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사 부교수 조광
2024.4.1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산간지대 군들에서 산에 있는 풀만 잘 리용하여도 많은 집짐승을 기를수 있습니다.》
산간지대의 특성에 맞게 축산을 발전시키는것은 더 많은 고기와 알, 젖제품을 생산하여 산간지대 인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경제발전을 추동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산간지대 인민들의 식생활문제를 원만히 푸시기 위하여 산지가 군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있는 창성군을 축산의 본보기로 마련해주시고 전국에 일반화하기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8(1959)년 7월 30일 창성군 당 및 정권기관, 경제기관 일군협의회에서 산간지대사람들은 산을 잘 리용하여야 잘살수 있다고 하시면서 산이 많은 군의 실정에 맞게 축산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시 군안의 적지 않은 일군들이 넓은 방목지가 있어야 축산을 발전시킬수 있는것으로 생각하고있는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하시면서 넓은 벌판에서 한사람이 수백마리의 가축을 몰고다니면서 방목하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우리 나라에서는 산을 잘 리용하여 축산을 하여야 한다고 일깨워주시였다. 그러시면서 넓은 방목지가 있어야 축산업을 발전시킬수 있다고 고집하는것은 우리 나라의 실정을 연구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것을 우리 나라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교조주의적태도라고 지적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성군에서는 초식동물을 위주로 하는 축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에 넓은 방목지는 적지만 산에 풀은 얼마든지 있다고, 방목지가 없는데서는 산에서 풀을 베여다 가축을 먹이면 된다고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풀만이 아니라 나무잎도 집짐승의 사료로 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창성군을 집짐승이 욱실거리는 축산골로 전변시킬수 있는 강령적인 지침을 마련해주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의 자연지리적조건을 속속들이 헤아리시고 양과 염소는 금야리에서, 젖소는 읍농장에서, 송아지와 게사니는 약수리에서, 토끼는 신평리와 옥포리에서 각각 경험을 얻게 한 다음 군적으로 일반화할데 대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하기 위한 나날에 군안의 일군들과 인민들은 지형답사대를 무어 집짐승먹이원천과 방목지들을 조사장악한 다음 축산을 발전시키기 위한 단계별계획을 면밀히 세우고 그 실현에 달라붙었다. 이 과정에 축산에 필요한 집짐승우리와 먹이조리실을 지방자재를 리용하여 건설하고 자체로 관리운영할수 있게 되였으며 산간지방의 특성에 맞는 집짐승기르기를 완성하였다.
이리하여 불과 반년 남짓한 사이에 군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철저히 관철하여 수많은 집짐승우리와 먹이조리실 등을 지어놓고 산간지대 축산업발전의 첫걸음을 힘있게 내디디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9(1960)년 7월 29일 전반적지역이 산지로 되여있는 평안북도 삭주군을 찾으시고 진행하신 당, 정권기관 및 지방산업공장, 농업협동조합(당시) 일군협의회에서도 산을 잘 리용하여 매 가정에서 돼지, 닭, 토끼, 양을 비롯한 집짐승들을 길러 부업축산을 장려하며 협동조합에서 젖소를 많이 기를데 대한 방향과 방도에 대하여 환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축사료 548t이면 젖소 60마리는 기를수 있다고 그 수량까지 헤아려주시며 소와 함께 돼지도 많이 길러 군안의 인민생활을 향상시켜나가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산간지대들에서는 풀먹는 집짐승을 위주로 하여 축산을 발전시킨 결과 품을 적게 들이고 한해 농산수입과 맞먹는 많은 수입을 얻게 되였으며 지방공업발전에도 큰 도움을 주어 군내 주민들에게 갖가지 식료가공품들을 공급할수 있게 되였다.
이처럼 산간지대 인민들의 식생활향상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산이 많은 우리 나라의 조건에서 축산이 가지는 의의를 깊이 통찰하시고 산간지대의 특성에 맞는 축산의 본보기를 마련해주시고 일반화하여 온 나라 축산업발전에서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도록 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