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 박사 부교수 리찬문
2020.4.8.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쟁시기에는 말할것도 없고 해방후에도 새 사회건설과 인민을 위해 한평생을 바쳐오시면서 언제 한번 자신의 탄생일을 크게 쇠신적이 없습니다. 참으로 우리 수령님 같으신분은 동서고금에 없습니다.》 (《김정일전집》 제17권 347페지)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이던 주체41(1952)년 4월 15일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40돐을 뜻깊게 맞이하게 되였다.
14살의 어리신 나이에 눈덮인 고향 만경대를 떠나시여 백두광야에서 조국해방을 위한 피어린 눈보라만리길을 헤치시면서 언제 한번 생신날을 편히 쇠신적이 없는 위대한 수령님, 탄생 20돐과 30돐도 항일대전의 전장에서 맞으시였고 해방후에는 동지들의 생일상을 차려주시면서도 자신의 생일을 경축하려는데 대하여서는 언제 한번 허락하지 않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당시 최고사령부에는 우리 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장군님의 탄생 40돐을 열렬히 축하하여 성대히 경축할것을 열망하는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의 편지가 더미로 쌓이고있었다.
특히 위대한 수령님의 각별한 사랑과 은정을 받아온 창덕학교시절의 옛 담임교원이였던 강량욱선생은 아무리 전쟁이라고 하여도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40돐만은 그냥 지나칠수 없다고 하며 부인과 함께 수령님께 삼가 올릴 놋대야와 탁상시계를 최대의 성의가 깃든 지성품으로 준비하면서 그이께 탄생 40돐만은 국가적으로 성대히 경축하여야 한다는 간절한 소청을 드리려고 마음다지고있었다.
비단 그의 심정뿐이 아니였다.
하여 내각의 한 일군은 전체 일군들과 인민들의 소망을 담아 다채로운 행사들은 조직하지 못하더라도 4월 15일 당일날 축하연회를 비롯한 몇가지 행사만이라도 조직하도록 허락해주실것을 간절히 말씀드렸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이 축하행사를 조직하려 하기때문에 자신께서는 4월 15일 내각에 나오지 않고 최고사령부에 있을 작정이라고 하시면서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고 밀막아버리시였다.
이렇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탄생일에 그 어떤 행사도 조직하지 못하게 하시였을뿐아니라 당과 정부의 지도일군들과 성, 중앙기관책임일군들, 각급 인민위원회 일군들이 무시로 찾아오는 내각청사에 나와계시면 많은 사람들이 축하의 인사를 드리러 올수 있기때문에 내각에 나오시지 않고 제한된 일군들만이 출입할수 있는 최고사령부 집무실에서 일을 보시려는것이였다.
4월 10일부터 중앙신문들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40돐에 즈음하여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수록하여 발행한 《김일성장군의 략전》을 일제히 특간호로 발간하였다.
《로동신문》 4월 10일부는 1면의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독자들에게:오늘호와 함께 〈김일성장군의 략전〉을 별지로 발송한다. 편집국》이라고 알리면서 여러면에 걸쳐 《김일성장군의 략전》을 함께 편집하여 내보냈다.
쓰딸린은 인민을 위하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축하전문과 함께 가장 절실한 식량을 선물로 보내드리였으며 여러 나라 당 및 국가수반들도 그이께 축전과 함께 지성어린 선물들을 보내여왔다.
그러나 온 나라 전체 인민들이 경축의 분위기에 잠겨있던 4월 15일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최고사령부지휘처 집무실에서 이른새벽부터 전선과 후방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주시며 조용히 정상적인 집무에 여념이 없으시였다.
이날 아침 7시 30분경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예고도 없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이 찾아왔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보시던 문건을 놓으시고 몸소 문밖에까지 나오시여 옛 스승을 맞아주시였다.
그가 정중히 올린 선물을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겸허하신 어조로 이러지 마시라고, 무엇하러 이런것을 가지고 오는가고, 자신께서는 원래 생일을 쇠지 않는다고, 더우기 전쟁으로 나라가 불바다속에 잠기고 인민들이 어렵게 사는데 어떻게 생일을 쇠겠는가고 말씀하시였다.
이날 저녁 최고사령부 식당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내각책임일군들과 최고사령부 장령, 군관들을 비롯한 30여명의 성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소박한 연회가 조용히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고사령부 군악대성원들이 전선에 나가 부르던 노래도 들어주시고 춤도 보아주시였다.
군악대 무용수가 춤을 다 추었을 때였다.
박수를 쳐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인사를 드린 그가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이 뜻깊은 날에 노래를 들려주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리자 악사들과 일군들이 박수를 치면서 그이께서 이 기쁜 날 노래 한곡 불러주실것을 간청드리였다.
환한 미소를 지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국가의 중요행사를 보장하면서도 전선에 나가 예술활동을 벌리며 수고하는 동무들이 듣고싶다니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시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의 은근하면서도 낮으신 음성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흘러들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도 역시 《사향가》를 부르시였다.
노래를 부르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군악대 악사들과 연회참가자들은 항일전의 나날 사랑하는 고향과 조국산천을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오로지 조국해방을 위하여 백두광야에서 눈보라만리길, 혈전의 만리길을 헤쳐오시며 겪으신 그이의 천만고생이 가슴에 사무쳐와 조용히 두볼을 적시였다.
싸우는 조선은 민족적영웅, 전설적위인의 탄생 40돐을 이렇게 소박하게 맞이하였고 위대한 전승을 앞당겨주는 뜻깊은 4월 15일 저녁은 이렇듯 조용히 깊어갔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은 인민을 위해 탄생하시여 인민들과 고락을 같이하시고 인민을 위하여 한생을 다 바치신 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