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야수성과 잔인성의 극치-일본사무라이들의 코베기행위

 2017.9.18.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우리 인민들에게 저지른 천추에 용납 못할 죄행을 력사적인 자료를 가지고 낱낱이 폭로하여 인민들과 청소년들이 일본군국주의자들에 대한 끝 없는 증오심과 천백배의 복수심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김일성전집》 제48권 182페지)

지난날 일본사무라이들이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수많은 죄행들가운데는 임진조국전쟁시기(1592-1598년)에 감행한 반인륜적인 코베기행위도 있다.

현재 일본 교또시에 있는 《귀무덤》(미미즈까)은 수백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일본침략자들의 야수적이고 잔인한 코베기행위를 온 세상에 폭로하는 력사의 증거물로 남아있다.

사람들은 흔히 《귀무덤》이라고 하면 귀가 묻혀있는것으로 알고있으나 여기에 묻혀있는것은 사실상 귀가 아니라 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코무덤》이라고 하지 않고 《귀무덤》이라고 운운하는것은 일본침략자들이 임진조국전쟁시기에 감행한 저들의 범죄적만행을 조금이라도 가리워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력사의 진실은 언제든지 밝혀지기 마련이며 그것은 그 무엇으로써도 감추거나 외곡할수 없다.

일본사무라이들이 임진조국전쟁시기에 감행한 코베기행위는 침략의 괴수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의하여 조직되고 감행된 국가적인 범죄행위였다.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1597년 또다시 조선에 대한 대규모침략을 감행하면서 6월 초순에 교또의 후시미성에서 《코베기》명령을 하달하였다.

이에 대하여 1597년 일본에 랍치되여갔다가 1600년에 돌아온 강항(1567-1618년)은 기행문인 《간양록》에서 《정유재침때(1597년) 적의 괴수 수길(도요도미 히데요시)은 여러 장수들에게 이런 명령을 하달하였다. <사람마다 귀는 둘이 있어도 코는 하나이니 너희들은 마땅히 조선사람의 코를 베여 바침으로써 수급(칼로 잘라낸 사람의 머리)을 대신할지어다.> 이리하여 왜군 한놈이 코 한되씩을 소금에 절여서 수길에게 보내게 되였는데 코의 수량이 다 찬 후에야 생포를 허락하였다. 적들의 무조건학살의 죄행이 이때문에 더 심하였다고 한다. 보내온 코는 수길의 검열을 거친 다음 이를 한데 모아 십리쯤 되는 (교또)북쪽 교외에 가져다 묻어 높은 하나의 구릉을 이루었는데 그런지 1년도 되기전에 소금으로 또 제놈의 배때기를 절였다.》라고 기록하였다.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이 잔인한 《코베기》명령에 따라 왜놈들은 저들의 《전공》을 평가받고 더 많은 사람들을 랍치하기 위하여 이르는곳마다에서 서로 승벽내기로 사람들을 죽이고 코를 베여갔다. 우끼다 히데이에부대만도 3만개, 구로다 나가마사부대도 3만개, 기쯔가와 히로이에부대는 1만 8 350개의 코를 베여 《코수집관》에게 바쳐 자기 부대의 《전과》를 자랑하였다고 한다.

왜놈들은 코를 베여서는 그날로 소금에 절여 수집관에게 보냈으며 수집관은 그 수를 확인한 다음 청취장(령수증)을 부대장에게 써주고 일본으로 보냈다.

현재 일본 사가현 사가시 나베시마보효회, 도꾜대학 자료편찬소, 이와구니시 이와구니징고관이나 아마기시의 아까쯔끼향토관에는 그때에 수집관들이 발급한 《코령수증》들이 남아있다.

그중에는 《받은 코수 합하여 3 487개 정확히 인수함. 1597년 10월 9일 구마까이 나오모리》라는 《코령수증》도 있으며 전라도 금구일대에서 벤 코 3 369개를 받았다는 1597년 10월 7일의 령수증도 있다.

