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부교수 김성길
2022.5.27.
사람들은 일요일이 오면 저마끔 자기의 생활상요구와 취미에 따라 계획을 세워가지고 즐거운 휴식의 하루를 보내군 한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번도 일요일을 편히 쉬신 때가 없었으며 오히려 일요일에 더 많은 일을 하시며 바쁘게 보내시군 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한평생 오로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십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2권 255페지)
주체58(1969)년 9월의 세번째 일요일만 해도 그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아침 일찌기 한 일군을 부르시여 강서와 룡강, 온천지구의 몇개 단위를 돌아보자고 하시였다.
그 일군은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며칠째 계속 밤늦게까지 일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잠시나마 피로를 좀 푸시였으면 하는 생각이 앞섰기때문이였다.
그래서 그 일군은 용기를 내여 오늘은 일요일인데 오전한겻만이라도 좀 쉬시고 오후에 떠났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일군을 다정히 바라보시면서 동무는 나와 같이 이제는 10년나마 일해오는데 아직 내 마음을 다 모르고있다고 하시면서 내가 언제 일요일이라고 하여 집에 있어본 일이 있는가고, 여느때는 일이 바빠 현지에 자주 나가지 못해도 일요일에 가까운 곳에라도 나가 현실도 료해하고 인민들도 만나보고싶다고, 나에게 이이상 더 만족한 일요일은 없으며 이것이 나의 휴식이라고 말씀하시였다.
현실속에 있는것이, 인민들속에 있는것이 휴식이라고 하시며 평양을 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온 하루 청산리와 옥도리 그리고 온천군의 여러 단위를 돌아보시며 인민들과 함께 보내시였다.
청산리에 들려 농사형편을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확이 높은 새로운 우량품종으로 종자를 갱신하여 알곡생산을 높이며 청산리를 보다 문명하고 현대적인 농장으로 꾸릴데 대하여 간곡하게 교시하시였으며 옥도리를 돌아보시며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후 온천국영과수농장을 거쳐 6월3일협동농장에 이르시여서도 실태를 료해하시고 앞으로 할 일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저녁식사도 미루시고 온천군의 책임일군들과 피살자유가족들을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과 오랜 시간 자리를 같이하시고 피살자유가족들의 생활형편을 일일이 료해하시고 앞으로 군에서 량곡수매사업을 잘할데 대한 문제, 새우젓과 조개젓을 많이 만들어 공급할데 대한 문제, 고기생산을 늘이고 식량을 절약할데 대한 문제 등 인민들의 생활향상을 위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일요일일과가 그것으로 끝난것은 결코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밤에는 또한 밤대로 새날이 잡힐 때까지 그해 당창건기념일에 즈음하여 당 및 국가기관 간부들앞에서 하실 강의 《우리 나라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의 몇가지 경험에 대하여》를 집필하시였다.
온 나라 인민들이 마음놓고 휴식하는 그 일요일의 하루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른 아침부터 깊은 밤까지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정력적으로 일을 하시였다.
어느해에는 50일나마 되는 일요일가운데서 단 하루의 휴식도 없이 50여차에 걸쳐 전국의 수십개 단위를 찾으시였고 어느 일요일에는 해종일 도와 도의 지경을 넘으시며 10여개 단위를 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는 더 말할것도 없고 조국해방을 이룩하신 후 위대한 생애를 마치신 주체83(1994)년 7월 8일까지만 하여도 2 530여일의 일요일을 고스란히 인민을 위해 바치시였으며 천수백회에 걸쳐 인민경제 여러 부문과 인민무력부문(당시), 사회안전부문의 중요단위들을 현지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평생 법적으로 선포된 휴식일인 모든 일요일을 이렇게 보내시였다.
참으로 우리 수령님의 한평생은 오로지 조국의 안녕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한순간의 휴식도 없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이민위천의 한평생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