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기는 색과 문양, 모양이 특출하여 예로부터 세상에 명성을 떨쳤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보물처럼 여겨왔습니다.》
고려시기의 도자공예를 대표하는 고려청자기는 오랜 력사적기간에 걸쳐 우리 민족의 뛰여난 예술적재능과 창조적지혜, 재치있는 솜씨를 만방에 시위하고있는 조선의 자랑이다.
고려의 도자공예가들은 선행세대가 이루어놓은 도자기제조기술의 성과를 이어받아 조형예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당시로서는 가장 우수한 문화재보인 고려청자기를 창조하였다.
고려청자기의 우수성은 무엇보다도 그 색갈이 독특한데서 잘 나타난다.
당시 고려사람들은 자기들의 청자기에 대하여 비취옥과 같은 아름다운 색갈을 낸다는 뜻에서 《비색청자》(翡色靑磁)라고 불렀다.(《선화봉사고려도경》 권32 기명)
밝고 우아하며 은근하면서도 부드러운 고려청자기의 비색은 색창조에서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고려도자공들은 고려초기인 10세기 전반기에 벌써 선행한 도자기제작기술을 발전시켜 특이한 푸른색자기를 만들어냈다. 초기의 순청자색은 누른색기가 약간 도는 푸른색이였으나 고려의 도공들은 끊임없는 사색과 탐구를 거듭하여 11세기초에는 마침내 우리 나라의 맑게 개인 가을하늘빛처럼 맑으면서도 포근한 감을 주고 맑은 물속의 흰 차돌우에 비낀 푸른색과 같은 투명하고 은근해보이는 록청색의 비취옥과 같은 색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던것이다.
고려청자기의 청록색은 색채적미의 유기적인 통일을 이루고있어 단순한 표현으로 명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기하고 우아하며 아름다운 극치를 이루고있다. 하기에 과거로부터 이름있던 문인들은 그것을 벽옥에 견주기도 하고 수정의 령롱함서에도, 살결의 부드러움에도 비유하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것이다. (《동국리상국집》권8,권13,권16, 《목은시고》권24, 《완당전집》권10)
고려와 린접한 송나라에서도 여러곳에서 이전시기에 창조된 자기생산기술에 토대하여 비교적 발전된 상태의 도자공예품을 만들어냈다. 고려청자가 전성기에 이르고있던 송나라(북송. 960-1127년)에서는 청자기(《송청자》)가 일정한 수준에서 만들어져 주변의 여러 나라들에까지 수출되였다. 남송(1127-1279년)시기에 와서도 그 수준을 유지하고있던 월주와 여주(지방도시)의 청자는 송청자를 대표하리만큼 발전된 양상을 보였으나 고려의 청자에는 비교도 되지 못하였다.
월주청자를 가리켜 비색청자라고 하였으나 바탕흙이 색조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나 없이 순수 칠물상으로만 색조를 나타냄으로써 색이 가볍거나 어두우며 풀색색조가 훨씬 짙었다. 이것은 바탕흙속의 산화철함유량이 3%를 넘고 칠물에 알카리성분이 적기때문이였다. 결국 색은 비색이라고 하지만 깊이를 가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의 고려청자는 바탕흙속에 산화철이 2%이하였으며 바탕흙의 규산이 칠물의 알카리와 화합하여 두텁고 든든한 중간층을 형성함으로써 푸른색의 미묘한 깊이를 가지고있었다.
송나라의 비색과 고려의 비색은 그 색조에서뿐 아니라 어원에서도 완전히 의미가 다르다. 고려의 비색은 그 색갈이 비취옥의 색과 같이 아름답다는 뜻에서 《翡》(비취 비)를 썼지만 송나라의 비색은 궁중에서만 쓰는 색으로서 비밀이라는 의미에서 《秘》(감출 비)를 쓴 《비색》이였다. 그러므로 송청자비색은 그 표현에서 아무러한 색체적의미가 담겨져있지 않다.
고려청자의 푸른색은 그의 높은 예술성으로 하여 조선사람뿐 아니라 민족적감정과 취미가 서로 다른 외국인들에게도 직선적으로 접수되고 고상한 미적감정과 예술적공감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는 신비로울 정도의 아름다운 색갈이다.
