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 박명순
2016.11.4.
현지지도는 절세의 위인들이신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께서 조국과 혁명, 인민에 대한 무한대의 사랑과 헌신으로 펼치신 류례없는 대중령도방식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의 한평생은 끊임없이 인민들을 찾으시는 현지지도의 한평생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6권 465페지)
령도자가 현실속, 대중속으로 들어가는것은 현실발전의 요구와 대중의 준비정도에 맞는 투쟁목표를 제기하고 대중과의 사상정신적, 감정정서적뉴대를 공고히 하며 그들의 정신력을 불러일으키는데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력사적으로 옳은 정치, 훌륭한 정치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을 보면 의례히 현실속으로 파고들었다. 특히 로동계급의 수령들의 정치활동력사를 보면 대중속에 들어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며 활동한 사실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수령님들처럼 끝없이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는것을 혁명을 이끄는 기본방식으로, 자신들의 온 생애와 활동을 특징짓는 고유한것으로 체질화하지는 못하였다. 현지지도는 우리 수령님들께서 력사상 처음으로 창조하시고 한평생 견지하신 대중령도방식이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현지지도는 이민위천의 사상이 현실적으로 구현된 령도방식으로서 인민대중의 힘을 남김없이 발양시켜 우리 혁명과 건설에서 세기적승리를 안아온 근본요인의 하나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현지지도를 통하여 가장 과학적이며 현실적인 로선과 정책을 구상하고 작성제시하시여 인민대중을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이자 곧 혁명의 요구이며 과학적인 로선과 정책은 인민대중속에 있다는것이 위대한 수령님의 지론이였으며 언제나 인민들속에 계시며 인민들의 소박한 생각이나 귀속말도 당과 국가의 로선과 정책에 담으시는 분이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하기에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이 한결같이 인민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을수 있었으며 광범한 인민대중으로 하여금 비상한 영웅적위훈과 혁신을 낳게 하여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세인을 놀래우는 기적과 혁신이 창조될수 있었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현지지도를 통하여 인민대중과 혈연적뉴대를 맺고 끊임없이 공고화해오신 인민적령도자의 귀감이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현지지도는 말그대로 인민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수만리길이였으며 인민대중과 생사를 같이하시며 시련과 난관을 앞장에서 돌파해나가신 무한한 헌신과 희생의 로정이였다.
불비쏟아지던 전화의 나날에는 우리 병사들이 싸우고있는 곳에 나라고 왜 못가겠는가고 하시며 최전방전호에까지 나와 우리 전사들을 뜨겁게 포옹해주시였고 제강소에 가시여서는 2 000℃의 고열로 타번지고있는 로앞에 서시여 로동자들의 수고를 헤아려주시였으며 광산과 탄광을 찾으시여서는 수천척 지하막장에서 일하는 로동자들을 찾아 광차와 탄차를 타시고 아찔한 지하갱막장까지 들어가시고 80고령의 년세에도 인민들에게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이시려는 간절한 소원을 푸실 때까지 농민들과 함께 포전에 계시겠다고 하시며 청산리와 리현리, 열두삼천리벌과 연백벌, 금당벌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의 포전길을 걸으시던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을 우리 인민은 심장속에 눈물겹게 아로새기고있다. 정녕 우리 수령님의 현지지도는 인민들에게는 행복만을 주시고 자신께서는 어렵고 힘든 길만을 찾아 걸으신 친어버이의 진정한 사랑이였으며 위대한 인간, 인민의 어버이로서의 체질화된 생활방식이였다.
위대한 김정일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현지지도방법을 그대로 이어받으시여 대중속에 들어가는것을 혁명가의 제일가는 보약으로 내세우시며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였다.
끝없이 현실속으로 들어가시며 혁명과 건설을 령도해나가시는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불멸의 위인상은 그이께서 야전식령도방식을 체질화하신데서 뚜렷이 나타나고있다. 세계가 경탄하는 야전식령도방식에는 시간과 강도와 질적수준에 있어서 력사상 류례없는 새로운 경지의 현지지도를 펼쳐가시는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특출한 군상과 고매한 풍모가 그대로 담겨져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끊임없이 현실속에서 당과 국가, 군대사업에서 제기되고있는 실태를 료해하고 전투명령도 주시며 그 과정에 온 나라 인민들의 생활도 돌보시면서 전반적조선혁명을 이끄시였다.
