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위대한 태양의 자애로운 품속에서

 2020.3.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비날론을 연구한 리승기박사의 공로가 매우 큽니다.》 (김일성전집》 제83권 55페지)

우리 나라 력사의 갈피에는 특출한 과학적발명으로 나라의 부강번영에 적극 이바지한 과학자들이 많다. 그들가운데는 비날론의 발명가인 리승기선생도 있다. 리승기선생의 이름을 부르면 먼저 떠오르는것이 하얀 비날론섬유이다.

리승기선생은 비날론의 발명과 더불어 나라의 과학기술과 화학공업발전을 위한 길에 지울수 없는 자욱을 남긴 세계적인 과학자이다.

세계과학의 최첨단에서 위대한 발명을 한 리승기선생의 인생길은 고심어린 탐구의 길은 피타는 노력으로 헤쳐야 성공의 절정에 오를수 있으며 과학자의 값높은 삶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품속에서만 빛난다는 귀중한 진리를 새겨주고있다.

리승기선생은 조선봉건왕조말기에 태여나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 망국노의 쓰라린 생활을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불우한 운명을 타고난 그였지만 민족의식이 강하였던 가정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는 과정에 민족을 위한 학문을 연구할 지향을 품게 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역땅에서 피타게 고학을 하면서 민족적차별과 멸시를 받았지만 그속에서도 일류급수재로 이름을 날리였다. 기어이 학문으로 조선사람의 슬기와 본때를 보일 민족적자존심과 과학적야심을 안고 연구사업에 전심해온 그는 30대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폴리비닐알콜계 합성섬유인 비날론을 발명하는 특출한 연구성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암흑의 그 세월 리승기선생의 처지와 비날론의 운명은 너무나도 비참하였다. 일제의 헌병대감방에서 8.15해방을 맞이한 그는 해방의 감격과 환희를 안고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외세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그 꿈을 실현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과학을 해도 조선민족을 위한 과학, 조선사람을 위한 과학을 하려는 리승기선생의 과학의 꿈과 리상을 활짝 꽃피워주신분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공화국에 들어온 리승기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각별한 사랑과 믿음속에 가렬처절한 전쟁의 불길속에서도 비날론연구사업을 마음껏 해나갈수 있었으며 마침내 자기의 오랜 숙망을 실현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해방전쟁이 개시된 며칠후인 주체39(1950)년 7월초 한 일군을 파견하시여 리승기선생을 비롯한 과학자, 기술자들을 데려올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은정깊은 조치에 의하여 그해 7월 공화국의 품에 안긴 리승기선생은 함흥에서 화학공장 기사로 자기의 사업을 시작하였다.

리승기선생은 자기의 오랜 숙망인 비날론을 연구하는 사업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 나라가 전쟁의 불구름에 휩싸여있던 때 리승기선생이 평안북도 청수에서 비날론연구사업을 계속하도록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1(1952)년 4월 27일 평양에서 소집된 과학자대회에 리승기선생을 불러주시고 주석단에 앉게 하시였으며 토론까지 하도록 크나큰 사랑을 안겨주시였다.

이날 대회휴식시간에 주석단에 앉았던 리승기선생을 몸가까이 부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간 연구사업진행정형을 료해하시고 과학자들에게 할일이 많다고 하시며 함께 손잡고 일을 많이 하자고 고무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1(1952)년 6월초 외국에 사람을 보내시여 실험기구와 시약을 구하여 보내주시는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지극한 신임과 세심한 보살핌에 무한히 고무되여 리승기선생을 비롯한 연구집단은 비상한 정열에 불탔으며 드디여 주체45(1956)년에 첫 비날론시제품을 내놓게 되였다.