고려청자의 색갈에 대하여 1123년에 사신단성원으로 고려에 왔던 송나라사람인 서긍은 자기 글에서 《사기그릇들의 푸른것을 고려사람들은 〈비색〉(翡色)이라고 한다. 근래에 와서 그 솜씨가 훌륭하여 빛갈과 광택이 더욱 아름답다.》고 하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선화봉사고려도경》권32 기명)에서 19세기초에 편찬된 《해동역사》(권29)에서도 송나라사람들이 고려의 비색청자기를 《천하제일의 명물》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전하고있다.
송나라사람들이 자기 나라에서도 이른바 《비색(秘色)청자》를 만들어 이웃나라들에 자랑하고있던 실정에서 고려의 비색청자기를 《천하제일의 명물》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은것은 고려의 비색청자가 얼마나 높은 지위에 있었는가를 잘 보여주고있다.
고려청자기의 우수성은 다음으로 그 문양이 독특하고 아름다운데서 잘 나타난다.
순청자가 일정한 수준에 올랐을 때 고려의 도자공들은 기물의 겉면에 선새김무늬와 돋을무늬를 놓아 비색자기의 고유한 색채미를 한결 돋구어내였다. 이것을 가리켜 오늘날 전문가들은 선새김무늬청자, 돋을무늬청자라고 부른다.
고려의 청자기제작자들은 선새김법과 돋을법과 같은 조각적인 장식방법을 쓰는 과정에 새로운 투각기법도 창안적용하였다.
투각기법이 적용된 청자기의 무늬형상에서는 외겹으로 된 그릇의 벽에 직접 적용하는 경우와 속살과 겉살을 이중으로 조성하고 겉살부분에 무늬를 뚫어새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하여 청자기들에서는 무늬들이 푸른색칠물과 잘 어울리면서 립체감이 더 강조되였다. 일반적으로 그릇겉면 외겹부분에 크고작은 구멍을 뚫어 무늬를 형상하는것은 소성시에 뚫어지지 않은 겉면이 트거나 지어 깨질수 있는 위험성을 동반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자면 바탕흙의 점토를 보드랍게 하면서도 강도를 높여야 하고 불에 구울 때 진행되는 수축세기도 알맞춤하게 타산해야 한다. 그러므로 투각기법이 자유롭게 적용된 청자기의 제작은 제작자들의 탐구기풍과 뛰여난 예술적재능이 없이는 실현될수 없는것이였다.
고려도자공들은 또한 상감기법을 비롯한 여러가지 장식기법을 효과적으로 창안적용하여 우수한 공예품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고려의 도자공들은 선행시기의 백토상감제조경험에 토대하여 청자소지겉면에 무늬자리를 파내고 거기에 여러가지 색흙을 메꾼 다음 유약을 발라 구워내여 상감자기제작에 성공함으로써 인류도자공예사상 특기할 성과를 이룩하였다.
고려청자기의 상감무늬는 맑고 투명한 푸른색칠물과 잘 어울리면서도 무늬가 은근히 내비치는것이 특징이였다.
상감청자기의 출현으로 하여 무늬형상에서는 폭이 넓어지고 회화적인 수법이 더 발전하여 도안적인 방법과 사생적인 방법이 널리 도입되였다. 또한 무늬종류도 구름이나 물결과 같은 무정형적인것으로부터 시작하여 학, 기러기, 원앙새 등 동물들과 국화, 포도, 련꽃, 모란 등 갖가지 식물들 그리고 어린아이와 실재한 자연풍경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였다.
그러나 송나라의 청자에는 고려청자와는 달리 상감장식이 없었다. 남송(1127-1279년)시기에 활동한 태평로인은 《수중록》에서 《고려청자기는 천하제일인데 그것은 문양이 매우 우수하기때문이다.》라고 평하면서 문양이 독특하다는데 대하여 놀라움을 표시하였으며 로씨야의 어느한 미술사가도 자기의 글에서 《상감기법으로 알려진 이 기술은 조선에서 발생되였으며 12~13세기에 세계 여러 나라들에 광범히 알려지게 되였다.》고 하면서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을 찬양하였다.
