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출판사 강분옥
2021.11.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그들은 학교에서 조밥만 자꾸 해준다느니, 부식물이 어떻다느니 하면서 밥타발까지 하였다. 한번은 어떤 학생이 기숙사 식당에서 저녁밥을 먹다가 조밥에 시래기국만 주니 식사질이 왜 이 모양이냐고 하면서 트집을 걸던 끝에 사감을 하는 황세일과 다투기까지 하였다. 황세일은 사감의 일을 아주 성실하게 하였다. 그런데 식사질이 조금만 떨어져도 학생들은 사감이 제구실을 못한다고 비난하였다.
나는 해방직후 의주에서 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사업하는 황세일을 만나 그와 함께 화성의숙시절을 회상한적이 있다.》 (《김일성전집》 제95권 175페지)
주체35(1946)년 10월 어느날 평안북도 의주군을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화성의숙시절의 사감이였던 황세일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도, 시, 군인민위원회 위원선거를 위한 의주군 의주면 청전동선거자총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떠나시기 전에 당시 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사업하고있던 황세일을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서는 그를 대번에 알아보시고 이게 누구인가고, 황세일동무가 아닌가고 하시며 못내 반가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장군님!》하고 흐느껴우는 그의 두손을 잡아주시며 이게 몇해만인가고, 어서 앉으라고 하시면서 옆자리로 이끄시였다.
이윽하여 그를 다정히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화전에서 헤여져 길림에서 만나던 때가 언제인가고 물으시였다.
《1927년 봄입니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가 화성의숙을 떠난것이 1926년말이였다고, 그때 나는 길림으로 가는 길에 어머님께서 계시는 무송에 들렸다가 다음해 정월에 길림으로 갔다고, 길림으로 가서 처음에는 오동진, 다음에는 리웅과 장철호의 집에 하숙을 정하고 길림육문중학교에 다니였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황세일동무의 집이 화전이였지라고 물으시였다.
《옳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늘까지 자기 집을 기억하고계시는데 대하여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저 동무의 집이 화전이였다고, 저 동무는 길림에서 우리와 같이 투쟁하다가 그후 다시 화전으로 나가 지하공청사업을 하였다고 소개해주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번은 동무가 성의껏 보내온 소포를 받았다고, 그런데 동무의 성의를 모른 사람들이 소포를 얼마나 험하게 다루었는지 광목에 싼 닭알은 다 깨지고 소포에 넣은 편지는 지워져서 보지 못하였다고, 그러나 광목만은 요긴하게 잘 썼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고 그에게 그때 소포를 받고 회답편지를 썼는데 받아보았는가고 물으시였다.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후 남만에서 화성의숙동창들인 최창걸을 비롯한 여러 동무들과 련계를 맺고 국민부상층의 완고한 민족주의자들과 일제와 만주반동군벌을 반대하여 투쟁하다가 모두 잘못되고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송구스럽게 올리는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 동무가 이렇게 살아남아있는것만도 다행이라고, 동무를 만나니 그때 같이 투쟁하던 동무들이 희생되고 체포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잠을 이루지 못하던 일이 생각난다고 갈리신 음성으로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다정히 바라보시며 황동무가 감옥에 들어가 오래동안 고생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나간 사연이나 들어보자고 이르시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무장투쟁로선을 받들고 왜놈들과 싸우다가 체포되여 몇해동안 감옥생활을 한 일, 감옥에서 나온 후 놈들의 감시와 박해가 심하여 변성명하고 피신하여 떠다니며 값없이 살던 일들을 두서없이 말씀드리였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혁명적지조와 절개를 끝까지 지켜낸 그것이 중요하다고, 제 이름 석자도 부르지 못하고 놈들의 학정밑에서 살아오자니 마음고생인들 오죽했겠는가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시여 깊은 추억속에 저 멀리 북쪽하늘가를 바라보시며 잊을수 없는 시절을 회고하시였다.
당시 화전에는 민족주의자들이 운영하는 화성의숙이 있었다. 민족주의사상에 물젖은 이 학교 선생들이 배워주는 교육내용과 투쟁방법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화성의숙에서 선진사상을 신봉하는 열혈청년학생들로 타도제국주의동맹을 뭇고 민족해방운동의 새로운 투쟁강령을 내놓았다. 그때 저 동무도 《ㅌ.ㄷ》의 한 성원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의 교시는 계속되였다.
그후 나는 《ㅌ.ㄷ》의 성원들과 길림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화성의숙을 떠나 길림으로 갔다. 길림에는 오동진, 김사헌, 리웅, 장철호를 비롯한 우리 아버님과 뜻을 같이하던 독립운동자들과 각이한 주의주장을 가진 정객들이 많았다. 서상파의 거두 신일용과 화요파 거두 김찬도 길림에 있었다. 그들은 인민대중의 힘을 조직동원하여 독립할 생각은 하지 않고 끼리끼리 모여앉아 세력다툼을 하면서 세월을 보내고있었다. 그래서 나는 민족해방운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황세일은 끓어오르는 감격을 억제할수 없었다.
세월은 망각을 동반한다고 하였지만 수십년세월이 흐른 그때까지 그 시절을 잊지 못해 추억하시며 한갖 사감에 불과하였던 자기를 《ㅌ.ㄷ》의 동지로 이토록 뜨겁게 대해주시니 정녕 위대한 수령님의 비상한 기억력과 고결한 의리의 세계에 탄복을 금할수 없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그에게 이제는 잃었던 나라도 찾았는데 우리 마음놓고 같이 살아보자고 교시하시였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은 태양의 빛과 열과도 같은 따뜻한 정으로 혁명전사들을 한품에 안아 크나큰 믿음을 주시고 온갖 사랑을 다 베풀어주신 불세출의 위인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