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최근에 조사발굴된 고려시기의 절유적-광복사터

 2024.3.7.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가치있는 력사유적유물들을 더 많이 발굴하여 민족문화유산의 보물고를 풍부히 해나가야 합니다.》

광복사터는 강원도 판교군 사동리에서 발굴된 고려시기의 불교절간터유적이다.

이 유적은 강원도 판교군 읍에서 동남쪽으로 8㎞정도 떨어진 사동리의 절골에 자리잡고있다. 절골이 있는 곳에는 높고 가파로운 산들이 성벽처럼 둘러막혀있고 그 안에 평탄한 분지가 펼쳐져있다. 바로 이곳에 광복사터가 마치 천연의 요새속에 들어앉은것처럼 자리잡고있다.

광복사터에서 서북쪽으로 5㎞ 떨어진 곳에 천암리고인돌무덤떼가 있고 판교읍의 재궁산에는 재궁산봉수가 있다.

광복사터 전경
사진 1. 광복사터 전경

발굴된 광복사터의 기본구역면적은 1만 7 000여m2정도이다. 이 유적의 동서길이는 약 150m이고 남북너비는 약 120m이다.

절터유적은 동쪽구역과 서쪽구역으로 구분되여있으며 매 구역은 회랑으로 둘러막혀있다.

동쪽구역에는 남북중심축우에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제1건물터(문터), 탑터, 제2건물터(금당터), 제3건물터(강당터)가 차례로 놓여있으며 그 둘레로 회랑터가 돌려져있다.

서쪽구역은 회랑으로 둘러막힌 부분이 다시 중간회랑을 기준으로 남쪽부분과 북쪽부분으로 구분된다. 그 북쪽부분에 서쪽구역 제1건물터(금당터)가 자리잡고있다.

광복사 기본건물터들의 규모를 보면 동쪽구역 제2건물터(금당터)는 앞면 5간(21.7m), 옆면 4간(12.7m)이고 몸채와 동서나래채로 구성되여있다. 동쪽구역의 제3건물터(강당터)는 앞면 13간(52.4m), 옆면 본채 4간(11.9m), 나래채 3간(10.95m)이다. 탑터는 정4각형으로 되여있는데 한변의 길이는 약 4.8m이다.

서쪽구역에서 기본건물로 있는 제1건물터는 앞면 5간(24.6m), 옆면 3간(8.7m)이다.

유물들
사진 2. 광복사터에서 나온 여러가지 유물들

광복사터에 대한 발굴과정에 기와, 벽돌, 지붕장식물 등 각종 건축부재의 쪼각들과 도자기, 금속제품 등 많은 유물들이 드러났다.

기와들가운데는 전나무잎무늬가 새겨진 수기와를 비롯하여 각종 기와들이 알려졌으며 그중에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들도 있다.

글자새긴 기와들가운데는 《광복대사조(廣福大寺造)》, 《광복사(廣福寺)》《호국광…(護國廣…)》이라는 글자들이 부각되여있다.

글자새긴 기와들을 통하여 이곳에 있던 불교절간의 이름이 《광복사》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광복사의 건물배치형식은 개성에 있는 령통사 제2문화층시기의 절건물배치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므로 광복사가 처음 세워진 시기를 개성 령통사의 제2문화층시기인 11세기경으로 추정하고있다.

조선봉건왕조실록의 기록자료들과 조사발굴과정에 알려진 기와, 도자기유물들의 제작년대에 기초하여 광복사가 15세기경까지 존재하였다는것을 해명하였다.

광복사 금당건물의 규모가 길이 21.1m, 너비 12.7m이고 강당건물은 길이가 52.4m, 너비는 11.9m였다는 발굴자료에 기초하여 이 절간건물의 규모가 당시로서는 매우 방대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고려시기 광복사는 왕이 리용하기 위하여 국가적인 힘을 넣어 축조한 대규모의 불교절간이였으며 유사시에 왕이 이곳에 옮겨와 림시로 정사를 볼수 있게 꾸려진 행궁건물이기도 하였다.

광복사터는 고려시기의 력사와 문화를 보다 깊이 알수 있게 하는 조선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