, 항일빨찌산때에도 우리는 강냉이 한이삭이 생겨도 알로 나누어먹군 하였습니다라고 하시였다.
일군은 뜨거운것을 삼키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손수 나누어주신 겨울오이를 집집에 들고가서 전해주었다.
이 세상에 크고 귀한것이 많다한들 그 오이에 비할수 있었으랴!
언제나 혁명동지들과 고락을 같이하시며 자신보다 동지들을 먼저 생각하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그이께서는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에는 고난의 행군길에서 며칠씩 끼니를 건느시고도 마지막 한홉의 미시가루마저 어린 대원들에게 나누어주시였고 멀리 떠난 대원들을 생각하시며 쉰개의 사슴고기가루봉지에 이름까지 적어 건사하도록 하신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한홉의 미시가루》, 《쉰개의 사슴고기가루봉지》, 《우유배정표》, 《아홉개의 오이》…
우리 혁명의 장구한 력사에는 이런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이 새겨져있는가.
그것은 우리 혁명의 일심단결의 원천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의 단결이 어찌하여 깨뜨릴수도 허물수도 없는 공고한 단합으로 되는가를 산 력사적사실로 감명깊게 말해준다.
수령과 전사사이의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이런 혈연의 동지적사랑은 동서고금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혼연일체의 위대한 화폭으로 우리 조국 력사에 길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