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현지지도의 길에서 드신 아침식사

 2019.9.21.

한평생 인민들과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언제나 소박하고 검소하게 생활하시였다.

한없는 검박성은 위대한 수령님의 천품이시였다.

대원들과 꼭같이 한가마밥을 드시며 항일혈전을 헤쳐오시였고 전화의 그날엔 인민들이 조밥을 먹으면 우리도 조밥을 먹어야 한다고 하시며 검박한 생활을 하여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그지없이 고결하신 성품과 생활기풍은 인민들의 생활이 유족해진 나날에도 변함이 없었다.

한평생을 인민행렬차에서 보내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기에 수령님의 현지지도의 갈피에는 오늘도 우리의 가슴을 뜨거운 격정으로 젖어들게 하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드신 아침식사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언제나 대원들과 같이 한가마밥을 먹고 같은 잠자리에서 자군 하였습니다.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인민들이 조밥을 먹을 때 나도 조밥을 먹으며 싸웠습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지난 시기처럼 생활하고있습니다. 그렇게 하여야 마음이 편안합니다.》 (김일성전집》 제92권 147페지)

하늘땅을 뒤덮은 짙은 포연속에서 바야흐로 전화의 세번째 봄이 다가오고있던 주체42(1953)년 2월 21일이였다.

백양산기슭에 어둠도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 또다시 어느 한 공장의 로동계급을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장을 돌아보시고 로동자들이 아침식사를 하는 식당에도 들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인사를 올리는 로동자들에게 따뜻이 답례하시고 국이 식는데 어서 식사하라고 이르시였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수저를 들지 못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식사를 하라고 거듭 이르시면서 밥과 찬은 어떠한가, 밥량이 작지는 않은가를 일일이 알아보시였다.

그러시고는 밥을 받으려고 배식구앞에 서있는 로동자들을 둘러보시며 밥은 어떻게 내주는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식권을 받고 내준다고 말씀드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로동자에게 식권 한장을 얻자고 겸허하게 말씀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식권을 한번 보시려는줄 알고 로동자는 주머니에서 식권을 한장 꺼내여 그이께 드리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식권을 잠시 들여다보시고 배식구에 놓으시면서 밥 한상을 청하시였다.

취사원아주머니는 로동자들이 배식구에 대고 늘 하는 말과 신통히도 같은 말씀이여서 범상히 듣고 밥이며 찬을 담아가지고 배식구로 다가오다가 깜짝 놀라 굳어졌다. 식사를 청하신분이 다름아닌 위대한 수령님이심을 알아본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그러우신 어조로 어려워말고 있는대로 어서 내보내달라고 하시면서 수원들이 받으려는것을 만류하시고 손수 밥그릇과 찬그릇을 받아드시고 한 로동자의 옆자리에 앉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밥은 여러 사람이 같이 먹어야 맛이 있다고 하시면서 수저를 드시고 밥이며 찬을 일일이 맛보시였다.

노란 통강냉이밥, 시래기국에 김치가 전부였다.

로동자들이 먹는 식사그릇을 손수 받아드시고 로동자들옆에 스스럼없이 앉으시여 수저를 드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그 공장로동계급은 오늘도 잊지 못하고있다.

이렇게 이어간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의 로고속에 인민의 행복이 마련되였기에 우리 인민들은 수령님께서 편히 지내시게 하려고 온갖 지성을 다 바치였다.

하지만 오직 혁명밖에 모르시는 그이께서는 사치와 랑비를 극도로 미워하고 멀리하시였으며 검박하게 사시는것을 제일 큰 락으로 여기시였다.

주체81(1992)년 5월 5일 새벽 5시 30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개성시를 현지지도하시기 위하여 평양을 떠나시였다. 개성까지 갔다오자면 일정이 긴장하기때문에 아침 일찍 떠나야겠다고 하시면서 새벽에 평양을 출발하도록 하시였던것이다.

아직은 사위가 어둠에 잠겨있고 온 도시가 단잠에서 깨여나고있던 때였다.

수행일군은 차가 달리는 동안 초조감을 누르지 못하고 연송 손목시계에 눈길을 주었다. 어차피 개성에 도착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아침식사를 대접해야겠는데 좀 늦을것 같았기때문이였다.

시계바늘이 7시를 가리킬 때 승용차는 개성을 14km 앞둔 금천읍을 지나고있었다.

앞서달리던 위대한 수령님의 승용차가 갑자기 멈춰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여 강냉이를 갓 심은 밭들을 둘러보시다가 일군들에게 여기서 잠시 쉬면서 아침식사를 하고 떠나자고 하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한것은 아침식사를 개성시 현지에 가서 하는것으로 계획하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떠난것으로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한 일군들의 심정을 헤아려보시고 밥걱정은 하지 말고 자신께서 준비해오신 곽밥으로 식사를 하자고, 이렇게 하면 개성시인민들에게 페를 끼치지 않고 시간도 절약해서 좋다고 하시는것이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도로옆에 펑퍼짐한 잔디밭이 있는 곳을 가리키시며 저기가 좋으니 다들 모여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떠나자고 이르시였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농장원들도 아침저녁이면 솜옷을 껴입는 쌀쌀한 날씨에 인가도 없는 대도로옆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곽밥을 드시겠다고 하는것이였다.

현지에 가면 인민들에게 페를 끼칠가보아 아침밥을 미리 준비시키신 사려깊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동서고금의 어느 력사의 갈피를 뒤져보아도 한 나라의 수령이 인민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길가에서 아침식사를 하시였다는 례는 없으며 수행일군들이 배고플세라 달리는 차안에서 맞춤한 장소까지 골라보시고 아침식사를 하라고 이르시는 자애롭고 다심한 사랑 또한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것이였다.

이것은 우리 수령님께서만이 지니고계시는 천품중의 천품이 아닐수 없었다.

곽밥은 여느 곽밥보다 약간 클사하였는데 열어보니 식은 밥에 콩나물과 도라지무침이 반찬으로 정갈하게 담겨져있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온병의 물을 따라 일군들의것과 꼭같은 곽밥으로 소박한 아침식사를 하시였다.

그리하여 식사는 15분도 못되여 끝나고말았다.

7시 20분에 승용차행렬은 다시금 개성을 향해 달려 7시 50분에 개성에 도착하였다.

사실 어버이수령님께서 현지지도의 로상에서 야외식사를 하신 자리는 셀수 없이 많다.

인민들이 따뜻한 방에서 아침상을 마주하고있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수도에서 수백리 떨어진 인적없는 도로옆 이슬젖은 풀밭에서 검소한 아침식사를 드시고 또다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는것이였다.

인민을 위한 천만고생을 락으로 여기신 우리 수령님이시여서 길없는 심산속, 갈대 설레이는 길섶, 섬마을 도래굽이 그 어디에나 이런 가슴뜨거운 헌신의 자욱을 아로새기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평생은 바로 이렇게 흘러갔다.

정녕 어버이수령님은 이렇게 인민과 함께 사시며 인민의 심장속에 영원히 간직되신 한없이 고결한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