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 로암리 1호 고인돌무덤

 2017.12.11.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서 형성되고 발전하여온 단군조선시기의 문화, 대동강문화의 기본내용을 이루는 단군릉, 제단, 고대성곽, 고대부락터, 고인돌무덤을 비롯한 력사유적과 유물들은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우수한 문화전통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이다.

로암리1호고인돌무덤은 지금까지 알려진 고인돌무덤들가운데서 규모가 가장 큰 특대형의 단군조선시기의 무덤유적이다.

로암리는 황해남도 안악군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4km정도 떨어진곳에 있다.

로암리일대에서는 30여기의 고인돌무덤이 알려졌는데 리소재지에서 서쪽으로 100m정도 떨어진 포전과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3km정도 떨어진 화평부락일대에 분포되여있다. 규모가 가장 큰 특대형고인돌무덤으로 손꼽히는 1호고인돌무덤은 화평부락남쪽으로부터 400km의 거리에 있는 산봉우리들사이에서 발굴되였다.

뚜껑돌은 동, 서 두 고임돌우에 긴축이 남북방향으로 놓여있는데 많이 파괴되여 현재 남아있는 뚜껑돌의 크기는 길이 778cm, 너비 572cm, 두께 70cm이다. 제대로 남아있는 북쪽과 동쪽나래의 길이를 대칭시켜 복원해보면 뚜껑돌의 크기는 길이 910cm, 너비 640cm정도였다고 인정된다.

동, 서 두 고임돌의 밑부분은 지표면으로부터 90cm의 깊이까지 기초구뎅이를 깊이 파고 세웠다.

고임돌의 높이는 현재 무덤칸바닥으로부터 뚜껑돌까지 270cm이지만 기초에 묻힌것까지 계산하면 360cm이다.

서쪽고임돌은 남북모서리부분이 약간 떨어져나갔으나 아래우의 변 두리는 직선이고 전반적으로 타원형을 이루고있다. 고임돌의 밑부분의 두께는 55cm로서 두껍지만 우로 올라가면서 점차 얇아져 웃부분의 두께는 20cm이다.

서쪽고임돌의 안쪽벽면의 남, 북막음돌과 맞물리는 위치에는 2~3cm의 홈을 수직방향으로 팠는데 그 너비는 32cm이다.

남쪽막음돌이 섰던 위치에는 고임돌의 안쪽벽면에 무덤칸바닥에서부터 높이 230cm 까지만 홈을 팠고 북쪽막음돌이 섰던 위치는 무덤칸바닥에서부터 높이 80cm까지만 홈을 파놓았는데 이것은 고임돌에 홈을 일률적으로 파놓은것이 아니라 배가 나온 부분에만 특별히 홈을 파서 고임돌에 안기울임을 줄수 있게 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동쪽고임돌도 같은 생김새와 크기로 만든것이였지만 북쪽부분은 1/3 정도가 깨여져나갔다.

동, 서 두 고임돌은 각각 안쪽으로 5~7°씩 안기울임을 하여 세웠다.

막음돌과 고임돌을 든든하게 세우기 위하여 만든 홈자리는 로암리고인 돌무덤에서만 볼수 있는 고유한 현상이다.

남쪽막음돌은 두 고임돌의 남쪽끝에서 116cm안에 들어와 세웠던것인 데 혹심하게 파괴되고 밑뿌리부분만 남아있다. 현재 남쪽막음돌의 남은 높이는 120cm이고 두께는 44cm이며 두 고임돌의 기초보다 32cm얕게 묻혔다.

이 막음돌의 바깥부분인 두 고임돌사이에는 넙적한 한장의 판돌을 깔았는데 크기는 길이가 120cm이고 너비는 남족막음돌과 잇닿은 부분이 150cm, 바깥은 116cm이며 두께는 15cm이다. 막음돌과 고임돌이 맞물리지 못한 공간에는 납작한 돌들을 차곡차곡 깔아놓았다.

이것은 두 고임돌사이에 깔아놓은 부석이라고 인정된다.

북쪽막음돌의 웃부분은 깨여져나간 자리가 뚜렷하지만 밑부분은 두 모서리를 둥그스럼하게 가공한 그대로 남아있다.

이 막음돌의 밑부분도 두 고임돌의 기초보다 30cm얕게 묻혔는데 남은 것의 크기는 높이 190cm, 너비 160cm이고 두께는 36cm이다. 두 고임돌 안벽면의 홈자리와 두 막음돌의 위치로 보아 무덤칸의 크기는 길이 252cm, 너비 170cm, 높이 270cm이다.

무덤축조에 쓰인 석재는 이 지방에 흔한 화강석이다.

무덤칸바닥에서는 팽이그릇밑굽들과 돌활촉, 돌끝, 가락바퀴가 각각 1개씩 나왔다. 활촉은 점판암을 정교하게 갈아 만든 세모활촉으로서 남아있는 끝부분의 길이는 3.2cm이다.

끝은 등보다 날쪽이 넓고 짝날로 되여있는데 등쪽이 부러져 남은 길이는 4.7cm이고 날의 너비는 1.8cm이다.

