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의 발단

 2015.10.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1959년부터 전국각지의 공장, 기업소들에서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이 힘있게 벌어졌는데 이것도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 들고 투쟁하는 과정에 일어난 운동입니다.》(《김일성전집》 제52권 343페지)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발기와 지도에 의하여 공장, 기업소들에서 가지고있는 공작기계로 국가계획외에 수많은 공작기계를 생산한 전군중적혁신운동이였다.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공업화의 기초축성과 인민경제의 기술적개건이 빨리 진척됨에 따라 도처에서 요구되는것은 공작기계였다. 급격히 높아진 공작기계에 대한 인민경제적수요를 다른 나라에서 사오는 방법으로는 해결할수 없었다. 다른 나라에서 공작기계를 사오려면 많은 자금이 있어야 할뿐아니라 시일도 오래 걸리게 된다. 당시 많은 자금을 주고 타닝반 한대를 사오는데 4년이 걸리였다.

만일 이런 식으로 타닝반 10대를 사오려면 40년이 걸려야 하였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에서 공작기계를 사오는 방법으로는 긴장한 공작기계문제를 풀수 없었으며 나라의 사회주의건설도 제대로 진척시킬수 없었다.

늘어나는 공작기계에 대한 인민경제적수요를 희천공작기계공장이나 구성공작기계공장과 같은 공작기계공장들에서 공작기계를 많이 생산하여도 그것만으로는 공작기계에 대한 수요를 보장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47(1958)년 9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철과 기계는 공업의 왕이다!》라는 전투적구호를 내놓으시고 금속공업과 기계공업을 빨리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릴것을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호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경성군 주을아마공장(당시)의 로동자들은 5대의 절삭기계를 가지고 온갖 창의창발성을 다 발휘하여 여러가지 공작기계들을 대담하게 자체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48(1959)년 3월 13일 주을아마공장 지도일군 및 로동자들과 하신 담화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을 광범히 전개하자》에서 주을아마공장은 작은 경공업공장이지만 마치 기계를 생산하는 중공업공장 같다고 하시면서 낡은 절삭기계 몇대를 가지고 자체의 힘으로 공작기계를 새끼친것은 용감하고 대담한 일이라고 하시였다. 계속하시여 이 공장은 당의 붉은 편지를 받들고 기술신비주의와 투쟁하여 승리한 공장이므로 철과 기계는 공업의 왕이라는 당의 구호를 써붙일 자격이 있다고 높이 평가해주시고 이 공장의 모범을 따라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을 광범히 전개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한점의 새싹을 통하여 온 나라에 잠재한 기계생산의 무수한 예비를 내다보시고 주체48(1959)년 5월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확대회의에서 다음해 5.1절까지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을 힘있게 벌려 국가계획외에 1만 3 000여대의 공작기계를 더 생산할것을 호소하시였으며 매개 공작기계가 한대이상의 공작기계를 새끼치는 군중적운동의 봉화를 지펴올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은 선반과 같은 일반공작기계를 새끼치는데 그치지 말고 대담하게 대형공작기계와 특수공작기계를 생산하는데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는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을 힘있게 벌려 다음해에 우리 나라의 공작기계보유대수를 3만대수준으로 끌어올리면 나라의 경제적위력은 더욱 강화되고 우리 혁명은 더 빨리 전진할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고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은 온 나라에 세차게 타번져 이르는 곳마다에서 기계가 기계를 낳고 공장이 공장을 낳는 기적이 련이어 창조되였다.

경성군 주을아마공장의 로동자, 기술자들은 자체로 44대의 공작기계를 생산함으로써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의 선구자적모범을 보여주었고 사리원기계생산협동조합에서는 4대의 공작기계로 주체48(1959)년 5월부터 7월사이에 60여대의 공작기계를 만들어냈으며 강원도 고산군 위남농업협동조합을 비롯한 수많은 농업협동조합들에서는 선반, 볼반 등 공작기계들을 만들었다.

이리하여 전국의 근로자들은 불과 1년동안에 국가계획외에 중소형공작기계뿐아니라 대형공작기계를 포함하여 1만 3 000여대의 공작기계를 더 만들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을 통하여 사람들의 머리속에 남아있던 기술에 대한 신비주의가 짓부셔지고 로동자, 기술자들로 하여금 대담하게 생각하고 대담하게 달라붙으면 자체의 힘으로 복잡한 기계설비도 능히 생산해낼수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가지게 하였다. 또한 이 운동을 통하여 인민경제의 기술적장비를 전면적으로 강화할수 있게 되였으며 중형기계들의 본격적인 생산과 기계제작공업에서의 전문화도 조직할수 있게 되였다.

당중앙위원회 주체47(1958)년 9월전원회의이후 이미 있던 기계공장들이 개건확장되고 새로운 기계공장들이 대대적으로 건설되여 중소형기계설비뿐아니라 대형기계설비들도 능히 생산보장할수 있는 현대적이고 자립적인 기계제작공업기지가 꾸려지게 되였다.

그리하여 1960년에 우리 나라에서 기계설비의 자급률은 90.6%에 이르렀으며 여러가지 기계들을 해외시장에 수출까지 하게 되였다.

이것은 빈터우에 창설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우리 나라 기계공업의 실태를 깊이 헤아리시여 일찌기 부속품생산으로부터 점차 현대적기계를 생산하는데로 넘어가도록 기계공업의 발전방향을 제시하시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와 크나큰 로고에 의하여 이룩된 빛나는 성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