리승기선생이 첫 비날론시제품을 만들어냈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를 소집하시고 비날론연구사업정형에 대한 문제를 토의하게 하시고 회의에서 리승기선생이 보고를 하도록 하시였으며 비날론생산을 공업화하기 위하여 미진된 일련의 기술적문제들을 빨리 연구완성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7(1958)년 6월 24일 청수비날론중간공장에 찾아오시여 연구사업정형을 일일이 물어보시고 애로되는것을 다 제기하라고 하시고는 일군들에게 리선생이 요구하는 자재나 자금은 요구대로 대주도록 하자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이들에게 새로운 힘이 되여 대담성과 용감성을 불러일으켜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 구상하신 《비날론대전투》의 작전계획을 완성하기 위하여 주체48(1959)년 3월 25일 몸소 현지에 나오시여 과학자들과 담화하시고 비날론공장을 1만t능력이 아니라 2만t능력으로 건설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모든것을 비날론공장건설에로!》라는 전투적구호를 제시하시고 비날론공장건설에 전당적, 전인민적력량이 집중되게 하시여 공장건설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9(1960)년 9월 리승기선생이 병으로 입원치료를 받는다는것을 아시고 강원도내 농민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을 위하여 올린 산삼 두뿌리를 그에게 보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화학공업발전전망에 깊은 주의를 돌리시고 비날론공장건설이 한창 진행되고있던 때 화학계통의 연구기관들을 함흥에 집결시켜 국가과학원 함흥분원을 창설해주시였으며 주체50(1961)년 2월에 리승기선생에게 원장의 중책을 맡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승기선생의 연구성과에 기초하여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매장량이 풍부한 석회석과 무연탄을 원료로 하는 주체적이며 대규모적인 비날론공업을 창설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0(1961)년 5월 6일 비날론공장조업을 선포하시고 리승기선생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면서 《오늘은 리선생의 소원이 풀리는 날입니다.》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비날론생산이 공업화된 후 리승기선생은 계속하여 비날론의 질을 높이고 품종을 늘이기 위한 연구사업과 모비론을 공업화하기 위한 사업에서 많은 성과를 이룩하였다.

주체52(1963)년 중국에서 처음으로 세계과학자대회가 열리였다.

여기에는 세계의 이름있는 과학자들이 참가하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회의를 사회하는 의장으로부터 대회참가자들의 대다수가 모두 유럽사람들이였다.

주은래총리는 중국의 과학자들가운데서 그들과 겨룰만 한 사람들을 골라보았지만 그러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그의 머리속에는 비날론의 발명으로 세계를 놀래운 조선의 과학자 리승기선생이 떠올랐다.

주은래는 위대한 수령님께 특사를 파견하여 리승기박사를 회의에 참가시켜줄것을 정중히 청원하였다.

그때 당시 그의 건강은 매우 나빴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표단성원으로 부인도 함께 보내여 그를 돌보도록 하시였으며 몸소 치료대책까지 세워주시는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그때 주은래의 의도를 알지 못하였던 대회조직측에서는 인민대회당에서 개회를 선포하고 연회를 차리는 행사때 조선대표단의 자리를 구석진 곳에 정해주었다.

대회당에 들어서던 주은래는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 지난해에 중국의 무한에서 세계섬유전람회가 열렸을 때 그곳의 입구에 놓인 선생의 립상화를 본적이 있다고 하면서 리승기선생과 부인의 손을 잡고 주석단으로 이끌어갔다.

순간 장내에서는 조선에도, 아시아에도 세계적인 과학자가 있다는 긍지의 분출로 박수소리가 요란히 터져나왔다.

주체59(1970)년 11월 리승기선생이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에 참가하였을 때 그의 숙소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승기선생을 만나주시고 려관음식이 입에 맞는가, 객지생활에 불편한 점은 없는가를 일일이 알아보시고는 더 아픈데는 없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리승기선생에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정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더욱 뜨거워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81(1992)년 12월 12일 조선지식인대회 참가자들을 축하해주시고 그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시기 위하여 평양체육관에 나오시였다. 대회참가자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시며 촬영대앞으로 걸음을 옮기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승기선생을 보시고 반기시며 그에게로 다가가시였다. 그러시고는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이제는 년로한데 건강에 주의하라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리승기박사는 수많은 박사, 교수들을 양성하였으며 저술활동도 많이 하였다. 그의 대표적저작은 《비날론》과 《비날론론문집》이다. 단행본 《비날론》은 다른 나라에서도 번역출판되였다. 리승기선생의 론문은 지금도 베를린과 빠리에 보관되여있다.

리승기선생은 주체46(1957)년 8월 제2기부터 제9기에 이르기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되여 사업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승기선생을 주체69(1980)년에는 김일성상계관인으로, 주체50(1961)년에는 로력영웅으로, 주체41(1952)년에는 원사로, 주체47(1958)년에는 인민상계관인으로, 주체48(1959)년에는 박사로, 주체50(1961)년에는 교수로, 주체75(1986)년에는 인민과학자로 내세워주시였으며 국기훈장 제1급을 비롯한 많은 훈장과 메달을 수여받도록 하여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승기선생이 90번째로 맞는 생일날에는 생일상까지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의 품속에서 보람찬 과학탐구의 나날을 보내던 리승기선생은 주체85(1996)년 2월 8일 91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승기선생의 서거에 대한 비보를 받으시고 몹시 애석해하시면서 나라의 과학발전에 바친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주시였으며 그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하고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비날론의 발명가, 세계적인 과학자라는 높은 명성보다 조선의 과학자, 조선로동당의 지식인이라는 긍지와 존엄을 더욱 귀중히 여긴 리승기선생, 그는 위대한 태양의 품속에서 오늘도 영생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