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위인의 탄생일과 더불어 전해지는 인민사랑의 이야기

 2018.4.21.

우리 인민들은 이민위천을 한생의 좌우명으로 새기시고 인민을 위한 사랑의 한길을 걸으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으로 눈굽을 적시군 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은 력사상 처음으로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정치를 펼치시고 한평생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장군님의 고귀한 뜻을 받들어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인민대중제일주의의 성스러운 력사를 수놓아갈것입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탄생하신 4월 15일 태양절은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가장 경사스러운 민족최대의 명절이다.

해마다 태양절이 오면 온 나라 인민들이 기쁨에 넘쳐 행복하게 휴식하고있지만 한평생 인민생활향상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탄생일 하루만이라도 편히 쉬시기를 바라는 인민의 소원을 언제 한번 들어주지 못하시였다.

여기서 우리는 위인의 탄생일과 더불어 전해지는 인민사랑의 이야기를 몇가지 전하려고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후 새 조국건설시기와 어려웠던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맞으신 탄생일을 인민사랑의 이야기로 수놓으시였다.

주체 36(1947)년 해방된 조국땅에서 두번째로 맞이하는 4월 15일이였다.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위대한 수령님을 모셔온 항일혁명투사들은 그 전해에도 이루지 못한 간절한 소원을 담아 이 뜻깊은 날 아침 위대한 수령님께 처음으로 생일상을 차려드리였다.

늘 인민들을 생각하시며 소박한 식사를 하여오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심히 상을 받으시다가 사탕, 과자가 더 놓인것을 보시자 놀라시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엄하게 물으시였다.

투사들은 항일무장투쟁의 나날에는 늘 대원들과 같이 한홉의 미시가루도 나누어 잡수시였고 해방이 되여서도 인민들을 생각하시며 빛다른 음식을 사양해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날만이라도 따뜻이 받아주실것을 간절히 말씀올리였다.

사연을 아시게 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말씀이 없으시다가 동무들의 성의만은 고마우나 생일이라고 하여 어떻게 자신께서 그것을 받을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가 해방되였어도 아이들에게 사탕 한알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있는데 자신께서 그것을 받는다고 마음이 기쁠수 있겠느냐고 하시면서 끝내 수저를 드시지 않으신채 그 자리를 뜨시였다.

그리고 나흘후에는 몸소 평양곡산공장에 찾아오시여 로동자들에게 크나큰 신임과 사랑을 부어주시면서 사탕, 과자를 비롯하여 더 많은 식료품을 생산할 방도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가렬한 전쟁이 한창이던 주체 41(1952)년 4월 15일 탄생 40돐이 되는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이날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간호 《인민군화보》를 보아주시면서 사진들을 하나하나 평가해주시고 화보를 보다 전투성있게 만들데 대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화보》를 싸우는 전사들과 인민들을 고무하는 더없이 중요한 수단으로 보시고 탄생일에 즈음하여 조직된 중요한 모임까지도 뒤로 미루시며 오래동안 화보를 보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시기와 사회주의건설, 사회주의혁명시기에도 자신의 탄생일을 인민사랑의 하루로 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43(1954)년 4월 15일 평양력포목장사업을 지도해주시기 위하여 현지에 나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여 파랗게 자라나는 보리밭들이며 주위에 있는 살림집들을 주의깊게 둘러보시였다.

항일의 그날부터 새 민주조선건설시기를 거쳐 조국해방전쟁시기는 물론 이날 이때까지 생신날도 따로없이 모든것을 인민을 위해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신의 생신날에도 수도시민들에게 하루빨리 고기를 먹이시려고 쑥대무성한 력포벌의 황무지길을 몸소 헤치시며 력포목장을 찾아오신것이였다.

