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박사 부교수 조길현
2021.2.2.
우리 나라에 자동차공업이 창설되여 나라의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게 된데는 위대한 수령님의 불면불휴의 로고와 뜨거운 심혈이 깃들어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덕천자동차공장에도 어버이수령님의 로고가 뜨겁게 깃들어있습니다.》 (《김정일전집》 제6권 200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해방직후부터 자동차공업을 창설하기 위한 토대를 하나하나 닦아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에 미림에 평양자동차공장(자동차를 수리하고 부속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내오도록 하시였으며 주체39(1950)년 4월에는 당시의 산업성부상에게 자동차조립공장의 터전을 골라보도록 하시고 청진에 그 공장을 건설하도록 하시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일시적인 전략적후퇴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덕천읍(당시)을 지나시다가 차를 세우시고 승리산을 바라보시며 한 일군에게 산이 묘하게 생겼는데 그 산의 암질을 알아보라고 지시하시였다. 산의 암질상태를 보고받으시고 암질이 좋으니 석수도 적게 흐를것이라고 하시면서 일군들에게 이 자리를 잘 새겨두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벌써 그때에 여기 승리산에 자동차공장을 건설하실 원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후에 자동차공업을 창설하기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주체47(1958)년 8월 어느 한 일군을 부르시여 지금 농업부문에만 하여도 약 3만대의 자동차가 필요하고 거기에 공업부문과 국방부문에서 요구하는 자동차까지 다 사다주자고 하면 돈도 없고 팔아주자는 나라도 없거니와 그렇게 해서는 언제 가도 자동차문제를 해결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자체로 자동차를 만드는수밖에 딴 방도가 없다고, 우리의 손으로 반드시 자동차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자동차를 만들데 대하여서는 이미 전쟁전부터 생각해왔었는데 전쟁이 한창이던 때 맞춤한 곳에 자동차부속품제작공장을 전개한것도 앞으로 우리자체로 자동차를 만들 기초를 닦아놓기 위해서였다고 하시였다.
덕천의 로동계급은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전달받고 모두가 건설적인 의견을 내놓으면서 기어이 자기 힘으로 자동차를 만들어내겠다고 결의해나섰다. 설계도면이 없는 조건에서 설계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자동차를 분해하여놓고 설계를 하였고 부족되는 설비는 자체로 만들었다. 공장의 로동계급이 시제품생산에 달라붙었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산조건을 잘 보장해주도록 대책들을 세워주시였다. 그리하여 중앙기계설계연구소의 유능한 설계원들이 동원되고 내각명령으로 수많은 자재와 설비들이 투입되였으며 협동생산이 전국적판도에서 조직되였다.
그로부터 얼마후인 주체47(1958)년 10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그곳 로동계급을 찾으시여 어떻게 하나 자력갱생하여 자동차를 만들자고 항일유격대원들의 혁명정신을 본받아 우리의 손으로 자동차를 꼭 만들어야 한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녀가신 후 이곳 로동계급은 온갖 애로와 난관을 박차고 집단적기술혁신운동을 힘있게 벌림으로써 불과 40일만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자동차시제품을 만들어내였다.
주체47(1958)년 11월 18일 그들이 몰고온 시제품자동차를 보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장의 로동계급이 자동차를 자체로 만드느라고 애를 쓰고있는데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필요한 설비들을 알아보고 다 해결해주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부터는 다량생산으로 넘어가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대형프레스를 비롯한 필요한 설비들을 더 넣어주며 기술집단을 잘 꾸려주고 자동차생산이 늘어나는데 맞게 자동차용유리와 전기제품들을 대량생산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주체47(1958)년 12월 중순 어느날 밤에는 현지에 전화를 거시여 자동차를 생산하는 공장이 아직도 《자동차부속품제작공장》으로 되여있다는것을 아시고 공장이름을 《자동차공장》이라고 바꾸어달도록 해주시였으며 공장의 급수도 높여주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2.5t급 《승리-58》자동차와 함께 대형화물자동차 《자주호》도 생산하도록 현명하게 령도하여주시였다.
주체52(1963)년 4월 평양에서 열린 한 협의회에 공장의 일군들을 불러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는 2.5t급자동차만 생산해가지고서는 안되겠다고 하시면서 10t급자동차를 만들데 대한 과업을 제시해주시였다.
주체52(1963)년 4월 공장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0t급자동차를 만드는데 필요한 대형설비들을 해결해주도록 대책을 취해주시였으며 가공과 조립을 한곳에서 하지 말고 따로 하며 특히 기관을 만드는데 힘을 넣을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공장을 다녀가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험도 없는데다 설계도면도 없이 10t급자동차를 만들어야 하는 애로를 헤아리시고 그 견본품을 보내주시였다. 공장의 로동계급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10t급자동차를 뜯어놓고 설계도면을 그려가면서 부속품을 하나하나 깎아내여 자체로 만든 시제품자동차를 몰고 주체53(1964)년 6월초 평양에 올라와 위대한 수령님께 보여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동차를 운전해보게 하시고 적재함도 동작시켜보시며 앞으로 생산에서 바로잡아야 할 점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지적해주시였다.
처음이다보니 기술준비가 대량생산에 맞게 전반적으로 완성되지 못하여 공장의 일군들과 로동계급이 타개책을 모색하고있던 주체54(1965)년 1월 친히 공장에 전화를 거시여 기술준비를 완성하자면 설비와 자재가 얼마나 더 요구되는가, 철판은 어데서 받아쓰며 걸린것이 무엇인가를 일일이 알아보시였다.
주체54(1965)년 5월 공장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0t급자동차를 대량생산하자면 주물직장과 조립직장을 꾸리는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그 방도를 가르쳐주시였으며 부족되는 설비와 장비를 보충완비하기 위한 결정적인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5(1966)년 6월 공장일군들을 평양에 부르시여 자동차생산기지를 튼튼히 꾸리고 생산을 정상화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면서 일부 부족되는 설비와 기구들을 해결해주며 당장 걸리고있는 분사구와 연료뽐프생산설비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또한 협동생산품이 제때에 보장되지 못하고 그 질이 높지 못하다는것을 헤아리시고 자동차부속품을 생산하는 분공장을 따로 꾸릴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자동차들에서 기름이 새고 부속품가공의 정밀도가 보장되지 않아 자주 고장이 나는 실태를 료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6(1977)년 3월 공장일군들을 부르시여 《자주호》자동차의 질이 낮은것은 곡축을 개별가공하다보니 곡축의 정밀도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것과 주요하게 관련되여있다고 하시면서 그 해결방도로 자동가공반을 만들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공장의 로동계급이 《자주호》자동차의 질을 높이는데 계속 큰 힘을 넣으면서 운행에 편리하도록 구조도 바꾸고 형태도 새롭게 개조하였을 때인 주체71(1982)년 3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개조한 자동차를 보아주시면서 그전보다 아주 보기 좋다고 투박한 감이 없고 모양이 고와졌다고 하시면서 공장의 전체 종업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하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나라 자동차공업의 새 력사가 시작되였으며 오늘은 승리산이 나라의 위력한 자동차생산기지로 전변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