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조선의 민족당과 - 엿

 2017.12.2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원래 조선사람은 조상때부터 엿을 달여먹었습니다.》 (김일성전집》 제52권 318페지)

엿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당과류의 하나이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오래동안 주로 자연상태의 산꿀을 채취하여 그대로 먹거나 조미료로 음식가공에 리용하여왔다.

이 과정에 당분섭취를 기본으로 하는 당과류에 대한 생활상수요가 높아가고 그것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증대되면서 마침내 우리 선조들은 싹튼 보리길금이 낟알에 들어있는 농마를 당분으로 분해한다는것을 알게 되였으며 이에 기초하여 낟알로 지은 밥이나 죽에 보리길금을 넣어 삭힌 다음 자루에 넣어 짜낸 물을 다시 졸여 엿이라는 당분을 만들어내였다.

엿이 우리 민족이 만들어낸 고유한 당과류라는 사실은 엿이란 말자체가 순수 조선말이라는것을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엿이란 말은 잡아당기면 끊기지 않고 늘어나면서 계속 이어진다는 뜻을 가진 우리 말 동사인 《이어나다》, 《잇다》의 《잇이》에서 《이엇이여시》의 말소리변화과정을 거쳐 엿이라는 말로 고착되였다.

엿에는 음식감에 따라 수수나 강냉이로 만든 엿, 흰쌀이나 찹쌀로 만든 엿, 감자나 고구마로 만든 엿이 있다.

그가운데서 으뜸가는 엿으로는 찹쌀로 만든 엿을 꼽았다.

1611년에 출판된 《도문대작》과 1765년경의 《증보산림경제》에는 찹쌀죽에 길금가루를 넣어 삭힌 다음 후추, 생강, 볶은깨 등을 넣어 졸여낸 찹쌀엿이 가장 좋다고 하였다.

엿에는 묽게 졸인 물엿과 되게 졸여 굳힌 강엿이 있다.

물엿은 가정들에서 흔히 만들었는데 여러가지 음식을 만들 때나 음식맛을 돋구는데 리용하였다.

옛기록에서는 물엿을 조청이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자연상태의 꿀을 《청(淸)》이라고 한데로부터 인공적으로 만든 꿀이라는 뜻에서 조청이라고 불렀다.

17세기말에 편찬된 《주방문》에 의하면 물엿은 찹쌀을 가루내여 끓는 물에 풀어 단지에 넣고 찬물에 푼 길금가루를 두어 삭힌 다음 자루에 담아 짜낸 물을 달이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강엿은 물엿을 졸여서 굳힌 엿으로서 주로 어린이들의 간식으로 리용되였다.

옛 기록에서는 강엿색갈이 검은데로부터 《흑당》, 갖풀처럼 되직하고 굳게 엉긴 엿이라는 의미에서 《교이》라고도 하였다.

엿에는 엿의 색갈과 모양에 따라 흰엿, 검은엿, 판엿, 가락엿, 알엿 등이 있었다.

흰엿은 강엿을 더운 상태에서 여러번 잡아당겨 만든 엿이였다.

엿색갈이 흰데로부터 옛 기록에서는 《백당》, 민간에서는 엿의 모양이 마치 손가락처럼 생겼다고 하여 《가락엿》 또는 《메엿》이라고 하였다.

19세기초에 편찬된 《규합총서》에는 흰쌀밥에 더운물에 푼 길금가루를 넣고 약한 불에서 덥힌 다음 밥이 삭으면 베자루에 담아 짜낸 물을 다시 졸여 닦은깨, 껍질벗긴 호두살, 후추가루를 골고루 섞어 손으로 잡아당겨 만든다고 씌여있다.

우리 인민들은 해마다 설명절이면 여러가지 음식과 함께 흰엿을 만들어먹는 풍습이 있었다.

엿에는 이밖에도 엿을 만들 때 부재료를 섞어 넣거나 겉에 묻히는 재료에 따라 무우엿, 호박엿, 대추엿, 밤엿, 호두엿, 콩엿, 깨엿, 잣엿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우리 나라에는 지방에 따라 특색있는 엿들이 적지 않았다.

평안도와 강원도지방의 강냉이엿, 황해도와 충청도지방의 무우엿, 함경도지방의 감자엿 등은 해당 지방의 특산품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종류가 다양한 엿은 사람들의 건강과 치료에도 널리 리용되였다.

엿은 기침과 기관지염, 만성위염, 기관지천식, 위 및 십이지장궤양, 페결핵때 여러가지 방법으로 물엿을 재가공하거나 약재로 되는 부재료를 넣어 달여 병치료에 효과적으로 리용하였다.

지나온 우리 민족의 생활의 갈피마다에는 엿과 관련된 풍속들도 적지 않다.

그러한 풍속으로서는 엿치기놀이, 엿장사소리 등이 있다.

엿치기놀이는 가락엿을 꺾어서 생긴 구멍의 크기로 승부를 가르는 민속놀이의 하나이다.

가을이나 겨울철이면 집집마다 엿을 만들었는데 이때 아이들은 제각기 자기 집에서 만든 가락엿을 가지고 나와 엿을 꺾어서 거기에 생긴 구멍을 대비하면서 제일 큰것을 이긴것으로, 제일 작거나 구멍이 전혀 없는것을 진것으로 평가하였다.

엿장사소리는 엿장사군들이 어깨에 엿목판을 메고 한손에는 커다란 가위를 쥐고 절거덕거리며 부르던 세태민요의 하나였다.

엿장사군들은 해학적인 말과 익살로 사람들의 인기를 끌어 엿을 많이 팔 목적으로부터 엿장사소리를 즐겨 불렀다.

그러한 엿장사소리는 주로 각 지방의 유명한 엿이나 엿을 만든 재료와 형태를 소개하면서 어서 엿을 사가라고 호소하는 내용으로 엮어졌다.

엿장사소리는 전국적으로 다 불리워졌으나 그중에서도 평안도 강서지방이 유명하였다.

특히 평안도 강서지방에서 불리워진 엿장사소리는 강원도의 잣엿, 개성의 깨엿, 황해도의 수수엿 등 각 지방의 유명한 엿들을 소개한것으로서 이채를 띠였다.

이와 같이 엿은 그 가공방법과 리용의 모든 면에서 우리 민족의 창조적지혜와 재능이 담겨져있는 우수한 당과로서 사람들의 건강과 장수, 식생활에 다양하게 쓰이였으며 오랜 력사적기간 우리 인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널리 리용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