가락바퀴는 점판암으로 만든 원반형으로 되여있던것이 절반부분이 깨여진것인데 직경은 6cm이고 구멍의 직경은 0.8cm이며 일부 격지가 떨어져나가고 남은 두께는 0.5cm이다.

질그릇쪼각들은 검은 갈색, 붉은 갈색을 띠는 팽이그릇쪼각들인데 가마밑처럼 도르라지거나 얼마간 납작한 밑창도 있다.

대동강문화의 기본을 이루는 고인돌무덤에 대한 연구성과자료들에 의하면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서 조사발굴된 고인돌무덤을 구조형식에 따라 침촌형고인돌무덤, 오덕형고인돌무덤, 묵방형고인돌무덤, 석천산형고인돌무덤으로 구분하고 매 형식에 따르는 고인돌무덤들을 다시 1형식, 2형식, 3형식으로 분류한 다음 그 시기를 밝혔다.

로암리고인돌무덤은 오덕형고인돌무덤이다.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서 조사발굴된 오덕형고인돌무덤의 형식분류에서 막음돌(문시설)의 차이는 주검칸의 벽체축조방식과 직접적으로 관련되고 무덤축조기술에서의 변천과정을 반영하는 기준으로 된다.

1형식의 오덕형고인돌무덤은 평행되게 세운 두 고인돌의 안쪽에 각각 들여다 세운 한쪽막음돌이 문돌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여있는것이고 2 형식의 오덕형고인돌무덤은 문턱돌이 있는것과 막음돌의 바깥에 막음돌 (문시설)을 견고하고 안전하게 세우기 위한 시설물인 부석이 있는것이다.

또한 한쪽막음돌의 옆모서리부분과 중간부분에 공간을 조성하여 문을 낸것을 3형식의 고인돌무덤으로 분류하였다.

로암리 1호고인돌무덤은 남쪽막음돌의 바깥부분인 두 고임돌사이에 있는 부석으로 인정되는 납작한 돌들을 차곡차곡 깔아놓았고 두 고임돌의 끝부분 안쪽에 홈을 주어 두 막음돌과 잘 맞물리면서도 안기울임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게 한것으로 하여 2형식의 오덕형고인돌무덤에 포함된다.

2형식의 오덕형고인돌무덤인 로암리 1호고인돌무덤은 우리 나라 중서 부지역에 분포되여있는 팽이그릇시기의 집자리들의 충서적인 선후관계에 따르는 편년체계에 기초하여 B.C.3 000년기말엽부터 B.C.2 000년기 초엽 까지 해당되는 시기의 유적이다.

고인돌무덤에서 뚜껑돌은 기념비적상징물로 되는것만큼 뚜껑돌의 크기에 따라 주검칸의 크기가 배렬되며 무덤의 규모와 급수적인 성격이 반영된다고 말할수 있다.

고대 우리 선조들이 살고있던 지역에서 알려진 고인돌무덤들가운데서 뚜껑돌의 길이가 490cm이상인것을 대형고인돌무덤으로 보고 그 이상 크기의 뚜껑돌을 가진 고인돌무덤들의 분포정형을 보면 뚜껑돌의 길이가 500Cm이상인 고인돌무덤은 평양일대에서 약 50기, 남부조선지역에서 24기, 중국동북지방에서는 8기가 알려졌고 뚜껑돌의 길이가 600Cm이 상인 고인돌무덤은 평양일대에서 약 20기, 남부조선지역에서6기,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3~4기가 알려졌다.

특히 로암리 1호고인돌무덤과 상원군 장리 2호고인돌무덤과 같이 뚜껑돌길이가 900cm이상인 특대형고인돌무덤은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수 없다.

로암리 1고인돌무덤에서 복원된 뚜껑돌의 무게는 102t에 달하며 고임돌이나 막음돌까지 포함한다면 이 고인돌무덤을 축조하는데 쓰인 석재의 총 무게는 200여t에 달한다고 볼수 있다.

건축학적으로 뚜껑돌의 무게가 50t인 고인돌무덤의 축조공사에 2 000~2 300여공수의 로력이 든다고 보면 로암리1호고인돌무덤을 축조하는데 든 로력공수는 그 4배이상에 달한다고 볼수 있다.

이것은 로암리 1호고인돌무덤이 당시 무제한한 권력과 재부를 가진 왕과 같은 특권계층의 인물이 묻힌 왕릉급에 해당되는 무덤이라는것을 보여주고 있다.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 로암리 1호고인돌무덤과 같이 왕릉급에 해당하는 특대형의 고인돌무덤이 다른 지역들에 비하여 수많이 알려지고있는것은 이 지역이 단군조선시기의 수도였으며 고인돌무덤들이 떼를 지어 집중적으로 분포되여있고 다른 지역들에서는 볼수 없는 초기형의 침촌형고인돌무덤들을 통하여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이 고인돌무덤의 발원지, 중심지라는것을 잘 알수 있다.

이와 같이 로암리 1호고인돌무덤은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이 단군조선문화의 중심이라는것을 과학적으로 밝혀주는 실물자료이며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우수한 문화전통을 자랑하는 후세에 길이 전해갈 우리 민족의 귀중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