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마쯔시로에 서린 피맺힌 원한

 2020.12.2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는 지난날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원쑤입니다.》 (김정일전집》 제16권 175페지)

마쯔시로는 어떤 곳인가.

도꾜로부터 북서쪽으로 160km 떨어진 나가노현소재지 나가노시의 남동부에 있는 마쯔시로는 봄철의 꽃놀이와 온천으로 이름났으며 오랜 력사를 가진 불교절간을 비롯한 문화유적들도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아드는 관광지이다.

하지만 이곳이 일제에 의해 무참히 학살된 수많은 조선사람들의 피맺힌 원한이 서린 땅이라는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못하다.

태평양전쟁에서 패전국면에 처한 일제는 1944년 초부터 본토에서 《최후결전》을 하려는 망상밑에 전시최고통수기구인 대본영과 《천황》의 거처 그리고 일부 정부기관들을 마쯔시로에로 옮길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7월에 이르러 싸이판섬이 점령당함으로써 전선은 일본본토에로 더욱 가까워졌다. 그리하여 일제는 1944년 10월 4일 마쯔시로에 총연장길이가 10여km나 되는 지하갱도를 건설할것을 명령하였고 11월 11일부터 건설이 시작되였다. 일제는 저공비행에 의한 폭격이 불리하고 굳은 암반으로 이루어져있는 마쯔시로에 지하갱도를 건설하고 여기에서 전쟁지휘를 계속함으로써 어떻게 하나 패전국면에서 벗어나보려고 최후발악하였던것이다. 공사는 극비로 취급되여 《마쯔시로창고공사》(략칭 《마(10.4)공사》)라고 불리웠다.

일제는 침략전쟁지휘소인 마쯔시로지하대본영을 전적으로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동원하여 건설하였다.

당시 공사설계가 완성되자 일제는 곧 조선총독부에 조선인로동자들을 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먼저 《징용》으로 징집된 2 000명의 조선사람들이 현해탄을 건너 마쯔시로의 비밀공사장으로 끌려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일제는 이미 일본 각지에서 《징용》으로 끌려가 고역을 강요당하고있던 조선사람들을 골라내여 이 공사판으로 끌어갔다. 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마쯔시로의 지하공사장에 끌려가 노예로동을 강요당한 조선사람들의 수가 하루평균 7 000명이상이였으며 때로는 1만명을 넘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일제가 전쟁의 운명, 《제국》의 운명과 관련된 그토록 중요한 비밀공사에 자기 나라 로동자들도 아닌 식민지조선의 인력을 동원하기로 하였겠는가. 단순히 임금을 적게 지불하고 로동보호시설 같은것들을 갖추어주지 않고도 마음껏 부려먹을수 있다는 타산에서만이 아니였다. 여기에는 보다 흉악한 목적이 깔려있었다.

그것은 공사가 끝난 다음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일제는 지하대본영공사가 다 끝난 다음에는 공사에 동원시켰던 전체 조선인로동자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함으로써 그 비밀을 덮어버릴것을 노렸던것이다. 그야말로 조선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극악한 악귀, 살인마들만이 할수 있는 타산이였다.

당초에 이런 끔찍한 흉계를 세우고 조선사람들을 끌어간것만큼 일제는 그들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으며 짐승보다 더 혹사시켰다. 마쯔시로의 고역장에 끌려간 조선사람들에 대한 일제의 학대는 이루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하였다.

당시 공사장에 끌려가 고역을 강요당한 체험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공사의 제일 위험한 일은 조선사람들이 맡았는데 먼지가 가득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발파가스가 미처 빠지지 않은 갱도안으로는 언제나 조선사람들이 내몰리웠다. 그리하여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작업과정에 가스에 질식되여 쓰러졌다.

조선사람들은 이렇게 아무러한 로동보호시설도 갖추어져있지 않은 고역장에 새벽 4시부터 끌려나가 하루 13~15시간 지어 16시간이상씩 감독들의 채찍에 얻어맞으면서 바위를 까내고 무거운 돌들을 져날랐다.

생활조건은 더 말할것도 못되였다. 가축사료나 같은것으로 만든 밥에 소금을 넣어 먹이다나니 소화도 잘 안되는데다가 량도 적었기때문에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시력이 떨어져 앞을 볼수 없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숙소로 리용된 함바는 널판자로 만든 집이였으므로 겨울에는 널판자사이로 눈가루가 날려들어왔다. 이러한 숙소에서의 생활에 대하여 《꼭 얼음포단에서 잠을 잔것같다.》, 《방안인지 돼지우리인지 알수 없는》 매우 렬악하고 비위생적인 형편이였다는 체험자들의 증언이 전해지고있다.

조선사람들은 공사장이나 함바에서 조선말을 하였다는 터무니없는 리유로 감독들에게 사정없이 폭행을 당하였다. 《너무나도 매를 맞아 나중에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입에서는 피가 나왔다. 그래서 대답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다시 폭행이 가해지군 하였다.》는 체험자들의 증언은 일제가 조선사람들을 얼마나 학대하였는가를 잘 보여주고있다.

공사장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공사가 끝나자 《비밀보장》때문에 참살당하는 운명을 면치 못하였다. 《천황》의 침실공사에 내몰리였던 180여명의 조선인로동자들도 단 한명도 살아남지 못하였으며 그밖에도 헤아릴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극비밀리에 집단학살당하였다.

마쯔시로는 조선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였으며 굶주림과 노예적학대, 죽음의 생지옥이였다.

일제의 만행으로 하여 조선사람들의 원한이 서린 곳은 비단 마쯔시로뿐이 아니다. 일제의 발길이 미친 모든 곳, 조선과 일본, 만주는 말할것도 없고 태평양상의 무수한 섬들에도 조선사람들의 피맺힌 원한이 서려있다.

력사적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일본반동들은 과거 조선인민이 입은 인적 및 물질적피해에 대한 법률적증거자료를 내놓으라고 파렴치한 주장을 하고있다.

이것은 과거에 일제가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온갖 치떨리는 반인륜적죄행들을 은페시키고 책임을 회피하며 배상을 하지 않으려는 교활한 속심에서 출발한것이였다.

일본반동들이 피해자인 조선인민에게 저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그 무슨 증거를 요구하는것은 지난날 일제에 의해 참을수 없는 고통과 재난을 강요당한 전체 조선민족에 대한 가증스러운 모독으로 된다.

력사적사실들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이야말로 우리 인민과 한 하늘을 이고살수 없는 철천지원쑤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일제가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만고대죄는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여도 반드시 계산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