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조선에서 농업협동화운동의 승리가 가지는 사회학적의의

 2022.9.19.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승리적으로 결속된 조선의 농업협동화운동은 농촌의 개인경리를 사회주의적경리형태로 개조한 거창한 사회개조운동으로서의 실천적의의와 함께 전사회적규모의 사회개조를 편향없이 진행하는 경험을 창조함으로써 사회학리론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리론적의의도 가진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업협동화운동을 협동화의 일정한 경험을 쌓는 경험적단계와 그 경험에 기초하여 협동화운동을 적극적으로, 군중적으로 벌리는 대중적발전단계 그리고 그 성과를 공고히 하면서 협동화를 끝내는 완성단계의 3단계로 나누어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농업협동화운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경험적단계를 거쳐 점차 경험을 쌓고 간부를 양성하면서 이 운동을 적극적으로, 군중적으로 전개하는 방침을 취하였습니다.》(김일성전집》 제21권 272페지)

농업협동화운동의 이러한 세 발전단계는 당시 조선농민들의 사상의식수준과 농촌의 사회경제적조건을 정확히 타산하여 설정된 과학적인 발전단계였으며 농업협동화를 공고한 기초우에서 성과적으로 밀고나갈수 있게 하는 가장 합리적인 발전단계였다.

사회학의 견지에서 볼 때 협동화운동의 경험적단계는 일군들로 하여금 협동경리의 조직과 관리운영의 경험을 쌓고 자신심을 가지게 하며 경험적으로 조직된 협동조합을 통하여 협동경리의 우월성을 실물로 보여주기 위한 전사회적규모에서의 사회실험단계였다.

조선의 농민들은 당시까지 아직 농업생산분야에서 협동경리를 직접 조직운영해본 경험을 가지고있지 못하였으며 또 개인경리에 비한 협동경리의 우월성을 실천을 통해 느껴보지도 못하였다. 이런 형편에서 농업협동화를 주관적욕망이나 남의 경험을 가지고 처음부터 대대적으로 할수는 없었다. 다시말하여 수백만 농민대중을 개인경리로부터 집단경리에로 이끄는 복잡하고 어려운 사회개조사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서는 남의 경험이 아니라 자체의 경험이 필요하였으며 농민대중에 대한 일정한 실물교육을 반드시 선행시켜야 하였다.

경험적단계에서 농촌의 빈농들과 핵심들로 매개 군에 몇개씩 협동조합을 시범적으로 조직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구상과 의도가 철저히 관철됨으로써 주체42(1953)년 12월말까지 전국적으로 800여개의 시범농업협동조합들이 조직되였으며 주체43(1954)년 10월에 이르러 농업협동조합수는 4 200백개에 달하였으며 협동화비률은 전체 농가호수의 10.9%, 전체 경지면적의 10.7%를 차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험적으로 조직된 농업협동경리의 우월성을 충분히 나타내도록 하기 위하여 국가적지원을 강화하도록 하시는 한편 농업협동조합들이 자체의 경제토대를 공고히 하여 그 우월성을 발양시켜나가도록 이끄시였다. 경험적단계에서 조직된 농업협동조합들은 빈농민들과 농촌의 핵심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였던것만큼 그 경제적토대가 매우 약하였다. 례를 들어 42호 농가의 100여명 농민들로 조직된 문덕군 룡성농업협동조합만 보더라도 논밭 90정보와 부림소 2마리, 달구지 1대, 호리 6개, 후치 10개, 탈곡기 1대, 새끼꼬는 기계 1대밖에 없었다. 이것은 그래도 비교적 경제적조건이 유리한 벌방지대의 조합형편이였다. 중간지대인 개천군 봉화농업협동조합은 18호의 빈농민들로 조직되였는데 21정보의 논밭과 6마리의 소밖에는 가지고있는것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빈농민들로 조직된 농업협동조합들의 경제적토대가 빈약하고 조합원들의 생활형편이 매우 어려웠던 조건을 고려하여 국가에서 협동조합들에 부족되는 식량과 씨앗을 꾸어주고 비료와 농기구를 우선적으로 대주는 한편 부림소와 농기구, 영농자재 같은것을 사서 쓸수 있게 장기대부를 주도록 하시였다. 주체43(1954)년에 국가에서는 토지가 부족한 농업협동조합들에 7 000여정보의 토지를 주고 8 000여만원(당시 화페)의 방조를 주었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농기계임경소와 우마임경소를 조직하여 농업협동조합의 밭갈이와 영농물자운반을 먼저 보장하여 주도록 하시고 수만공수의 로력적지원을 주게 하시였다.

