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사 부교수 박준호
2019.4.6.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김일성종합대학청사를 건설할 때 처음에 정한 대학위치가 고구려의 토성자리라는것을 아시고 대학위치를 다른데로 옮기도록 하시였으며 몸소 현지에 나가시여 대학터전을 룡남산마루에 잡아주시였습니다.》 (《김정일전집》 제8권 236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찌기 인민들을 애국주의사상으로 교양하는 사업에서 력사유적유물이 차지하는 의의와 중요성을 깊이 헤아리시고 이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은 우리 조국의 자그마한 청암동토성에도 어리여있어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의 숭고한 사랑과 업적을 길이 전해주고있다.
지금으로부터 70여년전인 잊지 못할 주체36(1947)년 9월 8일 이날은 숭고한 후대관과 민족애를 천품으로 지니신 어버이수령님께서 반만년의 우리 민족사를 빛내주시기 위하여 크나큰 로고를 바치신 뜻깊은 날로서 그날의 사연은 오늘도 만사람의 심금을 다시금 세차게 울려주고있다.
당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조국건설에서 민족간부양성사업이 차지하는 의의와 중요성을 깊이 헤아리시고 인민의 첫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사를 건설할데 대한 웅대한 설계도를 펼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웅대한 구상을 높이 받들고 9월 7일 김일성종합대학건설장에서는 건설의 착공을 알리는 모임이 성대히 진행되였는데 기초굴착과정에 건설장에서는 옛 고구려토성의 한쪽 모퉁이가 드러나게 되였다.
김일성종합대학건설장에서 옛 고구려토성자리가 드러났다는것을 아시게 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9월 8일 아침에 몇명의 력사학자들을 집무실로 부르시였다.
그들은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게 된 크나큰 감격과 기쁨속에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급히 달려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문가에까지 나오시여 력사학자 한사람한사람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며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자들에게 친히 의자도 권하시며 한가지 의논할 문제가 있어서 불렀다고 하시면서 종합대학건설장에서 고구려의 토성자리가 드러났다고 하는데 지금 설계대로 하면 토성이 얼마나 허물어지게 되는가에 대하여 다정히 물어주시였다.
설계대로 하면 토성자리가 약 200m가량 없어지게 된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부드러운 어조로 앞으로 우리 나라 력사를 더 잘 연구하고 민족문화유산을 옳게 계승발전시켜나가자면 력사유적들을 잘 보존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김일성종합대학의 터전으로 더 좋은 자리가 없겠는지 우리 같이 나가보자고 일군들과 함께 현지로 나가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온 나라의 전반사업으로 하여 그 어느때보다도 바쁘신 나날을 보내고계시는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그러나 돌보셔야 할 일, 가보셔야 할 곳들과 만나주실 사람들도 수없이 많았건만 자그마한 건설장에서 드러난 력사유적에 그리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며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현지에까지 나가보시려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며 일군들과 력사학자들은 감격을 금할수 없었다.
얼마후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승용차는 김일성종합대학건설장에 이르렀다. 건설장은 전날부터 내리던 비가 방금 멎은 뒤여서 길은 몹시 험하였고 풀숲도 비물에 흠뻑 젖어있었다.
차에서 내리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궂은 날씨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젖은 풀숲을 앞장에서 헤치시며 이미 대학터전으로 자리잡았던 둔덕으로 오르시였다.
원래 대학터전으로 자리잡았던 곳은 사방이 탁 틔여서 앞으로는 대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옆으로는 평양의 명승인 아름다운 모란봉과 잇닿아있는 그야말로 절승의 명당자리였다.
사방의 경치를 한참동안이나 둘러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잡초로 뒤덮인 나지막한 토성을 눈여겨 살펴보시고 토성을 따라 걸음도 옮겨보시고 나시여 일군들에게 대학의 위치로는 여기가 참 좋은 곳이라고, 하지만 옛토성을 허물고 교사를 지울수는 없다고 하시면서 대학의 위치도 중요하지만 토성도 보존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그리고 잠시동안을 두시고나서 일군들에게 수천년동안 내려온 고구려의 유적을 다문 몇m라고 해도 다칠수 없다고 하시면서 공사를 중지하고 대학터전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겠다고 단호히 교시하시였다.
인류력사가 시작되여 수수천년, 이 기나긴 세월 령도자도 많았고 력사유적 또한 수없이 많았다. 하건만 오랜 세월의 이끼속에 묻혀있고 비바람에 그 형체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되여버린 하나의 토성도 민족의 귀중한 재보로 여기시고 나라의 첫 대학의 터전까지 옮기시는 이런 놀라운 현실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새 조국건설로 나라일이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자라나는 후대들과 우리 민족을 위하여 한낮이 기울도록 오랜 시간 잡초가 무성하고 비물에 흠뻑 적은 길아닌 길들을 다 돌아보시고나시여 오늘의 김일성종합대학이 자리잡고있는 룡남산마루에 대학터전을 몸소 잡아주시였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력사가 깃든 하나의 옛토성이 자기의 모습을 오늘까지 그대로 보존할수 있었다.
그로부터 근 반세기가 지난 1990년대에 력사학자들은 청암동토성을 다시 발굴하여 고구려시기의 성벽아래에 단군조선시기의 성벽이 있다는 새로운 과학적사실을 밝혀냈다. 우리 민족의 반만년의 유구한 민족사를 체계화하는데서 커다란 기여로 된 이 놀라운 발굴소식에 접하였을 때 우리 인민들은 천리혜안의 예지로 먼 앞날까지 내다보시고 귀중한 옛성을 지켜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위대성에 감복하였으며 고구려력사만이 아닌 반만년의 유구한 우리 민족사를 지켜주시고 빛내여주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고마움의 정을 금치 못해하였다.
인간의 한생에서 하루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민족의 력사를 누구보다 귀중히 여기시며 찬란히 빛내여주시려고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의 이 하루는 사랑하는 인민을 위하여 바치신 위대한 헌신의 하루였다.
력사의 그날로부터 어느덧 장장 70여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흘렀다.
조선민족이 예로부터 평양에서 문화를 창조하고 활짝 꽃피워온 슬기로운 민족이라는것을 오늘은 물론 후세에도 길이길이 전해줄 청암동토성, 바로 이것은 절세의 애국자이신 어버이수령님의 뜨거운 민족애에 의하여 보존될수 있었으며 그 고귀한 업적은 영원할 우리 민족사와 더불어 길이 전해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