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무장투쟁과 조국해방전쟁의
항일무장투쟁시기 조선인민혁명군은
당시 일제는 방대한 《토벌》무력을 동원하여 《맹공장추전술》, 《참빗전술》, 《요점배치전술》, 《포위소탕전》 등 저들의 모든 실전경험있는 전법과 전술들을 다 적용하였으나 천변만화하는 항일유격대의 전법에 걸려 꼼짝달싹 하지 못하였다.
적들이 제일 두려워한것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유인매복전술이였다. 적들은 이 전술에 《라와전법》이라는 이름까지 붙이였다.
《라와》라는것은 라망의 중국식발음으로서 하늘과 땅 그 어디에도 빠질곳이 없는 천라지망 즉 포위망, 함정이라는 뜻이였다.
주체24(1935)년 6월 중순에 진행된 로흑산전투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진행한 최초의 대표적인 유인매복전이였다.
로흑산전투에서 녹아난 적들은 왕보만에 둥지를 틀고있던 정안군놈들이였다. 로흑산의 왕보만에 주둔하고있는 정안군은 제1차 북만원정때 조선인민혁명군의 발뒤꿈치를 물고 집요하게 따라다니던 부대였고 1935년 음력 정월대보름날 새벽 사도구에 달려들어 마을을 재더미로 만들고 남녀로소 가림없이 학살한 독종들이였다.
그런데 정안군놈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이 왔다는것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좀처럼 싸움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을 통하여 정안군놈들이 겨울에만 유격대《토벌》을 하고 여름에는 될수록 혁명군과의 교전을 피하면서 산림대나 토비같은것만 친다는것을 료해하신
그러시고는 그날밤으로 정안군이 주둔하고있는 왕보만근처의 수림속으로 300여명의 부대를 은밀히 이동시켜 매복하도록 하시였다.
그다음 중국말을 아는 대원 10여명을 산림대로 가장시켜 왕보만으로 내려보내시였다. 마을에 내려간 유인조는 주민들의 하늘소도 빼앗고 남새밭의 울짱도 뽑아던지면서 한바탕 소란을 부리는척하다가 돌아왔다.
그러나 첫날은 놈들이 그 수에 걸려들지 않았다.
드디여 정안군이 무리를 지어 유인조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군견을 앞세우고 령마루에 오르는 척후병들의 뒤를 이어 누런것들이 우글우글 쓸어올라왔다. 놈들의 긴 행군서렬에는 박격포와 중기관총을 실은 말들도 있었다.
말을 탄 일본지도관놈이 대렬중간에서 《위세》를 뽐내였다.
적들이 산골짜기에 다 들어섰을 때
순간 원쑤들의 심장을 겨누고있던 총구들이 일제히 불을 토하였다.
이날 일제가 《철군》이라고 자랑하던 100여명의 정안군놈들은 몇분만에 몽땅 황천객이 되였다.
로흑산전투의 전과정은 유인매복전이야말로 유격전의 특성에 부합되는 가장 능률적인 전투형식의 하나라는것을 실증해주었다.
이때부터 일본군경과 위만군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이 전법을 《라와전법》이라고 하였다.
그후 적들이 제나름으로 조선인민혁명군의 유인매복전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도 많이 연구하고 출판물과 내적인 훈령을 통하여 산악지대에서 《라와전》의 함정에 빠지지 말데 대하여 거듭 강조하였지만 일단 《라와》에 걸리기만 하면 그 누구도 빠져나올수 없다는 공포심리가 일만군경들속에 열병처럼 만연되였다.
1937년 5월호의 만주경찰잡지 《철심》은 혼성려단 군사교관 이시자와가 쓴
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