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김은철
2023.3.2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을 가로질러 흐르는 보통강기슭에는 천리마거리, 창광거리, 만수대거리를 비롯한 수도의 5개 거리가 뻗어나가는 절묘한 명당자리에 고색찬연한 보통문과 조화를 이루면서 로동당시대의 대표적건축물의 하나인 인민문화궁전이 자기의 건축미를 자랑하며 위엄있게 솟아있다.
사진. 인민문화궁전
인민문화궁전이 일떠섰을 때 보통사람들은 물론 이름있는 건축가들도 천리마거리가 시작되는 보통강반의 그 위치를 명당자리라고 탄복하여마지 않았다.
수도의 명당자리에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기지인 인민문화궁전이 일떠서게 된데는 어버이수령님의 현명한 령도가 뜨겁게 깃들어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민문화궁전은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민족적형식에 사회주의적내용을 담아 잘 건설한 기념비적건축물입니다.》 (《김정일전집》 제22권 192페지)
천리마거리건설이 진행될 당시 설계일군들은 거리의 한쪽면을 살림집이나 기관건물을 앉히지 않고 비워놓은 조건에서 거기에 체육관이나 하나 세우고 보통문과 잇닿아있는 훌륭한 부지는 그냥 록지를 만들어 보통강유원지와 련결시키려고 하였었다. 그러다나니 천리마거리건설이 완공단계에 들어섰을 때까지도 그 자리는 비여있게 되였다.
주체59(1970)년 6월 하순 어느날 천리마거리건설장을 돌아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쩐지 그 주변의 형성계획이 잘된것 같지 않다고 하시면서 서문통도로상에 조선식건물을 하나 앉히는것이 좋겠다고, 조선식으로 옥류관 같은것을 록지속에 지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집은 동뚝에 붙여지어서 보통강이 내려다보이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여러 차례의 현지지도와 백수십차례의 강령적교시를 주시여 설계와 시공에서 나서는 수많은 문제들을 하나하나 다 풀어주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어버이의 세심한 령도에 의하여 인민문화궁전은 주체63(1974)년 1월에 준공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물의 이름도 친히 《인민문화궁전》이라고 지어주시고 궁전의 성격과 사명, 그 관리운영방법들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인민문화궁전은 주위에 있는 보통문과 평양체육관, 청류관, 창광원, 빙상관을 비롯한 공공건물들, 고층살림집들과 잘 어울리면서 수도의 풍치를 한껏 돋구어주고있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문화궁전에서 여러가지 회의를 많이 하는데 당의 요구는 인민문화궁전을 그렇게 리용하는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물론 인민문화궁전에서 회의도 할수 있지만 수령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경치좋은 보통강반에 궁전을 크게 지어주시고 《인민》자를 붙여 부르게 하신것은 인민들이 늘 즐겨찾아가 흥성거리는 인민의 궁전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인민문화궁전은 우리 인민들과 청년들이 즐겨찾아가 늘 흥성거리는 종합적인 문화생활거점이 되게 하여야 한다고 간곡하게 가르쳐주시였다.
하여 오늘 인민문화궁전은 평범한 조선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기지로, 국내외의 주요회의와 행사들이 진행되는 장소로 되고있다.
이렇듯 수도의 명당자리마다에는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하늘처럼 내세우고 떠받드신 인민을 위한 건축물들이 일떠서 인민대중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제도의 참모습을 뚜렷이 실증해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