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는 먼 옛날부터 철을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며 삼국시기에 와서는 철재로 생활도구를 만들어 광범히 리용하였고 금, 은, 동세공술도 고도로 발전하였습니다.》 (
그가운데는 7호무덤에서 나온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금귀걸이도 있다.
이 무덤은 하나의 무덤무지밑에 구조와 크기가 거의 같은 3개의 무덤칸이 나란히 있다. 매 무덤칸들은 막돌로 쌓고 그우에 회미장을 하였는데 바닥에는 작은 관대가 있다. 그중 금귀걸이유물이 나온 동쪽무덤칸의 크기는 길이 3.7m, 너비 0.98m, 높이 0.9m로서 관 1개가 들어갈 정도이다. 발굴당시 천정을 덮었던 뚜껑돌은 이미 없어지고 두께 10cm정도의 화강석판으로 만든 페쇄석만이 무덤칸의 남쪽끝부분에 남아있었다.
귀걸이유물은 순금제로서 무게는 9.87g이다.
이 금귀걸이는 굵은고리식(태환식)의 기본고리와 그 밑에 매달린 드림장식, 그리고 그것들을 서로 이어주는 련결고리들로 이루어졌다.
기본고리는 너비 6.6mm, 두께 2mm되는 금판을 둥글게 말아서 직경이 12.6mm인 둥근고리형으로 만든것이다. 이 고리를 형성한 금판의 두끝은 완전히 맞붙지 않고 2mm정도 벌어졌다.
드림장식은 구형의 중간장식과 끝장식으로 이루어졌다.
중간장식은 구형에 가까운데 긴직경 5mm, 짧은직경 3mm이다. 중간장식에는 2개의 활짝 핀 꽃송이와 3개의 꽃봉오리가 기본이 되여 ∽자형으로 뻗은 련꽃무늬가 있다.
끝장식에서 주산알형장식은 직경 4.8mm, 원추형장식은 직경 2.7mm, 높이 2.7mm이다.
련결고리는 2개이다. 하나는 굵기가 2.2mm되는 금줄로 타원형이 되게 만든것인데 기본고리와 드림장식을 이어준다. 다른 하나는 너비가 2.9mm되는 금판을 원형으로 말아서 만든것인데 중간장식에 고정되여 타원형의 련결고리에 이어준다. 여기에는 세잎무늬가 새겨져있다.
이 귀걸이유물의 년대는 형태와 장식무늬를 통하여 알수 있다.
굵은고리식의 귀걸이가운데서 이런 형태를 가진 유물들은 대체로 5세기전반기나 중엽경으로 볼수 있다. 그것은 이 귀걸이의 드림장식의 발달정도가 고구려 집안 마선구1호무덤의 귀걸이처럼 시초형은 아니고 신라 경주의 황남동큰무덤에서 나온 귀걸이에 가깝기때문이다. 이것은 귀걸이유물의 년대가 마선구1호무덤과 황남동큰무덤 사이에 해당된다고 볼수 있게 한다.
귀걸이에 새겨진 무늬는 세잎무늬와 련꽃무늬이다.
세잎무늬의 발달과정에서 이처럼 량옆의 잎끝이 뾰족하고 아래로 구부러진 형태는 주로 인동넝쿨의 잎사귀에서 볼수 있는 양상이므로 인동넝쿨무늬의 류행과 결부시켜 볼수 있다.
꽃무늬는 옆모습으로 형상된 련꽃송이와 꽃봉오리인데 순수 련꽃만이 아니고 원활하게 뻗어나간 넝쿨무늬적인 요소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귀걸이에 새겨진 무늬를 넝쿨무늬화된 련꽃무늬로 규정할수 있게 한다.
이와 비슷한 무늬는 집안 장천1호무덤의 관널쪼각에 그려진 그림에서 볼수 있다.
장천1호무덤의 년대는 5세기중엽으로 편년되므로 이런 무늬의 류행시기도 그와 비슷하게 볼수 있을것이다.
이상의 사실을 종합하여보면 귀걸이의 년대는 대체로 5세기중엽경으로 추정할수 있다.
이 고구려금귀걸이는 공예적으로 볼 때 매우 우수한 걸작품이다.
귀금속유물의 우수성은 재료의 가치와 공예적가치를 가지고 평가한다. 이 귀걸이는 순금제이고 형태상 우아한 우점도 있지만 기본은 거기에 새겨진 화려한 무늬를 가지고 가치를 론할수 있다.
지금까지 많은 고구려금귀걸이들이 발견되였지만 이렇게 무늬가 새겨진 유물은 처음이다.
작은 련결고리에 있는 세잎무늬는 부각방법으로 형상되였는데 잎의 가운데부분들과 잎꼭지부분이 옴폭 패여 립체감이 잘 나타난다.
중간장식의 련꽃넝쿨무늬장식은 정교성과 섬세성에서
루금장식의 발전정도는 대체로 거기에 사용된 금알의 크기와 형상수법, 정교성을 가지고 평가할수 있는데 이처럼 직경이 0.15~0.2mm정도 되는 금알을 가지고 꽃송이를 정교하고 화려하게 형상한것은 고조선유민들의 루금공예를 대표하는 정백동92호무덤의 룡무늬띠걸이보다 못지 않다.
특히 긴직경 5mm, 짧은직경 3mm밖에 안되는 작은 구에 이처럼 복잡하고 화려한 무늬를 사소한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새겨넣은것은 삼국시기 귀금속공예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신라 보문리부부무덤의 귀걸이나 금방울무덤의 금방울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걸작품인것이다.
이것은 태왕릉에서 나온 귀금속공예품들과 함께 고구려귀금속공예의 높은 경지를 뚜렷이 실증해준다.
대성동7호무덤의 고구려의 귀걸이유물을 비롯하여 최근 시기에 이룩된 고고학적인 성과들을 종합하여보면 귀금속공예분야에서도 고구려가 높은 발전을 이룩하였고 그러한 기술이 동족의 나라들에도 전파되였다는것을 더욱 명백히 알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