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우리 민족의 자랑 - 민족고전 《신증동국여지승람》

 2015.7.3.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가진 슬기로운 인민입니다. 우리 인민의 력사는 자연과 사회의 구속과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빛나는 투쟁의 력사이며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담긴 수많은 문화적재보를 창조해온 자랑스러운 창조의 력사였습니다.》

(《김정일선집》 제2권 53페지)

뛰여난 슬기와 재능을 가진 우리 인민은 지나온 력사적과정에 세계에 널리 자랑할만한 문화적재부를 창조하였다.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문화적재부들가운데는 세계문화보물고를 풍부히 하는데 기여한 문헌유산들도 적지 않다.

인문지리책인 《신증동국여지승람》도 여기에서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는 우수한 민족유산의 하나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1481년에 완성된 종합적인 지리문헌인《동국여지승람》을 수정보충하여 1530년에 나온 책이다.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면서 직접적으로 리용한 자료는 《팔도지지》와 《동문선》 그리고 개인문집들이였다.

15세기는 우리 나라력사에서 중세문화가 일정하게 발전하던 시기였다. 농업생산을 비롯한 사회적생산이 늘어나고 상품류통과 대외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지리에 대한 지식이 더욱 요구되였으며 외래침략자들을 물리치고 나라의 방비를 강화하기 위해서도 지리학연구는 절실히 필요하였다.

조선봉건국가는 통치체계를 어느 정도 완비하자 나라의 전반적령역에 걸쳐 통치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전령토와 전체 주민들에 대한 통제권을 보장하고 사회정치관계와 경제문화생활을 종합적으로 조사장악할 목적으로부터 출발하여 전국적인 지리지편찬을 시도하였다.

1424년 봉건국가는 당시 춘추관 대제학이였던 변계량에게 우리 나라의 지지와 각 고을들의 연혁을 편찬할것을 지시(《세종실록》권26 6년 11월 병술)하면서 각 도에 《사목》을 하달하고 그에 맞게 지리적내용을 종합하여 올려보낼것을 지시하였다. 그에 따라 1425년에 《경상도지리지》가 2권 1책으로 편찬되였는데 그 항목에 따라 춘추관에서 전국적인 지리지를 편찬한것이 1432년에 완성된 《팔도지리지》이다.

《팔도지리지》의 내용이 당시로서는 비교적 완비되였으므로 1454년에 《세종실록》을 편찬하면서 그의 부록으로 첨부하여 《세종실록지리지》로 만들었다.

《팔도지리지》나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본특징은 경제지리, 자연지리, 력사지리관계자료를 위주로 서술한것이였다.

조선봉건국가는 《세종실록지리지》가 편찬된 다음 그 내용을 보다 풍부화한 새로운 지리지와 지도의 편찬을 계획하고 당시 집현전 직제학이였던 량성지에게 위임하여 1478년 1월 전국적인 지리지편찬을 완성하였다. 이것이 《팔도지지》(일명《속찬지리지》)이다.

《팔도지지》는 각 도를 한권씩으로 묶고 매 권에는 비교적 상세한 도별지도를 붙이였다.

《팔도지지》의 편찬은 조선봉건국가에서 진행하여온 지리지편찬경험과 성과의 총화였을뿐아니라 당시까지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진 지리학연구성과의 집대성이였다.

《팔도지지》에는 우리 나라의 자연지리, 력사지리, 경제지리관계자료들이 비교적 포괄적으로 반영되여있으며 그후에 편찬되는 지리책들의 기본자료로 리용되였다.

조선봉건정부는《팔도지지》를 완성하는 한편 그 항목으로 오른 산천, 고적, 명승들과 그밖의 부문자료들에 10세기부터 당시까지 문인들이 쓴 글들을 모아붙이도록 하였다.

이 일은 15세기말에 이름난 문인들이였던 로사신, 강희맹, 서거정, 성임, 량성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1481년에 《동국여지승람》으로 완성되였다.

《동국여지승람》은 모두 50권으로 된 방대한 책으로서 지리지로 편찬된 《팔도지지》이전에 씌여진 여러 문인들의 시작품을 비롯한 각종 운문들과 서, 기를 비롯한 여러가지 형태의 산문작품들을 모아 묶은 인문지리책이였다.

《팔도지지》가 《승람》 즉 명승고적들을 유람하기 위한 자료집으로개작되게 된것은 당시 《동문선》이 편찬되였던 사정과도 관계된다.

