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주현동유적에서 발굴된 사람뼈에 대하여

 2017.11.28.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에서 사람의 기원문제는 철저히 우리 나라에서 발굴한 고고학적자료에 기초하여 과학적으로 해명되여야 합니다.》 (김정일전집》 제1권 90페지)

조선옛류형사람에 대한 인류학적연구를 심화시키는것은 조선사람의 혈연적공통성과 그 단일성 해명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최근에 평양시 강동군 란산리에서는 조선사람의 기원의 유구성과 혈연성공통성, 단일성을 확증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원시유적이 발굴되였다.

이 유적은 평양시 강동군 란산리 소재지로부터 동쪽으로 약 4km정도 떨어진 주현동에 위치하고있다.

이 유적에 대한 발굴은 주체99(2010)년 5월부터 주체102(2013)년 8월까지 진행되였다.

동굴퇴적층은 퇴적물의 조성과 특징, 크기, 함량, 색 등에 따라 5개 층으로 구분된다.

5층. 거무스름한 흙층……………………………………0.1m

4층. 석회암각력이 섞인(10%) 거무스름한 흙층………0.4m

3층. 석회암각력이 섞인(5%) 황갈색점토층……………0.8m

2층. 강자갈이 섞인(5%) 황갈색고결층…………………2.0m

1층. 잔모래가 섞인(5%) 황갈색점토층…………………2.5m

퇴적층의 두께는 5.8m이다.

이 동굴퇴적층(3층)에서는 260점의 사람뼈와 함께 질그릇, 치레거리를 비롯한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였다.

유적에서 나온 사람뼈들을 머리뼈와 몸뼈의 구조에 따라 오른쪽과 왼쪽, 머리에서 발끝까지 배렬하여 놓고 구체적으로 분류한 결과 모두 9개체로 감정되였다.

그 가운데서 1, 2호사람뼈는 200점으로서 가장 많은데 이것은 총점수(260점)의 약 80%를 차지한다.

사람뼈를 감정한 자료에 의하면 남자 6개체(1, 2, 3, 4, 5, 7호)와 녀자 3개체(6, 8, 9호)이며 50대는 2개체(1, 2호) 40대는 2개체(3, 4호), 30대는 1개체(5호), 20대는 3개체(6, 7, 9호), 10대미만은 1개체(8호)로서 남녀로소가 모두 포함되여있다. 그가운데서 남자는 녀자의 2배이고 나이는 20대, 50대, 40대, 30대, 10대의 순서로 개체수가 작게 나타난다.

1호머리뼈의 매 부위별두께는 현대사람보다는 두껍고 신인보다는 얇다.

2호머리뼈에서는 웃머리뼈의 두께가 1호머리뼈와 거의 같다. 2호머리뼈가 상대적으로 현대사람의 크기범위에 놓이는것으로서 현대조선사람의 직계선조인 조선옛류형사람에 속한다고 본다.

3호머리뼈에서 아래턱뼈의 두께는 현대사람과 신인사이의 크기범위에 해당된다.

1호머리뼈의 두께는 청파대동굴유적의 신석기시대문화층에서 드러난 3, 5, 10호머리뼈와 대비하여 보면 별로 차이가 인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3호머리뼈의 아래턱뼈두께를 룡곡2호동굴유적의 신석기시대문화층에서 드러난 1호아래턱뼈와 2호아래턱뼈, 대흥1호동굴유적의 신석기시대문화층에서 드러난 8호아래턱뼈와 대비하여 보면 역시 그 차이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면 주현동유적에서 드러난 머리뼈의 인류학적특징이 구체적으로 어느 족속갈래에 해당되는가를 론하기로 한다.

1, 2호머리뼈들을 보면 귀점에서의 머리뼈높이가 각각 123.0mm, 119.5mm로서 아주 큰 부류에 속하지만 얼굴뼈의 웃높이는 각각 78.0mm, 79.0mm로서 중간부류에 속한다. 따라서 1, 2호머리뼈들은 그 높이가 상당히 높지만 얼굴뼈는 중간정도로서 그리 높지 않은 인류학적특징을 나타낸다.

이미 알려진바와 같이 조선사람은 그가 어느 시대에 또 어디에서 살던 사람이든 얼굴의 높이는 중간정도이나 머리뼈의 높이는 상당히 높은것이 특징이다.

유적에서 나온 뼈시료의 ESR년대는 7500±570년이다.

결과적으로 주현동유적의 사람뼈들은 현대조선사람의 시초류형인 조선옛류형사람의 유골에 해당된다고 볼수 있다.

이 유적에서 드러난 사람뼈들은 사람의 골격을 이루는 거의 모든 뼈들이 완전히 그대로 보존되여있다. 특히 1, 2호사람뼈들은 머리뼈와 목등뼈, 몸통뼈, 다리뼈 등 사람의 해부학적구조에 해당되는 모든 뼈가 다 배렬되여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주검을 정히 안치하는 매장풍습의 일단을 보여주는 증거로 된다.

이미 알려진 신석기시대 조선옛류형사람뼈들은 여러 유적들에서 일부 발굴되였지만 주현동유적에서와 같이 다량 출토된 유적들은 없다.

그러나 주현동유적에서 드러난 조선옛류형사람뼈는 개체수에 있어서나 머리뼈의 몸뼈결합정도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유적들과는 대비되지 않을 정도로 풍부하게 보존되여있다.

또한 유적에서 사람뼈들은 수평적으로는 동굴의 남쪽벽과 서쪽벽사이의 동서길이 4m, 남북길이 2m구간에서, 수직적으로는 지표로부터 0.6~1.2m깊이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여있다.

사람뼈의 수평분포도

사람뼈의 수평적, 수직적인 집중분포는 이 유적을 동굴무덤으로 볼수 있게 한다.

또한 하나의 무덤장소에 남녀로소에 해당되는 9개체분의 주검이 함께 드러난것은 당시 씨족공동묘지를 쓰던 풍습의 일단을 보여주는것으로 된다.

지난 시기에 발견된 룡곡제1호동굴 유적 5문화층과 룡곡제2호동굴유적 2문화층. 중리동굴유적 3문화층, 대흥1호동굴유적 2문화층, 청파대동굴유적의 신석기시대문화층과 대흥 3호동굴유적, 림경산동굴유적 등에서 나온 신석기시대유적들에서는 조선옛류형사람뼈들이 일부 발굴되였으나 한 장소에서 이렇게 많은 조선옛류형사람뼈가 나온것은 주현동유적뿐이다.

이것은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이 인류발상지의 하나이며 우리 나라에서 인류진화의 발전과정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는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