전국각지의 농업협동조합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겹쌓인 난관들을 용감히 이겨내면서 전국적으로 개인경리에 비하여 알곡정당소출은 10~15%, 현금수입은 무려 2~7배나 높이는 빛나는 성과들을 이룩하였다. 그리하여 평지대, 중간지대, 산간지대 등 각이한 지대적특성과 해당한 군의 구체적실정에 맞는 협동조합의 조직과 관리운영의 경험을 쌓을수 있게 되였으며 전국적범위에서 모든 지방의 농민들에게 실물로 협동경리의 우월성을 보여줄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험적단계에서 협동경리가 개인경리보다 훨씬 우월하다는것을 실천으로 확증하신 다음 농업협동화운동을 광범한 농민들이 적극 참가하는 대중적단계에로 발전시키시였다.

사회학의 견지에서 볼 때 농업협동화운동의 대중적단계는 실험적단계에서 진리로 확증된 새로운 리론을 실천에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단계이다.

농업협동화운동이 대중적단계에 들어선 다음 협동조합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주체44(1955)년 영농기까지 협동화비률은 총농가호수의 44.7%에 이르렀으며 주체44(1955)년 가을부터 다음해 영농기까지의 기간에 협동화비률은 총농가호수의 44.7%로부터 무려 70.5%로 높아졌다. 주체45(1956)년말 숙천군,문덕군을 비롯한 평안남도 일부 군들에서는 군내의 모든 농민들이 협동경리에 망라되여 협동화가 완수되였으며 평남도적으로는 총농가호수의 86%가 협동경리에 망라되였다. 주체45(1956)년말에 전국적으로 협동조합수는 15 825개로 늘어났으며 협동화비률은 총농가호수의 80.9%,경지면적의 77.9%에 달하였다.

농업협동화운동의 대중적발전단계를 통하여 거의 모든 농촌마을들에 협동경리가 조직되였으며 부농과 일부 사상의식이 뒤떨어진 농민들, 외따로 떨어져있는 농민들을 내놓고는 거의다 협동경리에 망라되여 농촌경리에서는 사회주의적협동경리가 지배적인것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개인농민들을 마지막 한사람까지 다 협동경리에 망라시키기 위한 완성단계의 과업도 성과적으로 실현되였으며 조선에서의 농업협동화운동은 주체47(1958)년 8월에 빛나게 결속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선에서 농업협동화가 빛나게 실현됨으로써 전사회적규모에서의 사회개조사업은 경험적인 실험적단계와 발전단계, 완성단계의 3단계로 진행해야 편향없이 짧은 기간에 성과적으로 진행할수 있다는것이 실천적으로 검증되였으며 사회개조운동의 매 단계마다에서 수행해야 할 과업들은 어떻게 제시하여야 하는가, 사회개조운동의 매 단계의 과업들은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에 과학적인 해답이 주어지게 되였다.

기성의 리론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독창적인 농업협동화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수행에서 나서는 모든 리론실천적문제들에 완벽한 해답을 주시였을뿐만 아니라 짧은 기간에 농촌경리의 사회주의적개조를 빛나는 승리에로 이끄신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업적은 전사회적, 전국가적규모에서의 거창한 사회개조사업에 관한 사회학리론을 발전시키는데 커다란 공헌을 한 불멸의 사상리론적업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