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우리 나라 구석기시대 력사연구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도록 하시여

 2019.10.28.

오늘 우리 인민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우리 당과 국가, 무력의 최고수위에 높이 받들어모신 크나큰 영광과 행복 그리고 하나의 혈통과 언어, 생활풍습을 가진 유구한 민족으로서 높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세계무대에서 자기의 존엄과 기상, 슬기를 높이 떨쳐나가고있다.

우리 인민이 지니고있는 커다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 유구한 력사를 가진 조선민족의 한 성원이라는 높은 민족적자존심에도 일찌기 우리 민족의 기원에 대한 견해를 바로잡아주시여 우리 나라 력사의 첫 페지에 관한 문제를 빛나게 해결하도록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령도가 뜨겁게 어려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류의 발생발전과 사회의 발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는것은 우리 학생청년들이 과학적인 세계관, 옳바른 사회력사관을 가지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김정일전집》 제1권 91페지)

어느 나라 력사에서나 중요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그 나라의 력사를 창조한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이 언제 어디서 발생, 발전하였는가 하는 력사의 첫 시작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 문제는 단순한 학술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유구성 특히 우리 민족의 기원문제와 직접 잇닿아있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나 1950년대말까지만 하여도 우리 나라 력사학계에서는 우리 민족 의 기원에 대한 문제, 구석기시대의 존재문제에 대한 옳바른 견해가 서있지 않았다.

지난날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제와 그 어용학자들은 조선에는 구석기시대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신석기시대에 와서야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와 청동기시대를 거치지 않고 주변나라들의 도움으로 석기와 청동기, 철기를 함께 쓴 금석병용시대를 거쳤다고 떠벌이였다. 이 《금석병용설》은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슬기로운 조선민족을 모독하는 반동학설로서 우리 나라 인류문화발전의 한 단계를 뭉청 잘라버리고 조선민족이 《렬등민족》이며 우리 민족의 문화는 《수입문화》이라는것과 조선의 력사발전이 기형성을 띠고있다는것을 《론증》해보려는 어리석은 목적으로부터 출발한 반동적인 궤변이였다. 일제는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을 합법화하기 위하여 그러한 궤변을 고안해냈던것이다.

한편 당시 조선력사에 대하여 쓴 글들이나 교과서들에는 우리 나라에서 사람의 기원에 대하여 명백하게 쓰지 않고 매우 모호하게 쓴 글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날 사대주의에 물젖은 일부 학자들은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지 않았다고 하여 우리 나라에는 구석기시대가 없었으며 다른 지역에서 구석기시대를 거친 사람들이 신석기시대에 우리 나라 땅으로 이주해왔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일부 학자들이 철두철미 조선사람의 넋을 가지고 자기 나라의 력사를 연구하려는 립장에 서지 않고 교조주의적이며 사대주의적인 견해에 매달려있은것과 관련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46(1957)년 3월 9일 고전적로작 《우리 민족의 기원에 대한 견해를 바로가질데 대하여》에서 우리 민족의 기원에 대한 그릇된 견해들을 까밝히시고 조선사람의 기원문제를 해명하는데서 주체적인 견해를 가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선에서 사람의 기원문제는 철저히 우리 나라에서 발굴한 고고학적자료에 기초하여 과학적으로 해명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우리 나라에서도 고고학적으로 자료를 발굴하면 조선민족은 다른 나라의 땅에서 흘러들어와 생겨난것이 아니라 바로 이 땅에서 생겨났으며 산좋고 물맑은 이 강산에서 독자적인 생활과 문화를 창조하였다는것을 밝혀낼것이라고 확신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 땅은 지질구성을 보아도 인류가 발생한 신생대를 충분히 거치였으며 사람이 태여날수 있는 자연지리적조건을 가지고있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 조선민족의 조상이 북쪽이나 남쪽, 남의 나라에서 흘러와 생겨났다고 보는것은 잘못이라고 명백하게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밝혀주신 우리 민족의 기원에 대한 사상은 우리 나라 구석기시대 력사연구에서 교조주의적이며 사대주의적인 견해를 타파하고 주체를 철저히 세우는데서 강령적인 지침으로 되였다.

그후 주체52(1963)년 봄 라선시 굴포리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굴됨으로써 일제의 반동적인 궤변과 일부 학자들의 사대주의적이며 교조주의적인 주장은 여지없이 론박되였으며 우리 나라에도 구석기시대가 있었고 그때에 벌써 우리 나라 땅에서 사람이 살고있었다는것이 과학적으로 해명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52(1963)년 5월 3일 고전적로작 《우리 나라에서 발굴된 구석기시대의 유적에 대하여》에서 굴포리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을 발굴한것은 대단한것이지만 그것은 우리 나라 구석기시대문제를 해명하는데서 첫 걸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굴포리의 구석기시대 유적에 대한 발굴과 연구사업을 심화시키고 그 보다 더 오랜 유적과 유물을 찾아낼데 대한 구체적인 방향과 방도들을 밝혀주시였다.

그때로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구석기시대유적발굴과 연구사업이 힘있게 진행되였으며 그 과정에 많은 성과가 이룩되였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알려진 굴포리유적외에도 구석기시대 전기, 중기, 후기에 해당하는 검은모루유적, 동암동유적, 대현동유적, 덕천승리산유적, 만달리유적, 부포리유적, 청파대동굴유적, 금옥동굴유적을 비롯한 수많은 구석기시대유적들과 고인화석, 신인화석, 조선옛류형사람의 유골들과 함께 많은 유물들이 발굴됨으로써 우리 나라땅에서 인류력사의 려명기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인류진화발전이 합법칙적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는것이 과학적으로 확증되게 되였다.

참으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일찌기 우리 민족의 기원에 대한 주체적인 견해를 밝히시고 우리 나라 력사의 첫 페지에 관한 문제를 빛나게 해결하도록 현명하게 이끄신것은 우리 민족이 대대로 길이 전하고 영원히 빛내가야 할 불멸의 업적으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