선군의 기치를 높이 드시고 오성산의 칼벼랑길과 1211고지, 초도의 풍랑길, 대덕산의 최전연초소들을 찾으시였으며 북방의 밭머리에서 구운 감자 몇알로 끼니를 에우시면서 감자농사혁명의 불길도 지펴주시고 희천의 험산준령을 몇차례나 넘고넘으시며 병사들이 건설한 발전소의 물길굴까지도 몸소 걸으시며 밤에는 밤대로 달리시고 새벽에는 또 새벽대로 몸소 운전대를 잡으시고 야전차를 몰아 주체98(2009)년 한해에만도 200여개에 달하는 나라의 전역을 달리시는 장군님의 모습은 말그대로 총포탄이 울부짖는 격전장에서만 볼수 있는 야전장군의 모습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활동보도는 말그대로 현지지도보도로 일관되여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인가 자신께서는 현지지도로 날과 날을 보내기때문에 어느 하루도 편안하게 잠을 자보지 못하였다고, 잠을 자는것은 현지지도의 길에 차안에서 잠간 눈을 붙이는것이라고 하시는가 하면 렬차에서 생활하는것이 습관되여 그런지 렬차를 타야 잠이 온다고, 렬차에 오르면 집에 온것 같이 느껴지고 반대로 집에 들어서면 려관에 온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 말씀들은 그이의 야전식생활의 강도와 그것이 령도의 어느 한 계기, 어느 한 시기에 한한것이 아니라 수십년 세월속에 체질화해오시는것임을 절감할수 있게 한다. 우리 장군님께 있어서는 입으신 옷도, 드시는 식사도, 달리는 렬차도, 승용차도, 지어 그이께서 하시는 리발마저도 야전이라는 말과 잘 어울려있다.
세상에 나라도 많고 나라마다 지도자들이 있지만 우리의 장군님처럼 혁명과 건설의 대격전장을 그대로 자신의 집무실로 정하고 당과 국가, 군대와 인민을 이끌어나가는 정치가는 없다.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현지지도는 그이의 무한대한 혁명열, 애국열을 동력으로 조국땅 방방곡곡을 주름잡으며 신화적으로 진행되였으며 그것으로 하여 온 나라에 비약의 폭풍을 안아오고 반만년민족사에 길이 빛날 변혁을 가져올수 있었다.
실로 우리 수령님들의 현지지도는 력사가 알지 못하는 불멸의 로정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에 개선하신 때로부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근 50년동안 인민들속에서 보내신 시간은 그 절반에 달하는 근 24년간의 기나긴 세월, 8 650여일을 이루고있다.
이 기간 우리 수령님께서 걸으신 발자취를 다 이어놓으면 그대로 이 나라의 지도가 되며 생신날, 명절날, 휴식일에 현지지도의 길을 걸으신 회수는 무려 7년이 넘는 세월을 이룬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생애의 전기간 지구둘레를 17바퀴나 돈것과 맞먹는 연 167만 4 610여리의 강행군길을 걷고걸으시며 전국의 1만 4 290여개 단위를 찾으시였다. 이 가운데서 선군혁명령도의 전기간 현지지도하신 단위수만도 연 1만 2 790여개이며 로정은 157만 4 980리에 달한다.
오늘 우리 나라의 그 어디에 가나 위대한 수령님들의 거룩한 령도업적을 전하는 현지지도사적비들이 정중히 모셔져있다.
혁명과 건설의 각이한 단계와 년대들에 온 나라의 방방곡곡을 찾으시여 남기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현지지도는 위대한 혁명실천으로 시대와 력사앞에 남기신 인민적인 대중령도방식의 총서이며 한평생 줄기차게 이어오신 인민행으로 하여 이 땅우에는 인민대중의 혁명적열의가 용암처럼 분출되는 위대한 력사, 백전백승의 영웅적위훈과 기적의 새 력사가 펼쳐질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