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신년사를 그만두신 사연

 2022.12.14.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정말 우리 수령님의 한평생은 동지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한평생입니다.》 (김정일전집》 제34권 311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조국과 인민을 위한 한생, 혁명동지들을 위한 한생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력사에 주체55(1966)년도의 신년사가 공백으로 남아있게 된 사연을 아는 사람은 많지 못할것이다.

주체55(1966)년을 방금 앞둔 주체54(1965)년의 섣달 그믐날이였다.

당시 내각 부수상이였던 김일동지가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전사들의 신상에 대하여 누구보다 걱정하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쩐지 그 진단을 도저히 믿을수 없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에서 이름있는 21명의 의사들을 당중앙위원회본부청사에 부르시여 그의 병에 대한 진단을 다시 하도록 하시였다.

검진결과는 어느 한 조선인민군병원에서 온 렌트겐의사 한명을 내놓고는 모두가 이미전에 진단한대로 위암이라는것이였다.

절대다수의 의사들이 위암이라고 진단을 내렸으니 그것은 정말 위대한 수령님에게 있어서 믿기 어려운 가슴아픈 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음이 무겁고 진정할수 없으시여 계획하였던 신년사도 그만두시고 평안남도 룡강(당시)쪽으로 나가시였다.

룡강쪽으로 달리는 차창밖에 눈길을 주신채 눈덮인 산야를 이윽히 바라보시며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귀가에는 위암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의사의 목소리가 크게 울리여 왔고 수령님께서도 어쩐지 그의 주장을 믿고싶으시였다.

달리던 차를 세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즉시 평양에 전화를 걸어 외무상을 찾으시여 쏘련에 해당 분야에 조예가 있는 전문의사들을 보내줄것을 요구하는 전보를 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양력설날아침에 일찌기 력사에 전례가 없는 사랑의 전파가 우주공간에 울려퍼지게 되였다.

당시 흐르쑈브의 현대수정주의로 인하여 쏘련과 우리와의 관계는 몹시 랭랭하였지만 쏘련정부는 위대한 수령님의 의사를 매우 정중하고 성의있게 대하였다.

쏘련정부는 1966년 1월 1일 오후에 양력설을 쇠고있던 각 분야의 전문과 의사들을 한명씩 선발하였는데 그들속에는 그전에 쓰딸린의 주치의사를 하던 사람도 있었다.

쏘련정부에서는 양력설날에 온 전보인것으로 하여 시간이 급하다고 생각하고 려객항공편을 기다림없이 전문의사들을 군용비행기에 태워보내였다.

군용비행기안은 몹시 추웠지만 의사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요청에 따라 자기 나라 정부에서 조직한 사업인것으로 하여 몇시간동안 참고 견디면서 날아왔다.

우리 나라에 도착한 쏘련의사들은 사연을 전해듣고 양력설마저 한 일군의 건강을 위해 바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한량없는 사랑에 경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쏘련의사들이 도착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5(1966)년 1월 2일 아침 즉시에 룡강을 떠나 평양에 도착하시여 초보적으로 검진한데 의하면 암이 아닌것 같다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안도감으로 마음을 놓으시면서 김일동무를 당장 그들과 함께 보내여 세계적으로 이름있는 그 나라의 의사에게서 다시 확진을 받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일동지의 병이 암이 아니라는 보고를 받으시고 만시름을 다 잊으신듯 못내 기뻐하시였다.

이것이 바로 주체55(1966)년 새해 신년사가 공백으로 남아있게 된 사연이였다.

참으로 혁명동지가 불치의 병으로 진단받았을 때 그것이 아니기를 바라는 절절한 기대속에 여러 차례의 진단을 조직해주시고 또다시 외국에까지 보내주시여 불치의 병이 아니라는것이 확진되였을 때 만시름을 놓으시는 우리 수령님은 참으로 위대한 인간애, 뜨거운 혁명적동지애의 최고화신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