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통하여 세상에 널리 자랑할만한 문화적재부를 창조하였다.》 (
우리 인민이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민족적생활풍습에는 설명절풍습도 있다.
설명절은 음력으로 맞는 새해의 첫날이다.
우리 인민이 설명절을 쇠여온 력사는 매우 오래다.
고대부여에서는 정월에 국가적규모의 제천대회를 열었으며(《삼국지》부여전)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서도 그 전통이 계승되여 여러가지 행사와 놀이들을 하면서 설명절을 즐겁게 쇠였다.
이러한 설명절풍습은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그대로 전해져왔다.
설명절풍습은 크게 설맞이준비와 설맞이행사, 여러가지 민속놀이 등으로 구성되여있다.
설맞이준비에서 중요한것은 집안팎을 깨끗이 청소하고 여러가지 설그림(세화)으로 장식하며 설옷과 설음식을 잘 마련하는것이였다.
설그림은 새해를 축하하는 의미로 그려붙이던 그림으로서 벽장이나 미닫이문같은데 붙여 장식하였다.
우리 인민들은 설을 맞으며 새옷을 마련하여 입거나 입던옷이라도 깨끗이 손질하여 입었는데 어느 가정에서나 아이들부터 먼저 고운 명절옷차림을 하게 하였다.
섣달그믐날에는 밤을 밝혀가며 설음식준비로 흥성거렸다.
설맞이준비를 끝낸 다음에는 설맞이행사를 진행하였다.
설맞이행사에는 차례, 세배, 설음식대접 등이 있었다.
차례는 음식상을 간소하게 차려놓고 돌아간 조상에게 하는 설인사로서 정월 초하루날 새벽에 진행되였는데 여기에 반드시 떡국이 오른다고 하여 떡국차례라고도 하였다.
설날 이른아침에는 웃어른들에게 세배를 하였다.
세배풍습에는 웃사람을 존경하고 례의를 귀중히 여기는 우리 인민의 미풍이 반영되여있다. 설날 아침이면 집안의 웃사람순서로 세배를 드리고 다음에는 마을안의 웃어른들과 스승들에게 세배를 드리였다.
설날 로인들이 있는 집에서는 간단한 례물을 준비하여놓았다가 세배하러오는 사람들에게 주었는데 아이들에게는 강정이나 깨엿 등을 쥐여주었고 어른들에게는 간단한 음식을 내놓았다.
친지들사이에는 좋은 의미가 담겨진 말로 서로 축하해주었는데 이것을 덕담이라고 하였다.
우리 인민은 찰떡, 설기떡, 절편과 같은 떡류와 여러가지 지짐류, 당과류, 수정과, 식혜, 고기구이, 과일, 술 등의 설음식을 준비하여 가족, 친척들과 함께 모여앉아 새해의 건강과 행복을 축복하며 즐겁게 들었으며 이웃들과도 서로 나누어 먹었다.
설음식을 대표하는것은 떡국이였는데 꿩고기를 넣고 끓이는것이 제격이였고 꿩고기가 없는 경우에는 닭고기를 넣고 끓이였다.
설술로는 도소주를 마시였는데 이 술은 육계, 산초, 흰삽주뿌리, 도라지, 방풍 등 여러가지 고려약재를 넣어서 만든 술이였다. 설날에 세주불온이라고 하면서 이 도소주를 데우지 않고 한잔씩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이러한 음주관습에는 새봄을 축하하고 정초부터 과음을 삼가하며 봄철농사준비를 부지런히 다그치려는 우리 인민의 근면성이 반영되여있다.
설명절을 이채롭게 장식한것은 민속놀이였다.
설날의 민속놀이에는 윷놀이, 널뛰기, 연띄우기, 썰매타기, 팽이치기, 바람개비놀이 등이 있었는데 여기에서도 윷놀이는 남녀로소 누구나 다 즐기는 설날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였다.
녀성들의 널뛰기와 어린이들의 연띄우기를 비롯한 여러가지 민속놀이들도 설날의 풍치를 더욱 돋구어주었다.
우리 민족의 설명절풍습은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해나가는 당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련면히 계승발전되고있다.
오늘 우리 인민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