이렇게 《코수집관》들의 확인을 받은 코들은 큰 나무통이나 가마니, 마대같은것에 1 000 개~3 800개씩 담아져 배길로 오늘의 사가현 나고야(일본 규슈 서북부에 있는 침략전쟁의 총지휘거점)로 보내졌다. 그다음 다시 배길로 오사까까지 갔으며 거기서 마차나 우차에 옮겨실어서 교또까지 보내졌다.

코를 실은 우마차들은 북을 치고 나팔을 부는속에 마치 하나의 시위행렬처럼 나갔으며 그런 날이면 오사까로부터 교또까지에 이르는 큰 길에 사람들이 나와 떠들썩하면서 미친듯이 기뻐하며 맞군 하였다.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조선에서 부하들이 보내온 략탈물자들이 도착하면 《코가 얼마인가?》를 따져묻고 일일이 검열확인한 후 교또의 《귀무덤》에 묻도록 하였으며 코를 많이 바친 부대장들에게는 《코감사장》이라는것까지 보내였다.

현재 일본의 가고시마현 력사자료쎈터, 도꾜대학 자료편찬소들에는 임진조국전쟁시기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조선에 침입한 부대장들에게 보낸 《코감사장》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중에는 남원성전투에서 왜놈들이 벤 코를 받고 히데요시가 보낸 《감사장》의 원본도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시마즈 다다도요귀하

8월 16일 보낸 보고서를 봤소. 전라도 남원성을 지난 13일 포위하여 15일 밤에 함락시켜 421개의 목을 베였다고 하는데 그 코가 도착하였소. 수고했소.

1597년 9월 13일 도요도미 히데요시》

바로 이것은 1597년 8월 15일 남원성을 점령한 왜놈들이 수많은 애국적인 군민들을 죽이고 그들의 코를 베여 일본에 보낸것을 받고 히데요시가 기뻐서 보낸 《감사장》이였다.

이처럼 임진조국전쟁시기에 감행된 일본사무라이들의 잔인한 코베기행위는 침략의 괴수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직접적인 명령에 의하여 적극 조장되고 감행된 국가적인 범죄행위였다.

일본침략자들의 이러한 국가적인 대범죄의 산물로 1597년 9월 28일 일본 교또에는 조선사람의 코 18만 5 738개와 명나라군사의 코 2만 9 014개, 총 21만 4 752개의 코가 묻힌 《귀무덤》아닌 《코무덤》이 생겨나게 되였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침략자들이 감행한 코베기행위는 력사에 류례없는 가장 야수적이고 잔인한 민족배타주의적이며 반인륜적범죄행위였다.

인류력사에는 수많은 전쟁들이 기록되여있지만 일본사무라이들이 감행한 코베기행위와 같은 야수적이고 잔인한 만행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왜놈들의 잔인한 코베기행위는 우선 조선민족의 말살을 노린 민족배타주의적범죄행위였다.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1597년에 재침을 감행하면서 해마다 군대를 출동시켜 조선사람을 온통 죽여버려 조선을 빈 땅으로 만들라, 그다음 서로(일본 서부지방)의 사람들을 옮겨 조선에 살게 하고 동로(일본 동부지방)의 사람들은 옮겨 서로에 살게 하면 10년후에는 반드시 성공이 있을것이라고 떠벌이였다. 그러면서 사람은 귀는 둘이라도 코는 하나이니 조선사람의 코를 베여 머리를 대신하라고 명령하였다.

왜놈들의 야수적이고 잔인한 코베기행위는 또한 인간의 초보적인 인권마저 짓밟은 반인륜적범죄행위였다.

왜놈들의 코베기행위로 하여 놈들의 발길이 닿는곳마다에서 무고한 우리 인민들의 피가 내물처럼 흐르고 시체가 더미를 이루었다. 당시 코를 잃은 사람들은 그 수를 헤아릴수 없이 많았는데 그 광경은 흡사 지옥과 같았다고 한다.