일군들이 큰 목장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는 형편을 료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처음부터 계획을 바로세우고 일을 주인답게 해야 일이 잘될수 있다고 따뜻이 일깨워주시고나서 주머니에서 수첩과 연필을 꺼내시더니 목장실태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 구일봉과 장재산기슭에 집짐승우리를 지을 자리까지 잡아주시며 목장관리운영에서 나서는 많은 문제들을 일깨워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화군의 농업협동조합들도 현지지도하시면서 전후의 어려웠던 나날 독창적인 농업협동화방침이 빛나게 실현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포전최뚝에 앉으시여 기계로 강냉이씨붙임을 하는것을 바라보시면서 조합의 농호수와 조합원수, 경지면적과 농민들의 생활형편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그러시고는 처음으로 농업협동조합을 관리운영하다보니 물론 많은 애로와 난관이 있을수 있다고 하시면서 그렇다고 동요하거나 주저할것이 아니라 확고한 신심을 가지고 농업협동조합을 공고발전시키기 위하여 적극 투쟁함으로써 모든 농민들에게 개인경리에 비한 협동경리의 참다운 우월성과 위대한 생활력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전후의 그 어려운 나날 농촌경리의 기술적개조에 앞서 경리형태를 개조할데 대한 가장 현명한 방침을 내놓으시고 친히 그 경험적단계를 설정하시여 농업협동화의 승리의 열쇠를 마련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숭엄한 모습은 오늘도 만사람들의 심장속에 깊이 간직되여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57(1968)년 4월 15일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을 계기로 하여 조성된 긴장한 정세로 하여 제기되는 문제들을 처리하느라 밤늦게까지 시간을 보내시면서도 오랜 시간에 걸쳐 해당 일군들에게 11장 149조나 되는 사회주의헌법초안에 담겨진 내용과 표현에 이르기까지 제기된 의견을 다 설명해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의 헌법은 사회주의건설의 튼튼한 법적무기로 되여야 한다고 그 리유도 설명하여주시였고 여러 일군들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도 명철한 해답을 주시였다.

온 민족, 온 세계가 다함없는 흠모와 축원의 인사를 드리는 주체 66(1977)년 4월 15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탄생 65돐을 개천지구탄광들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서 맞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체 인민이 올리는 축원의 인사를 받으시기전에 온 나라 어린이들과 청소년학생들에게 돌려지는 새 교복과 학용품들이 다 차례졌는지, 옷의 색갈이 몸에 어울리는지, 여러가지 학용품가운데 빠진것은 없는가를 알아보시고 탄광합숙의 부식물형편으로부터 탄광의 설비자재보장과 농장마을의 랭상모씨앗기르기정형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헤아려보시며 뜻깊은 생신날을 보내시였다.

혁명과 조국, 인민을 위하여 잠도 휴식도 잊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헌신적인 로고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77(1988)년 4월 15일 밤 세계 여러 나라 예술인들과 해외동포들의 련환공연을 보시고 집무실에 도착하시는 길로 해당 일군에게 전화를 거시여 북창화력발전련합기업소의 설비상태가 불량하다고 하는데 빨리 강판을 대주어 공기예열기를 비롯한 일부 설비들을 보수할 대책을 세우도록 하라고 이르시였다.

잠시후 또다시 전화로 그 일군을 찾으시여서는 지금 순천세멘트련합기업소의 소성로가 다 돌아가고있다는데 내화물을 잘 대주어 계속 만가동을 보장하도록 하라고 교시하시였다.

그리고 또 얼마후에는 김책제철련합기업소와 태천 2호발전소에 대하여 교시하시고 철도화물수송실적을 료해하시였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자정이 넘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화를 거시여 과학원의 어느 한 연구소를 새로 꾸리다보니 과학자들의 연구사업조건과 생활조건이 좋지 못하다고 하시면서 연구소에 건물과 주택, 책상, 의자, 침대, TV수상기를 비롯한 비품들과 가정용품들을 빨리 해결해주고 후방사업을 잘할데 대하여 지시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 오늘은 탄생일인데 좀 쉬시기를 간절히 말씀올리는 일군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더 늙기전에 한가지 일이라도 더 하자고 한다고 웃으며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헌신적인 인민사랑의 자욱을 그대로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인민사랑의 뜻을 정히 받드시여 《모든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라는 구호를 제시하시고 전당이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하며 인민에게 의거하여 투쟁해나가도록 하고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