조선봉건국가는 1478년에 종합작품집인 《동문선》을 편찬하였다.

《동문선》은 세나라이후 고려를 거쳐 조선봉건왕조전반기에 이르는 기간에 생존한 우리 나라 문인들의 작품들을 모아엮은 133권의 방대한 분량을 가진 문헌이였다.

조선봉건국가는 《동문선》편찬에 참가한 문인학자들에게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도록 함으로써 이 사업은 순조롭게 전개될수 있었다.

《동국여지승람》은 1486년에 김종직에 의하여 1차 수정보충을, 1497년에 성현 등에 의하여 2차 수정보충을 거쳐 1530년에 전 55권의 《신증동국여지승람》으로 완성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자연지리, 력사지리, 경제지리적인 내용과 문학작품집의 내용까지 포함시켜 만든 《승람》인것으로 하여 편찬체계도 독특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건치연혁》(고을이 설치된 력사적인 래력),《관원》(해당 고을의 직제와 관료구성), 《진관》(진관제도에 소속되여있는 고을), 《군명》(해당 고을에 대하여 력사적으로 불리워온 딴 이름), 《성씨》, 《형승》(이름난 명승지), 《풍속》, 《산천》, 《봉수》,《관방》, 《궁전》, 《릉침》, 《릉묘》, 《인물》, 《효자》, 《효녀》 등 49개의 편목밑에 여러가지 사실들을 엮어놓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이러한 구체적인 항목(편목)에 기초하여 해당 지역의 력사적사실로부터 자연지리적대상물, 경제지리관계의 내용까지도 자세히 설명하고있으며 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구성과 그들의 성격적특징, 해당 지역안에서 널리 알려졌던 력사적인물들과 관료들, 지어는 효자, 렬녀라고 하던 인물들의 사실까지 모두 수록하였다.

실례로 《산천》편목 하나만 놓고보더라도 나라안의 매 지역에 대하여 산, 고개, 봉우리, 동굴, 벼랑, 큰바위, 언덕, 들판, 숲, 골짜기, 백사장, 강, 시내, 여울, 못, 곶, 나루터, 섬, 바다, 샘, 폭포, 언제 등 무려 51개 종류의 자연대상물을 소개하고있다.

뿐만아니라 당시 사회정치관계, 군사관계, 진관제도, 봉수체계와 우역제도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경도, 한성부, 개성부를 서두에서 취급한 다음 경기,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황해도, 강원도, 함경도, 평안도의 순서로 배렬하고 그안에 당시 지방통치기구의 급수에 따라 부, 대도호부, 목, 도호부, 군, 현으로 나누어 해당 고을의 편목별자료들을 서술하였다.

또한 《승람》으로서의 특색이 있게 구체적인 지형, 지물대상을 놓고 쓴 력대문인들의 시작품, 기문들이 해당 개소에 종합되여있어 우리 나라 방방곡곡에 있는 명승고적들에 대한 력대문인들의 글들을 일목료연하게 찾아볼수 있게 하였다.

여기에는 10세기이후시기로부터 16세기초까지의 기간에 활동한 문인 410여명이 쓴 각이한 형식의 운문 2 500여편, 루정, 성곽 등 각이한 대상에 대하여 쓴 기 500여편, 다양한 주제의 설화 80여편이 수록되여있어 종합작품집으로서의 가치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당시 봉건통치배들의 리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진 책이므로 일련의 부족점도 가지고있다.

그것은 수록된 자료들에 사대주의, 봉건유교사상을 반영하고 일부 내용서술에서 과학성, 정확성이 보장되지 못하였으며 도식적인 체계속에서 사실라렬식으로 한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15세기 조선봉건사회의 사회정치관계자료, 경제생활자료가 반영되여있을뿐아니라 세나라이후 각 고을의 변천과정이 력사적으로 개괄되여있으며 거기에다 력대 문인들이 남긴 시문들까지 종합되여있어 우리 나라 중세기의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방면을 연구하는데 훌륭한 자료로 되고있다.

이 책은 우리 선조들이 쌓은 지리학의 연구성과와 경험을 종합해놓은것으로 하여 민족고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자못 크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된 이후에도 개별적인 문인학자들에 의하여 여러가지 지리책들이 씌여졌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처럼 부피가 크고 방대한 내용을 포괄적으로 반영한 책은 다시 만들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우리 나라에서 중세기에 지리학연구분야에 남긴 가장 우수한 민족고전유산의 하나라고 당당하게 말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