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일제침략자들은 우리 나라에서 민족문화말살정책을 실시하면서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닥치는대로 파괴하고 략탈하여갔습니다. 일제침략자들은 강서고분을 파괴하고 무덤에 있는 귀중한 유물을 도적질해갔으며 우리 선조들의 안료제조기술을 알아내려고 중묘안의 벽화까지 까고 뜯어갔습니다.》 (《
일제는 식민지통치의 초시기부터 북부조선일대에서 력대 왕릉들뿐아니라 왕궁터, 절간들과 성들을 비롯한 귀중한 력사유적들을 파괴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귀금속공예품들과 도자기, 불상, 석탑 등 이름있는 유적유물들을 닥치는대로 략탈하였다.
고려자기는 그 색과 모양, 문양이 독특하고 아름다워 세상사람들에게 《천하의 보물》로 알려진 우리 인민의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이다.
일제는 고려인민들의 창조적지혜와 뛰여난 재능에 의하여 만들어진 귀중한 문화재보로서 세계도자공예력사상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고있던 고려자기에 커다란 탐욕적관심을 가지고 그 략탈에 광분하였다.
고려자기의 략탈을 위하여 일제는 고려봉건국가의 수도였던 개성지방을 비롯한 전국각지에 널려있는 고려시기의 무덤들과 고려자기가마터들을 샅샅히 도굴하였다.
일제는 1905년~1906년사이에 개성, 해주일대의 고려시기의 고분 약 2 000여기를 무참히 파괴하고 그안에 소장되여있던 고려자기를 비롯하여 각종 금, 은 및 청동공예품들을 깡그리 략탈하였는데 그 수량은 무려 10여만점에 달하였다.
이렇게 략탈해간 수많은 고려자기와 장신구들가운데서 가장 훌륭한것들이 각이한 경로를 밟아 왜왕과 귀족들의 손에 들어갔다. 초대통감이였던 이또 히로부미는 일본으로 갈 때마다 수많은 고려자기들을 꿍져가지고 가서 동료들에게 선물하였으며 103점의 최상급고려자기들은 왜왕에게 섬겨바쳤다. 그때 당시 일제가 략탈해간 고려자기들의 량이 얼마나 방대하였으며 그 우수성이 얼마나 뛰여났는가 하는것은 당시 도꾜에서 열린 일본 3대귀족들의 부장품전시회에 출품된 고려자기들을 구경한 수많은 일본사람들이 크게 놀랐다는 한가지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일제의 고려자기략탈행위는 1910년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로골적이고 조직적인 성격을 띠고 감행되였다.
일제는 1915년에 이른바 《시정5주년공진회》라는것을 벌려놓고 우리 인민들이 소중히 보관하고있던 고려자기들과 금속공예품들을 빼앗아 전시하였으며 《공진회》가 끝난 다음에는 《연구자료로 리용》한다는 구실밑에 4만 2 020점에 달하는 유물들을 모조리 일본으로 빼돌렸다.
한편 일제는 대도굴단들을 조직하고 거기에 헌병, 경찰까지 배속시켜 공공연한 도굴행위를 감행하도록 부추겼다. 이 도굴단들은 고려자기가 있다고 생각되는 무덤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과학적담보도 없이 사람이 겨우 드나들수 있을 정도로 구멍만을 내고 그안의 유물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몽땅 털어내군 하였다.
하기에 1977년~1983년 기간에 우리 나라 고고학집단이 개성부근의 고려왕릉들에 대한 실태를 조사해본 결과 그 어떤 하나의 유물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개성시 고남리에 있는 고려 3대왕 정종의 무덤인 안릉, 20대왕 신종의 무덤인 양릉, 오산리에 있는 16대왕 예종의 무덤인 유릉, 30대 저왕의 무덤인 총릉, 해선리에 있는 25대 경효왕의 비의 무덤인 영릉, 11대왕 문종의 무덤인 경릉 등을 조사한데 의하면 모든 무덤들이 일제의 야만적인 도굴행위로 하여 처참하게 파괴되여있었으며 무덤안에는 한개의 온전한 고려자기도 없었고 다만 깨진 쪼각들과 관못들만 남아있었다.
현재 일본의 국립, 사립박물관들과 미술관들에는 일제가 우리 나라에서 략탈해간 수많은 고려자기들이 전시되여있는데 그 가운데서 1류급에 속하는것만 하여도 다음과 같다.
도꾜국립박물관에는 약 4 000점의 문화유물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참대순모양 푸른사기주전자, 이또가 왜왕에게 바쳤다는 매화참대무늬박이 푸른사기병을 비롯한 100여점의 우수한 고려자기들이 있다.
교또대학박물관에는 이마니시가 1915년에 략탈해간 물고기무늬박이 푸른사기대접, 후지다가 략탈해간 모란국화무늬박이 푸른사기대접 그리고 출토자가 미상인 무늬박이 푸른사기대접과 꽃분, 《임신》이라는 간지를 새긴 무늬박이 푸른사기접시, 《정해》라는 간지를 새긴 무늬박이 푸른사기접시들이 있다.
