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평양출신의 반일의병대장 홍범도

 2026.8.24.

우리 나라의 반침략투쟁사에는 자체로 무기까지 만들어 외적들과 싸운 용감한 한 의병대장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가 바로 평양출신의 반일의병대장이며 후에는 독립군지휘관이였던 홍범도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홍범도는 의병대장을 하면서 쇠돌을 녹여 무기를 만들어가지고 일제와 싸웠습니다.》

홍범도
홍범도

홍범도(1868-1943)는 1868년에 평양 외성의 빈농가에서 출생하였는데 일찍 부모를 여의고 지주에게 고용되여 머슴살이를 하였고 1883년부터 1887년까지 평양감영에서 군대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부패무능한 봉건통치배들에 의하여 거의나 유명무실해진 무의미한 군대복무를 거부하고 이곳을 뛰쳐나와 황해도 수안제지공장과 허천군의 대동금전에서 로동을 하였다.

그후 홍범도는 삼수의 처가집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풍산군(오늘의 김형권군) 로은리일대에서 포수로서 산짐승사냥을 하면서 1907년부터는 안산사일대 포수들의 조직인 포연대의 대장으로서 포수들의 리익을 옹호하여 투쟁하였다.

남달리 애국심이 강한 홍범도는 1905년이후 일제가 《통감정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의 국권을 강탈하자 포수들속에서 반일애국사상을 고취하면서 의병투쟁준비를 갖추어나갔다.

일제가 의병투쟁을 방지하기 위하여 1907년 11월초부터 포수들에게서 화승총을 빼앗기 시작하자 홍범도는 후치령에 매복하여 총을 빼앗아가는 놈들을 전멸시키고 의병대를 조직하였으며 풍산, 갑산, 삼수 등 유리한 산악지대에 의거하여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치렬한 전투들을 벌리였다.

홍범도반일의병대는 후치령전투, 삼수성전투, 갑산전투 등 수많은 전투를 진행하였으며 이러한 전투들에서 일제침략자들과 그 주구들을 무자비하게 처단하였으며 일제의 식민지통치기관들을 파괴하였다.

이 시기 홍범도반일의병대는 자체로 화승총과 탄약을 만들어 무장을 보충하여 일제침략자들과 견결히 싸웠는데 당시 이 지방 인민들은 홍범도반일의병대의 용감한 투쟁을 높이 찬양하여 《홍범도의병가》라는 노래까지 지어불렀다.

홍대장 가는 길에는 일월이 명랑한데

왜적군대 가는 길에는 눈과 비가 내린다

에헹야 에헹야 에헹 에헹 에헹야

왜적군대 막 쓰러진다

홍범도는 의병대에 대한 일제의 토벌이 심해지자 보다 강력한 반일투쟁을 준비하기 위하여 의병대의 일부 성원들을 이끌고 1910년 가을 압록강을 건너갔으며 1919년에 북만으로 이동하여 400여명의 인원으로 조선독립군을 조직하고 총사령이 되였다.

홍범도가 거느린 조선독립군은 1919년 여름부터 연길, 왕청 등지에 지점을 정하고 이해 8월에는 국내에 진출하여 혜산, 갑산 등지의 일제침략군병영을 습격하였으며 뒤이어 10월에는 강계와 만포, 자성 등지의 적들을 기습하여 일제침략자들을 수많이 살상하였다.

그는 그후에도 독립군을 이끌고 1920년 6월 봉오골전투와 같은 해 10월 청산리전투에서 일제침략자들에게 타격을 주었다.

홍범도는 독립군부대들의 통합을 위하여 힘쓰는 한편 반일무장활동을 확대하기 위하여 투쟁하였으며 그후 중앙아시아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말년을 보내였다.

홍범도는 일제의 침략을 반대하여 싸운 평양출신의 반일의병대장이였으나 위대한 수령의 령도를 받지 못하는 그 어떤 투쟁도 승리할수 없다는 력사의 교훈을 남겼다.

그러나 당시 홍범도의 반일의병투쟁을 통하여 우리 인민의 반일정신과 애국심이 얼마나 높았는가 하는것을 잘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