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발전된 문화를 전해주는 귀중한 문화유산들가운데는 비파형단검도 있다.
비파형단검은 청동으로 만든 짧은 단검으로서 B.C.3000년기 전반기부터 오랜 기간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 사용한 고조선전기의 특징적인 무기이다.
고조선의 발전된 문화를 보여주는 비파형단검은 검몸의 생김새가 옛날 우리 나라 민족악기의 하나였던 비파모양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말이다.
비파는 울림통의 웃판은 편평하지만 밑판은 길죽하고 둥군 복숭아모양이며 네줄 또는 다섯줄을 메우고 술이나 손가락으로 줄을 튕기여 소리를 내게 되여있는 현악기의 한가지이다.
비파형단검은 검몸의 끝부분은 뾰족하지만 반대쪽인 자루부분으로 내려가면서 점차 넓어지다가 갑자기 돌기부를 이루고 그 아래는 다시 오물어들었다가 불룩해져서 그 전체적인 모양이 비파의 생김새와 비슷하다.
비파형단검은 크게 검몸과 검자루로 이루어졌으며 검몸과 검자루는 분리할수 있게 되여있다. 그리고 검자루끝에는 단검의 전체적인 무게를 더해주는 검자루맞추개가 따로 붙어있다.
전형적인 비파형단검의 검몸에는 량쪽 날선에 돌기부, 우무기, 불루기가 형성되여있고 검몸의 세로 중심에는 가로자름면이 원형 혹은 타원형인 등대가 있으며 등대를 중심으로 검몸의 량쪽에는 피홈이 형성되여있다. 등대우에는 마디가 한개 있는데 그 마디의 위치는 량쪽 날선에 형성되여있는 돌기부와 일치한다. 등대는 검몸의 아래까지 계속 연장되여 뿌리를 이루었다.
검자루는 평면생김새가 ⊥형이며 손잡이와 보호판, 검자루맞추개로 이루어졌다. 손잡이의 웃부분은 검몸을 꽂을수 있게 나팔모양처럼 벌어졌고 그 아래부분에는 평면이 타원형을 이룬 보호판이 수직으로 붙어있다. 그리고 보호판밑에 베개형, 반달형, 나비형 등 여러가지 생김새의 검자루맞추개를 조립하게 되여있다.
손잡이와 보호판에는 평행선띠무늬, 사선무늬, 삼각무늬, 격자무늬 등 여러가지 기하학적무늬들을 섬세하게 새기기도 하였다.
이처럼 비파형단검은 검몸이 비파처럼 생기고 검몸과 검자루, 검자루맞추개를 따로따로 만들어 조립하게 되여있는 조립식무기라는데 그 중요한 특징이 있다.
비파형단검은 고조선전기의 전 기간에 걸쳐 사용되는 과정에 검몸의 평면생김새가 4가지 형식으로 변천되였다.
첫째형식은 검몸의 평면생김새가 웃쪽의 끝이 뾰족하고 아래부분은 불룩하지만 량쪽 날선에 돌기부와 우묵이가 형성되여있지 않으며 등대우에 마디가 없는 시초형의 단검이다. 이러한 형식의 비파형단검은 검자루 또는 검자루맞추개와 함께 나온 실례가 없으며 따라서 나무로 만든 검자루를 사용한것으로 볼수 있다. 첫째형식의 비파형단검은 황해북도 신평군 선암리1호돌관무덤과 황해남도 배천군 대아리돌관무덤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중서부조선지역에서만 발견되였다.
둘째형식은 검몸의 웃부분 량쪽 날선에 돌기부와 우묵이가 형성되여있고 돌기부와 같은 선상의 등대우에 마디가 있는 초기형단검으로서 황해남도 안악군 부흥리무덤과 중국 동북지방의 료녕성 신금현 쌍방고인돌무덤, 청원현 문검돌관무덤, 리가보돌관무덤 등에서 알려졌다. 이러한 형식의 비파형단검도 검자루와 검자루맞추개가 없이 드러나군 한다.
셋째형식은 검몸의 중간부분 량쪽 날선에 형성되여있는 돌기부가 매우 뚜렷하고 등대우에 마디가 있는 중기형비파형단검이다. 비파형단검은 중기형에서 완성된 모습을 나타내며 따라서 중기형비파형단검을 전형적인 비파형단검이라고 한다. 이런 형식의 비파형단검은 검몸이 검자루와 같이 나온 실례는 없지만 검자루맞추개는 함께 나왔다. 셋째형식의 비파형단검은 중국 동북지방의 료녕성 대련시 감정자구 후목성역의 강상돌무지무덤,윤가촌4호돌곽무덤, 본계시 고대자1호돌관무덤, 대련시 려순구구 토성자유적, 철산공사 곽가둔유적 등에서 발견되였다.
넷째형식은 검몸의 량쪽 날선에 형성되여있는 돌기부가 검몸의 아래부분에 있고 검몸의 전반적인 생김새가 매우 날씬한 후기형단검이다. 이런 형식의 단검은 대체로 청동검자루와 함께 알려진다. 이 단검이 다른 형식의 단검들과 구별되는것은 검몸에 형성되여있는 돌기부, 우묵이, 불루기가 뚜렷하지 못하고 검몸의 최대너비가 대체로 좁아져 좁은놋단검을 련상시키는것이다. 넷째형식의 비파형단검은 평양시 순안구역 신성동돌곽무덤, 형제산구역 서포동유적, 동대원구역 동대원유적, 락랑구역 석암리유적, 평안남도 개천시 룡흥리유적, 중국 동북지방의 료녕성 대련시 감정자구 후목성역의 루상돌무지무덤, 금현 동가구 와룡천돌무지무덤, 대련시 려순구구 관둔자 죽구나무관무덤, 장해현 상마석3호무덤 등 많은 유적들에서 나왔다.
비파형단검은 고대조선사람들이 퍼져 살던 조선반도의 대부분지역과 중국 동북지방의 료녕성, 길림성을 포괄하는 넓은 지역들에서 발견되는 청동무기로서 당시의 중국이나 북방계청동단검과 뚜렷이 구별된다.
황하중류류역을 중심으로 한 오늘의 중국관내지방에서 쓰인 청동단검은 동주식단검이라고 불리우는데 검몸과 검자루가 하나로 붙어있고 검몸이 상대적으로 곧고 길며 검몸과 검자루사이에 릉형의 검코가 있는 일체식무기이다. 그리고 황하상류 오르도스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동남쪽은 몽골 대초원지대의 동남쪽변두리까지, 서북쪽은 외몽골과 남씨비리까지 포괄하는 지역에서 보급된 북방계청동단검도 역시 검몸과 검자루를 함께 붙여 만든 일체식단검으로서 검몸은 두리뭉실하고 검자루끝은 짐승대가리 혹은 새대가리와 방울모양의것들이 장식되여있다.
이와 같이 비파형단검은 중국이나 북방계청동단검과 명백히 구별되는 고조선전기의 가장 대표적이며 특징적인 유물의 하나이다.
참으로 비파형단검은 고대조선사람들이 창안하여 공통적으로 사용한 특징적인 청동무기로서 이웃나라와 지역의 문화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고조선전기문화의 독자성과 고유성, 발전수준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