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평양시에서 남쪽으로 약 100여리정도 떨어진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에 위치하고있는 지탑리토성은 유구한 우리 민족사를 전하는 대표적인 고대성곽유적의 하나이다.
지탑리토성은 현재 많은 부분이 류실된 상태이지만 동북모서리부분에는 성벽의 일부가 남아있다.
남아있는 성벽을 보면 동쪽성벽은 약 150m, 북쪽성벽은 약 180m이며 그 높이는 대체로 3m정도이고 밑너비는 6m정도이다. 그러나 동쪽성벽과 북쪽성벽이 합쳐지는 모서리부분의 성벽은 다른 부분보다 더 높고 두텁게 쌓았기때문에 높이가 4m, 밑너비는 16m나 된다.
지탑리토성은 원래 동쪽성벽의 길이가 약 800m, 북쪽성벽의 길이가 600m, 서쪽성벽과 남쪽성벽의 길이가 각각 250m정도로서 둘레가 약 2㎞정도 되는 성이였다고 전해지고있다.
토성의 성벽은 아래성벽과 중간성벽, 웃성벽으로 구분되였다.
밑너비가 7.5m, 높이 3.5m되는 아래성벽은 자갈, 모래가 섞인 붉은 진흙을 성토하는 방법으로 쌓았는데 이 성벽에서는 돌도끼, 돌활촉, 갈돌 등 석기들과 전나무잎무늬그릇쪼각, 점선띠무늬그릇쪼각 등이 나왔다.
중간성벽은 아래성벽의 바깥쪽 경사면과 아래성벽우에 진흙과 자갈, 모래가 섞인 갈색사질흙으로 두께가 50~80㎝정도 되게 쌓았다. 이 성벽에서는 아래성벽에서 나온것과 같은 새김무늬질그릇쪼각들이 나왔다.
웃성벽은 아래성벽의 바깥면을 보강하면서 진흙과 모래, 자갈을 엇바꾸어가며 판축하는 방법으로 쌓았다. 이 성벽에서는 돌도끼쪼각, 갈색새김무늬질그릇쪼각, 청동활촉 등과 함께 고대말기의 유물들인 배부른단지쪼각, 회색기와쪼각 등이 나왔다.
지탑리토성은 오래동안 고대 말기에 축조된 성으로 알려져있었는데 1994년에 진행된 발굴과 연구를 통하여 아래성벽이 단군조선시기에 처음 쌓아졌다는것이 새롭게 해명되였다.
지탑리토성 아래성벽이 단군조선시기에 처음으로 축조되였다는것은 성벽이 성토방법으로 축조되였다는것과 성벽과 그 주변에서 돌도끼, 갈돌, 갈색새김무늬질그릇쪼각, 돌단검,곤봉대가리,뿌리나래돌활촉,팽이그릇쪼각 등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된 사실을 통하여 알수 있다. 성토방법은 성을 쌓기 시작하던 초시기의 성벽축조방법이며 아래성벽에서 신석기시대후기의 유물들이 발견된것은 고대국가가 형성되던 초시기에 주변의 흙을 리용하여 성을 쌓았기때문이다.
지탑리토성안에서 신석기시대문화층, 팽이그릇관계문화층, 초기철기시대문화층이 겹놓인 상태로 드러난것, 토성안과 그 주변에 지탑리유적, 마산리유적 등 팽이그릇시기의 부락터들과 고인돌무덤들이 분포되여있는것 등도 이 토성이 단군조선시기에 처음으로 축조되였으며 그후에도 계속 리용되였다는것을 실증해준다.
이처럼 지탑리토성은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일대에서 단군조선시기에 처음으로 축조되였고 그후 2차에 걸쳐 증축되면서 오래동안 리용된 가장 대표적인 고대성곽유적의 하나이다.
경제활동과 교통조건이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자리잡고있는 지탑리토성은 청암동토성, 성현리토성 등과 함께 평양을 중심으로 한 우리 나라에서 단군조선의 성립과 발전과정, 정치세력들의 형성과 그 중심지, 고조선문화의 독자성 등을 전해주는 귀중한 고고학적자료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