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고대 조선사람들의 청동무기-좁은놋단검

 2022.4.26.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력사유적과 유물은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민족의 재보이며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발전된 문화를 전해주는 귀중한 유산이다.

좁은놋단검은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발전된 문화를 전해주는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의 하나이다.

좁은놋단검은 B.C. 2000년기후반기부터 고대 조선사람들이 만들어 리용한 청동무기로서 검몸, 검자루, 검자루대가리를 따로따로 만들어서 조립하게 되여있다.

좁은놋단검의 검몸은 길이가 대체로 30㎝안팎이고 검몸의 한가운데는 세로 등대가 두드러져있으며 거기에는 등날이 서있다. 그리고 등대량쪽의 날부분에는 중간부에 안으로 약간 오무러든 에임이 있다.

검자루는 청동으로 만든것이 알려졌는데 가운데가 마디를 이루고 그 량쪽으로 약간 가늘어졌다가 다시 굵어졌으며 검자루대가리는 ⊥자형의 꼭지가 달린것이 일반적인 생김새이다.

좁은놋단검은 고대조선사람들속에서 오랜 기간 쓰이였기때문에 형태에서 일정한 변화가 있었으며 따라서 형태의 시기적변천에 따라 초기형, 중기형, 후기형으로 구분된다.

좁은놋단검의 초기형은 검날에 에임과 마디가 없고 검날은 거의 직선으로 되였거나 뿌리쪽이 약간 넓어진 생김새이고 중기형은 검날중간부의 량쪽에 에임이 있고 그에 상응하는 등대부위에 마디가 있으며 검날의 너비가 좁아서 검몸이 날씬한 생김새이다. 등대에는 등날을 세웠는데 등날은 마디우에만 있다. 중기형의 좁은놋단검을 전형적인 좁은놋단검이라고 한다.

좁은놋단검의 후기형은 중기형과 비슷하지만 검날의 너비가 얼마간 넓어지고 날이 거의 직선으로 되여있으며 등대에 세운 등날이 마디아래까지 있는 생김새이다.

좁은놋단검은 고대 조선사람들이 고조선의 비파형단검을 계승하여 더욱 발전시킨것이다.

그것은 좁은놋단검이 B.C. 30세기초부터 고조선에서 쓰인 비파형단검과 여러면에서 공통성을 가지고있으면서도 독특한 모습을 나타내는것을 통하여 잘 알수 있다.

좁은놋단검과 비파형단검은 다같이 검몸, 검자루, 검자루대가리를 따로따로 만들어서 조립하게 되여있는 조립식무기들이다. 이것은 검몸과 검자루가 하나로 련결되여있는 중국 전국시대의 도씨검이나 씨비리의 따가르검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것이다.

또한 좁은놋단검의 검몸에는 등대가 있고 날의 중간부에 에임이 있는데 이것은 비파형단검의 날부분에 있는 안으로 오무러든것의 잔재이다.

그러나 좁은놋단검에는 비파형단검에서 볼수 있는것과 같은 공통성과 함께 등대량쪽에 피홈이 있고 비파형단검에 비하여 날도 더욱 쓸모있게 좁아졌으며 그 질도 좋아진것과 같은 새로운 모습도 있다. 그리고 좁은놋단검은 비파형단검에 비하여 량적으로도 많이 알려진다.

이것은 좁은놋단검이 비파형단검을 계승하여 더욱 발전시킨것이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주는것이다.

좁은놋단검
그림. 1) 초기형좁은놋단검 2) 중기형좁은놋단검 3) 후기형좁은놋단검

좁은놋단검의 발상지, 중심지는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서북조선일대이다.

그것은 초기형의 좁은놋단검이 황해북도 신계군 정봉리 돌곽돌무덤과 황해남도 재령군 고산리움무덤, 평안남도 평원군 신송리움무덤, 평안남도 대동군 연곡리 2지점, 평안남도 성천군 백원리 9호고인돌무덤 등을 비롯하여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서북조선일대의 고대유적들에서 많이 알려졌기때문이다. 그리고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서북조선일대에서 초기형의 좁은놋단검들이 나온 유적들은 초기형의 좁은놋단검이 나왔다고 하는 중국 료동지방의 유적들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속한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조선일대는 좁은놋단검문화의 발상지일뿐 아니라 그 중심지였다.

그 근거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조선일대에서 다른 지방들에 비하여 좁은놋단검이 량적으로 많이 알려졌으며 초기형은 물론 중기형, 후기형의 좁은놋단검들이 다 나왔다는데 있다.

지금까지 조선반도와 중국 동북지방, 로씨야의 연해변강일대를 포괄하는 지역에서 좁은놋단검이 알려진 총수는 대략 400여개에 달하는데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조선일대에서 발견된것이 반수이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중국 료동지방에서는 주로 초기형의 좁은놋단검들이 나왔고 남부조선이나 동북조선, 로씨야의 연해변강일대에서는 초기형의 좁은놋단검은 나오지 않고 중기형과 후기형의 좁은놋단검만 나왔다.

이것은 좁은놋단검이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조선일대에서 제일 먼저 발생하였고 점차 주변지역들에로 보급되여갔다는것을 보여주는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좁은놋단검은 쇠로 만든 무기들이 만들어지면서 B.C. 1세기말경부터 점차 없어졌다.

좁은놋단검은 고대 조선사람들의 주요무기인 동시에 당시 사람들의 청동기제조기술과 미적감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공예품이기도 하였다.

좁은놋단검은 고대조선사람들이 비파형단검을 계승하여 더욱 발전시킨 독특한 청동무기로서 고조선전기문화와 후기문화와의 계승관계, 그 독자성과 우수한 발전수준을 잘 보여줄뿐 아니라 고조선을 비롯한 우리 나라의 고대문화를 연구하는데서 매우 귀중한 자료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