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사람들의 인식활동과 실천활동은 신과 밀접히 련결되여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을 떠나서 세상만물의 리치를 설명할수 없었습니다.》
동방에서 처음으로 국가문명시대를 개척한 우리 선조들은 일찍부터 하늘신을 숭배해왔으며 그의 반영인 제천행사를 국가적인 규모로 진행하였다.
하늘신숭배사상은 하늘을 자연그대로 리해하는것이 아니라 하늘을 세계와 인간의 운명을 주재하는 신적존재로 내세우고 하늘신이 우주만물과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원래 원시시대 사람들속에서는 자연에 대한 공포심으로부터 해와 달, 땅, 산과 강, 큰 바위나 나무 등 개별적대상들에 대한 숭배사상이 나왔으며 그것이 발전하여 하늘신이 자연전체를 주재한다고 보면서 하늘을 숭배하는 사상이 나오게 되였다. 이러한 사람들의 소박한 념원을 리용하여 고대의 반동적사상가들은 하늘신숭배사상을 비롯한 여러가지 종교신비설들을 내놓고 그것을 저들의 사상적지배의 도구로 리용하였다.
고대에 들어와 천군, 신관과 같은 노예주계급의 사상적대변자와 통치배들은 원시사회말기에 싹트게 된 하늘신숭배사상을 노예주계급의 요구와 리해관계에 맞게 개작하여 종교적관념론으로 만들었다. 이로부터 국왕을 우주의
고조선의 통치배들은 하늘신숭배사상을 고취하면서 하늘에 제를 지내는 제천행사를 크게 벌려놓군 하였다.
이웃나라의 력사책들인 《삼국지》(권 30 동이 예전)와 《후한서》(권85 동이 예전)에는 고조선사람들이 《항상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주야로 술을 마시고 노래와 춤을 추었으며 이름을 무천이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였다.
바로 기록에 나오는 고조선의 무천은 이러한 성격을 띤 일종의 제천행사였다.
이와 관련되여 주목되는것은 개성시에서 조사확인된 해돋이바위이다. 개성시 삼거리에 위치하고있는 해돋이바위는 고조선시기의 하늘신숭배사상에 대하여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해돋이바위는 개성시 삼거리소재지에서 2㎞ 떨어진 천림산의 한 봉우리인 고일령의 정점에서 발견되였는데 높이가 6.3m, 너비가 4.7m, 두께 3.7m되는 화강암면에 새겨져있다. 바위면은 대충 다듬었는데 중심에 직경 40cm정도, 깊이 6cm정도의 기본적인 원형도형을 새기고 그 주위로 8줄기의 선들이 뻗어나간것처럼 형상되여있다. 그 둘레에는 일정한 깊이로 여러개의 홈구멍들이 새겨져있다. 그 앞에는 100여명정도의 사람들이 모여있을수 있는 정도의 공지가 펼쳐져있다. 여기서 중심의 원형도형은 태양이고 여러개의 홈구멍들은 지금으로부터 5 000여년전의 동쪽하늘가에 보였던 별자리를 새긴것이였다.
당시 사람들은 무한한 하늘세계에서 숭배할 대상을 해와 달, 별 등으로 규정하고있었다. 특히 태양을 하늘신의 숭배대상으로 여기고있었기에 바위에다 태양을 기본으로 하고 그 옆에 별들을 새겼던것이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력사문헌들에 의하면 고구려시조 동명왕은 《천제의 아들》이라고 하였고 광개토왕릉비에는 그를 《해와 달의 아들》이라고 찬양하였다. 이것은 하늘신의 아들은 《해와 달의 아들》로 불리웠다는것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의 인식에는 하늘신이자 태양신 또는 《해와 달의 신》이라는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놓고볼 때 단군조선시기의것에 해당되는 해돋이바위는 고조선사람들의 하늘신숭배사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해돋이바위앞에서 진행된 제천의식을 잘 말해준다고 볼수 있다.
이처럼 조선에서 발견된 이른 시기의 천림산의 해돋이바위는 선조들의 하늘신숭배와 제천행사를 확증하는 귀중한 물질적자료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