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조선의 한 녀성지휘자가 받아안은 위대한 어버이의 사랑

 2022.4.13.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작가, 예술인들이 자그마한 성과를 거두어도 분에 넘친 평가와 치하를 주시고 믿음과 사랑을 안겨주시며 거기에서 기쁨과 락을 찾으십니다.》 (김정일전집》 제17권 344페지)

음악예술의 밝은 미래를 떠메고 나갈 후비들이 훌륭히 자라고있는 우리 조선의 현실을 볼 때마다 한 녀성지휘자에게 더없는 믿음과 사랑을 안겨주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자애로운 모습이 떠오르군 한다.

평양국립가무단의 한 녀성지휘자는 주체56(1967)년 12월 1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4기 제1차회의를 경축하는 공연에서 어버이수령님을 처음으로 모시고 지휘를 하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공연이 시작되자 지휘자가 누구인가고 물으시고 한 일군으로부터 평양음악대학(당시)을 나온 녀성지휘자라는 대답을 들으시고는 우리 음악대학졸업생이란 말이지 라고 하시며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

주체62(1973)년 4월 15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혁명가극《금강산의 노래》를 우리 나라를 방문중이던 한 외국수반과 함께 보시였다.

공연이 끝나자 손님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시여 공연성과를 축하해주시고 기념사진도 찍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녀성지휘자를 몸소 찾으시고 지휘하는것을 보니 감탄할 정도라고 하시며 오늘 잠시의 휴식도 없이 지휘를 잘했다고 거듭 치하해주시며 녀성의 몸으로 지휘를 하자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고 념려해주시였다.

새세대 예술인들을 주체음악예술을 떠메고나갈 믿음직한 담당자로 키워 내세우시려는 어버이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은 이에만 그치지 않고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더더욱 뜨거워졌다.

주체83(1994)년 4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제12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한 로씨야민속가무단 단장일행을 만나주시는 자리에 녀성지휘자와 몇명의 예술인들을 불러주시고 이 녀성지휘자를 자신께서 안다고 하시며 지금 나이는 몇인가, 남편은 무슨 일을 하는가, 자식은 몇인가고 하나하나 물으시고나서 1970년 4월에 중국의 주은래총리가 우리 나라에 왔을 때 지휘자동무랑 함께 찍은 사진이 있을것이라고 20여년전의 일을 추억하시면서 그때 주은래총리가 중국에는 인구가 많지만 녀성지휘자는 키우지 못하였다고, 그런데 조선에서는 이렇게 훌륭한 인재가 났다고 하면서 부러워하던 생각이 난다고 하시였다.

잊지 못할 20여년전의 영광의 그날 공연을 보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은래총리와 함께 무대에 오르시여 녀성지휘자를 가까이 부르시여 총리에게 그를 소개하시였다.

주은래총리가 녀성지휘자에게 무슨 말인가 하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린 녀성지휘자가 어떻게 지휘를 그렇게 잘하는가 묻는다고 몸소 통역을 해주시였다.

녀성지휘자가 주은래총리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 자기를 키워주셨다고 자랑스럽게 대답하자 총리는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 어느 나라에서 지휘공부를 했는가고 다시 물었다. 녀성지휘자는 평양음악대학 지휘과를 졸업했다고 큰소리로 대답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못내 기쁘신 어조로 녀성지휘자의 이 말도 총리에게 통역해주시고나서 녀성지휘자의 등을 다정히 두드려주시며 그렇지, 우리 음악대학졸업생이지라고 말씀하시였다.

녀성지휘자가 외국류학생이 아니라 조선에서 음악공부를 하고 지휘를 배웠다는것을 알게 된 주은래총리는 인구가 많다고 하는 자기 나라에도 아직 녀성지휘자가 없다고 하면서 훌륭한 녀성지휘자를 키워낸 김일성동지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은래총리에게 겸허하신 어조로 아니라고,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가 낳은 녀성지휘자라고 힘주어 말씀하시고나서 녀성지휘자를 옆에 세우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녀성지휘자는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제도를 세워주시고 빛내여가시는 어버이수령님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사는 민족적긍지를 그때처럼 절절하게 느껴본적은 없었다.

그때일을 돌이켜보며 녀성지휘자가 어버이수령님께 지금껏 수령님의 품에서 행복만을 누리며 살아왔다고 눈물속에 말씀드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지휘자의 등을 두드려주시며 외국인들이 오겠는데 울지 말고 자신과 함께 그들을 마중하자고 하시고 외국손님들에게 우리 예술인들을 한사람한사람 소개도 해주시였다. 그리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으며 오찬회장에도 불러주시여 혁명가는 그 어떤 난관이 앞을 막아도 주저앉거나 물러서지 말고 혁명적락관을 가지고 뚫고나가야 한다는 참으로 뜻깊은 말씀을 해주시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조선의 새세대 예술인들을 키워주고 내세워주신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