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고대일본에 미친 조선의 영향 (1)

 2016.5.12.

조선의 영향밑에 원시적잠에서 깨여난 일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원래 우리 나라는 일본보다 훨씬 먼저 발전하였으며 일본의 문화도 우리 나라에서 넘어 간것입니다.》 (《김일성전집》 제40권 289페지)

력사적사실자료들이 실증해주는바와 같이 훨씬 먼저 발전한 우리 나라는 일본문화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였다.

B.C. 3,4세기부터 7세기 중엽에 걸치는 1 000여년간 조선사람들은 일본렬도에 진출하여 선진문명을 보급하고 그곳의 국가발생, 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일본에서 선진문명은 야요이문화(B.C. 4~3세기경)로부터 시작되고 고분문화(A.D. 4세기~7세기경)시기에 발전하였다.

이러한 선진문명은 결코 조선의 영향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우리 나라에서는 단군에 의해 B.C. 30세기초에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섰고 고조선이 발전하는 과정에 거기에서 갈라진 정치세력들에 의해 부여와 구려, 진국과 같은 나라들이 출현하였으며 청동기문화, 철기문화가 높은 수준에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사정이 달랐다.

우리 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B.C. 4~3세기경까지도 뒤떨어진 원시상태에 있었다.

일본력사책들의 표현대로 말하면 일본은 《갈대무성한 벌판》이였다.

이 시기에 일본원주민들은 돌로 만든 석기와 동물뼈로 만든 골각기, 활과 화살 등 원시적인 로동도구와 수단을 가지고 사냥과 채집, 물고기잡이를 하면서 살았다.

그들은 이러한 생산 및 생활조건으로 하여 정착생활을 하지 못하고 먹이장소를 찾아 떠돌이생활을 하였으며 기아와 추위, 병마와 짐승과 싸워야 했다.

일본원주민들은 마제석기와 질그릇을 사용하였는데 이때 리용된 질그릇이 죠몽식토기(노끈무늬형토기)라고 하여 이 시기 문화를 일본에서는 《죠몽문화》라고 한다. 신석기문화인 죠몽문화는 약 8 000년간 계속되다가 B.C. 4~3세기경에 이르러 갑자기 선진문명이라고 불리우는 야요이문화와 교체되였다.

그것은 고대말기에 조선사람들이 일본렬도에 대량적으로 진출하여 야요이문화를 보급한것과 관련된다. 이 시기 자연을 정복하고 바다를 개척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창조적투쟁이 강화되면서 바다길로 매우 가깝고 뒤떨어진 원시상태에 있는 일본렬도에로의 진출이 활발해지게 되였다.

야요이문화시기 조선사람들은 먼저 일본렬도와 제일 가깝고 해류관계가 유리한 조선동해 바다가에서 배를 타고 일본의 쯔꾸시지방(북규슈북부)과 이즈모지방(시마네현 동북부)에 대량적으로 진출, 정착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천강신화》를 비롯한 일본의 신화, 전설들에도 명백히 반영되여있다. 그에 의하면 《아마》계통으로 불리우는 조선계통 이주민들이 갈대무성한 쯔꾸시지방과 이즈모지방에 끊임없이 진출하여 선진문명을 보급한것으로 되여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조선적성격을 띤 야요이문화초기의 유적유물들인 집자리와 무덤 질그릇과 석기들이 집중되여있는데 이것은 이 시기 조선이주민들이 많이 정착하여 살았다는것을 보여준다.

쯔꾸시지방과 이즈모지방에 정착한 조선이주민들은 그후 점차 일본서부지방에 널리 퍼져 살았다. 그것은 일본서부지방에 쯔꾸시지방과 이즈모지방에 뒤이어 조선적성격을 띤 야요이문화의 유적유물들이 많이 분포되여있다는것과 조선사람들의 인류학적특징을 가진 뼈들이 적지 않게 드러난데서 알수 있다.

일본서부지방에 진출, 정착한 조선사람들은 고국에서처럼 마을들과 고을, 나라(소국)를 이루고 살았다. 일본에서 마을을《무라》라고 하고 고을을 《고호리》라고 하는데 이것은 조선이주민들이 이 시기에 마을과 고을을 이루고 살던 과정에 생겨난것으로서 당시 그들의 정착규모와 생활단위, 그곳에 남긴 커다란 영향력의 일단을 엿볼수 있게 한다.

야요이문화시기 일본서부지방에 진출, 정착한 조선이주민들은 마을과 고을, 소국을 거점으로 하여 논농사를 위주로 하는 농경문화와 철기, 청동기를 기본으로 하는 금속문화를 보급함으로써 원시상태에 있던 일본렬도에 선진문명을 펼쳐놓을수 있게 하였다. 이리하여 일본은 원시적인 잠에서 깨여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