그리고 하네꼬미술관에는 거부기무늬박이 푸른사기병, 학구름무늬박이 푸른사기차종, 국화무늬박이 푸른사기잔 및 잔대 등이 있고 오사까부립박물관에는 포도무늬박이 푸른사기주전자, 나라현의 야마또문화관에는 무늬박이 푸른사기병과 새김무늬 푸른사기함, 네즈 미술관에는 고려자기의 걸작품인 련꽃무늬박이 푸른사기정병과 포도무늬박이 쪽박모양주전자를 비롯한 44점의 고려자기들이 있으며 간또대지진때 불타버린 오꾸라의 옛집에도 우수한 고려자기 200 ~ 300점이 진렬되여있다.
이밖에도 일본민예관, 기그스이공예관, 나라미술관, 야마구찌녀자대학, 아사구사사, 소지사 등 박물관, 대학, 절간들에는 수많은 고려자기들이 전시되여있으며 일본전국에 있는 고려자기는 공식적으로 알려진것만 하여도 30 000점이상에 달한다.
일제의 문화재략탈은 고려자기략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일제는 북관대첩비와 13층 옥탑을 비롯한 수많은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적들에도 략탈의 마수를 뻗치였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조국전쟁시기 함경도지방 의병들이 가또 기요마사의 일본침략군을 쳐물리친 업적을 기념하여 세운 전승기념비이다.
로일전쟁시기 우리 나라에 침입한 일제침략군 려단장 이께다는 1905년에 림명역(오늘의 함경북도 김책시)에서 이 비석을 보고 이런 비석이 그대로 있으면 두 나라 사이의 감정을 해칠수 있으니 《친목을 영원히 보장》하려면 이것을 없애야 한다고 하면서 그것을 숨겨두고있다가 1906년에 누구도 모르게 도꾜로 훔쳐갔다. 이때부터 북관대첩비는 100년 세월을 일본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구니진쟈의 한구석에 놓여져 세월의 이끼속에 묻혀있었다.
일제는 각종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우리 나라 각지의 절간, 절터에 있던 탑들과 조각상, 불교경전들도 대대적으로 략탈해갔다.
이에 대하여 당시 애국문화운동 대표자의 한사람이였던 박은식은 1907년에 개성 부소산기슭의 경천사 석탑도난사건을 실례로 들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일본인이 조선에 건너온 후 력대 분묘의 옛 그릇, 옛 돈, 이름있는 절간들의 옛 종, 화로와 충신과 공신의 기적비, 기념품과 이름있는 정자나 루각의 시문판 등 도적을 맞은것이 그 수를 헤아릴수 없으나 그중 한두가지를 지적한다면 풍덕군 경천사앞에 13층 옥탑이 있었다. 옥은 청석에 근사하며 인물을 조각한것이 극히 정교하였다.…
일본고물상이 래왕하면서 몹시 탐을 내더니 일본궁내대신 다나까가 특명대사로 조선에 와서 군대 및 상인 50여명을 비밀리에 보내여 밤중에 탑을 가져 간지라 이튿날 아침에 주민이 알고 뒤따른즉 이미 배에 싣고 도망하였다.》
한 나라의 대신이라는자가 야밤에 몰래 남의 문화재를 훔쳐가는 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한것만 놓고보아도 당시 일제가 우리 나라의 문화재략탈에 얼마나 피눈이 되여 날뛰였는가를 능히 짐작할수 있다.
이밖에 일제는 1920년대 초에 대동군 률리면의 절터에 있던 8각5층 석탑도 략탈해갔다.
일제는 절간들에서 석탑뿐아니라 부처와 불교경전목판도 도적질해갔으며 지어 고분벽화들까지 마구 략탈해갔다.
일제는 1923년 10월 금강산 유점사의 유명한 53부처를 훔쳐갔으며 1928년 12월에는 황해북도 서흥군의 귀진사에서 《룡감수경》, 《법화경》, 《화 엄경》, 《십지론》, 《수륙문》, 《42장경》 등 200여점의 불교경전목판을 략탈해갔다.
그리고 1924년 10월 고구려고분인 쌍기둥무덤의 안길 량옆에 그려져있는 화려한 미인도와 무용도를 벽체채로 뜯어내고 그자리에 세멘트를 발라놓았으며 강서세무덤의 인동무늬를 뜯어내기 위하여 평형고임까지 파괴하고는 그자리에 석고를 바른 다음 그우에 무늬를 새로 그려놓는 교활한짓도 서슴지 않았다. 일제의 이러한 파렴치한 만행으로 하여 귀중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인 고구려고분벽화들이 수많이 략탈당했거나 참혹하게 파괴되였다.
우리 나라에서 감행된 일제의 문화재파괴략탈행위는 식민지공권력을 기본수단으로 하여 국가《시책》으로 감행되였다.
일제가 조선에서 감행한 문화재파괴략탈행위는 동서고금 그 어느 력사에서도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대규모적이며 조직적인 특대형국가대범죄이다.
일본은 과거 일제가 저지른 우리 나라 문화재파괴략탈범죄에 대하여 우리 민족앞에 사죄하고 략탈한 유물들을 전부 반환하여야 하며 응당한 물질적보상을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