고려청자기의 우수성은 다음으로 그 모양이 다양하고 참신한데서 잘 나타난다.
고려청자기에는 잔, 바리, 병, 사발, 접시, 주전자, 단지, 화분, 향로, 화로, 화장함, 연적, 벼루, 붓꽂이 등 다양한 품종이 있다. 향로, 화장함, 서판, 베개, 붓꽂이 같은것은 이 시기 처음 흙으로 구워만든것이다.
고려청자기들은 같은 품종이라 하여도 그 모양은 각양각색이다. 즉 접시 하나만 보아도 큰것과 작은것, 굽이 높은것과 낮은것은 물론 모양이 둥근것과 8각, 10각으로 생긴것, 5, 6, 8, 10개의 꽃잎모양으로 된것이 있다. 단지에도 아구리가 큰것과 작은것, 목이 긴것과 짧은것, 굽이 있는것과 없는것 등 실로 천태만상을 이루고있다.
모양의 기발한 착상은 특히 일정한 물상을 본따서 만든 자기들에 잘 반영되여있다.
고려의 물형청자기들은 주로 인물, 동물, 식물, 금속기 등을 본딴것이다. 주전자 하나만 보아도 참외나 포도, 조롱박, 참대순과 같은 식물의 생김새를 본따 만든것이 적지 않다.
물형비색청자, 물형상감청자는 고려시기에 만들어진 도자기들가운데서 특출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것은 고려자기의 조형예술적우수성이 물형청자기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있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사람들은 물형청자기를 고려자기가운데서 으뜸가는 보물로 여겼던것이다.
고려의 물형청자기들은 그 모양이 정교하고 구상이 기발하다.
오리모양으로 형상된 연적은 련꽃줄기를 입에 문 오리의 잔등에 련꽃잎과 꽃망울이 자연스럽게 놓여있는 모양인데 꽃잎에는 물을 넣기 위한 구멍이 있고 꽃망울은 마개로 되여있다. 또한 참대순모양의 청자주전자는 몸체가 탐스러운 참대순으로, 손잡이와 주둥이는 마디가 있는 참대줄기로, 뚜껑도 작은 참대순으로 형상되여있다. 그리고 조롱박모양의 포도무늬청자상감주전자는 손잡이를 포도넝쿨을 꼰듯이 만들어붙이고 주둥이는 참대나무를 희여붙인것같이 만든것이다. 뚜껑의 꼭지와 손잡이의 웃부분에는 포도순의 한 부분을 련결고리로 달아놓은것이 있다. 그리고 주전자에는 그릇모양으로 된 받치개가 있다.
이처럼 물형자기들은 전반적형태뿐 아니라 세부도 기발하게 처리되여 자연스러우며 공예적가치를 한결 돋구고있다.
하기에 송나라사람인 서긍이 사자모양의 향로, 참외모양의 주전자에 대하여 찬양한것은(《선화봉사고려도경》권32 기명)에서 그러한 청자기가 그에게 신기하게 보일 정도로 그 모양이 묘하고 아름다웠기때문이며 자기 나라에는 그러한 형태의 그릇이 매우 드물기때문이였을것이다.
고려의 물형청자기들의 모양이 예술적으로 훌륭하게 형상되여있다는것은 바로 그 형태미가 부드럽고 우아한것과 관련되여있다. 물형청자기들의 선들은 길고 가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되여있으므로 청자기 전체가 경쾌하고 날씬하며 맵시있고 아담하게 보인다. 매개 그릇의 선들은 무리하고 부자연스러운것이 없고 모두가 생기있고 조화롭고 변화무쌍하다. 이런것으로 하여 고려청자기들은 부드럽고 우아한 느낌을 강하게 안겨준다.
부드럽고 우아한 형태미는 고려도자공들의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력과 생동하고도 진실한 형상수법, 세련된 공예적솜씨에 의해서만 이루어질수 있었다.
이처럼 고려의 청자기제작자들은 색과 문양, 모양이 특출한 명품들을 창조하여 우아하고 고상하고 깨끗한것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미학적정서를 훌륭히 반영하였으며 중세도자공예발전에 빛나는 기여를 하였다.
고려청자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