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위대한 태양의 해발이 되시여

 2020.3.2.

우리 인민은 오늘도 주작봉마루에서 붉은기와 함께 계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를 삼가 우러르며 위대한 태양의 해발이 되시여 한생을 수령결사옹위로 빛내이신 어머님의 혁명생애를 숭엄한 마음으로 돌이켜본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어머님의 한생은 길지 않았지만 어머님은 조국과 인민,시대와 력사앞에 불멸의 업적을 쌓으시고 혁명가로서,인간으로서 한생을 어떻게 살며 투쟁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빛나는 모범을 보여주신것으로 하여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3권 290페지)

김일성장군님은 우리 민족의 태양이십니다.

우리모두 김일성장군님의 해발이 됩시다.》

준엄한 적구를 종횡무진하시던 항일의 나날 백두산녀장군께서 하신 이 뜻깊은 말씀에는 위대한 수령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한생을 수령님의 혁명전사로 살며 싸우시려는 절대불변의 신념이 뜨겁게 비껴있다.

고난의 행군시기에 있은 일이다.

항일혁명이 형언하기 어려운 난관과 시련을 겪고있던 그 시기 조선인민혁명군대오에서도 사상적으로 변질된 배신자들이 나타났다.

청봉밀영의 책임자로 있던 엄광호가 바로 그런자였다.

엄광호는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청봉밀영에서 부상자들의 치료와 생활조건을 보장해주고 후방일군들과 함께 농사를 지어 부대의 식량예비를 마련하고 예비병실을 지을데 대한 명령을 받았으나 그 집행을 의식적으로 태공하였다.

본래 계급적립장이 확고하지 못한데다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조선혁명의 로선과 방침을 깊이 연구하지 않았으며 자기의 신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엄광호는 이미 오래전에 혁명을 포기하였다.

그렇기때문에 엄광호는 언제나 혁명은 혼자서 다 아는것처럼 으시댔으나 정작 적들의 반혁명적공세가 강화되여 시련의 시기에 부닥치게 되자 겁을 먹고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받은 임무는 줴버리다싶이 하였던것이다. 혁명이 암담하니 제 몸건사나 잘하자는것이 그자의 속심이였다.

나중에 이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무장투쟁로선과 방침을 반대하고 혁명대오의 통일단결을 파괴하려고 책동하였다.

엄광호는 무엄하게도 학습토론시간에 혁명의 고조기요 저조기요 하면서 조선혁명의 로선과 방침을 헐뜯었으며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국경지대로 진출하는것은 《무모한 행동》이라고 비방중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로선이나 작전적방침과 어긋나는 그릇된 사상에 대해서는 추호의 타협도 모르시는 김정숙동지께서는 이자의 사상적병집을 즉시에 간파하시고 투쟁의 불을 지피시였다.

김정숙동지에 의하여 자기의 본색이 적라라하게 드러나게 되자 엄광호는 《간첩단사건》이라는것을 조작하여 김정숙동지를 비롯한 녀대원들을 모해하려고 하였다.

엄광호가 《자백》을 강요할 때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우리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이다, 우리는 김일성장군님의 전사다, 너는 누구냐, 너는 혁명의 원쑤다, 혁명은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것이다, 똑똑히 기억하라, 너는 혁명앞에 지은 죄로 하여 처단을 면치 못할것이다라고 준엄하게 단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목숨바쳐 옹호고수하시려는 김정숙동지의 비타협적인 투쟁에 의하여 엄광호의 패배주의적이며 배신적인 정체는 백일하에 드러나고 청봉밀영에 조성되였던 위기는 극복되게 되였다.

그때만이 아니라 항일의 나날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절대적권위를 목숨으로 견결히 옹위하시였으며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을 끝까지 관철하기 위하여 비타협적으로 투쟁하시였다.

해방후에도 김정숙동지께서는 한몸의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지켜 싸우시던 항일전의 그 나날처럼 종파사대주의자들과 민족반역자들을 비롯한 혁명의 원쑤들의 온갖 공격과 비난으로부터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을 견결히 옹호고수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몸소 경위대원이 되시여 낮과 밤을 지새우시며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지켜드리시였으며 수령님의 새 조국건설로선을 받들고 공장과 농촌을 끊임없이 찾고찾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꿈결에도 그리시던 사랑하는 고향을 지척에 두시고 위대한 수령님의 건국로선을 받들어갈 일념으로 가슴 불태우시며 공장복구에 떨쳐나선 로동계급부터 먼저 찾아가신 이야기를 오늘도 부령의 갈림길은 길이 전하고있다.

해방후 새 조국건설로 들끓는 함경북도의 여러단위를 찾으시던 김정숙동지께서 고무산세멘트공장복구정형을 료해하려고 떠나신것은 주체34(1945)년 12월 어느날이였다.

고무산은 회령으로 가는 도중에 있으며 자동차로 달리면 회령까지 는 멀지 않은 거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 타신 차가 회령으로 가는 길목에 이르렀다.

고향에 한번 다녀오시기를 바라는 일군들의 간절한 청을 받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없는 그리움을 담아 지척인 회령을 하염없이 바라보시다가 일군들에게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지금 장군님께서는 새 조국건설로선을 제시하시고 그를 실현하시기 위하여 끼니도 휴식도 잊으시고 일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어찌 … 고향땅부터 찾겠습니까. 나는 여기 일을 하루속히 끝내고 평양으로 올라가 장군님을 보위하여야 합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날 그리운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들리지 않으시고 고무산세멘트공장의 로동계급을 찾으시였다.

정녕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한생은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의 한생, 혁명을 위한 투쟁의 한생, 인민의 행복을 위한 헌신의 한생이였으며 수령의 혁명전사는 삶의 순간순간을 어떻게 빛내여야 하는가를 시대와 력사앞에 뚜렷이 보여준 친위전사의 고귀한 한생이였다.

위대한 태양의 해발로 한생을 빛내이신 김정숙동지의 숭고한 혁명생애를 돌이켜보며 우리 인민은 하늘의 태양이 있어 만물이 소생하듯이 혁명의 수령을 높이 받들어 모실 때 내 조국의 무궁한 번영과 인민의 영원한 행복이 담보된다는것을 다시금 심장으로 절감하고있다.

우리 인민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고귀한 혁명생애를 숭고한 귀감으로 삼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결사옹위하며 그이의 령도를 받들어 이 땅우에 온 세계가 우러러보는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우고야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