그때의 상황에 대하여 임진조국전쟁시기 령의정을 했던 류성룡(1542-1607년)은 자기의 저서 《징비록》(권 제2)에서 《적들이 3도(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짓밟아 지나는곳마다 집들을 소각하고 백성들을 살륙하였으며 우리 사람들을 잡기만 하면 전부 코를 베여냈다.》고 하였으며 실학자 리수광(1563-1628년)은 자기의 저서 《지봉류설》에서 《왜졸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곧 죽여서 코를 베여내여 소금에 절구어 히데요시에게 보냈다. 이때 우리 나라 사람들가운데 코를 잃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이 많았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여러 력사기록들에는 왜놈들의 잔인한 코베기행위에 의하여 전쟁후 우리 나라에는 코없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내용이 낱낱이 밝혀져있다.

전쟁은 끝났어도 코를 잃은 사람들은 사망할 때까지도 왜놈들의 죄악에 의하여 인간의 초보적인 체모로서 갖추어야 할 코가 없이 불행과 고통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였다. 《코없는 아버지》, 《코없는 어머니》, 《코없는 할아버지》, 《코없는 할머니》로 일생동안 얼굴도 들지 못하고 살아야만 했던 이들의 고통은 그 무엇으로써도 보상할수 없는것이다.

전쟁에 참가했던 왜놈들도 저들이 감행한 잔인한 코베기행위에 대하여 그 비참함과 잔학성을 가장 웅변적으로 설명해주고있는것이 다름아닌 조선사람의 목대신 코를 베여모아 만든 이른바 《귀무덤》이 아닐가 하고 생각된다고 실토하였다.

인류는 아득히 먼 옛날부터 주검을 안장하는 시설물로서 여러가지 류형의 무덤을 써왔다. 옛 중국의 전란기인 춘추시대에도 싸움이 끝난 후 그 자리에 시체를 모아 쌓고 흙을 덮어 전승의 증거물, 상징물로 과시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세계전쟁사에 사람의 코를 베여 《전공》을 자랑하고 그것들을 모아 무덤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오직 섬나라 오랑캐-일본사무라이들에게서만 찾아볼수 있는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코무덤》을 만들어놓고 《원쑤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가엾다는 마음을 깊이 하여 친한 사람에게 하듯이 공양을 한다.》고 지껄였으며 그후 일본제국주의도 침략의 원흉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죽은지 300년이 되는 해인 1898년에 그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귀무덤》(《코무덤》)을 손질하고 이른바 《귀무덤수영공양비》라는데서 《적아를 론함이 없이 자애롭고 어진 마음을 베풀어 평등하게 공양하였다.》고 미화분식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한 반동학자는 《코따위를 베는것은 당시의 싸움에 있어서는 꼭 잔인하다고는 말할수 없다.》고까지 뇌까렸다.

전장에서 쓰러진 군사들에게 두벌죽음을 안기여 잘라냈거나 산사람에게서 무참하게 베여낸 코를 이역땅에까지 날라다 놓고도 《자애롭고 어진 마음》을 운운하고 또 코따위를 베는것은 당시의 싸움에 있어서는 꼭 잔혹하다고 말할수 없다고 하는 일본놈들이야 말로 얼마나 후안무치한 짐승의 무리들인가를 똑바로 알수 있다.

이렇게 야수성과 잔인성을 체질화하고 철면피한 사무라이의 후예들이기에 일제는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인민에게 짐승도 낯을 붉힐 천인공노할 만행들을 헤아릴수없이 저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오늘까지도 저들의 과거범죄를 성근하게 반성하고 사죄배상할 대신에 오히려 저들의 죄행을 미화분식하고 피비린 침략의 력사를 외곡날조하면서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에 미쳐날뛰고있다.

전체 조선민족은 오랑캐 일본사무라이들이 우리 인민들에게 력사적으로 감행한 범죄적만행들을 한시도 잊지 말고 반드시 그 대가를 받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