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발해시기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건축유적가운데는 24개돌유적도 있다.
24개돌유적은 주추돌들을 한줄에 8개씩 3줄로 배렬하여 24개를 이룬 발해의 독특한 건축유적이다.
이러한 유적은 우리 나라와 중국 동북지방의 옛 발해령역에서 10여개정도 알려졌다.
우리 나라에서는 함경북도 청진시 송평구역, 함경북도 어랑군 회문리 등에서 24개돌유적이 드러났으며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흑룡강성 녕안시와 길림성 돈화시, 룡정시, 도문시 등에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함경북도 어랑군 회문리 24개돌유적을 들수 있다.
이 유적은 높이 1m의 기단우에 기초시설을 하고 길이, 너비, 높이가 70~90cm인 큰 돌을 한줄에 8개씩 3줄로 놓은것이다. 기단은 남북길이 19.2m, 동서너비 13.5m이고 돌줄의 전체 길이는 약 10m이며 줄사이거리는 3.9m이다. 돌밑의 기초시설은 너비와 깊이가 각각 1m정도 되는 홈을 길이 10m되게 파고 거기에 강돌과 진흙을 번갈아 다져 넣은 띠기초이다.
다른 24개돌유적들도 회문리 24개돌유적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한줄에 돌을 8개씩 3줄로 배렬한것, 돌과 진흙을 번갈아 다져서 만든 3줄의 띠기초가 있는것, 돌줄의 길이가 약 10m이고 너비가 7~8m인것, 주변에서 발해시기의 기와들과 살림용구들이 나온것 등은 모두 같다.
한줄에 8개씩 3줄로 된 주추돌의 배렬상태와 튼튼한 기초시설을 가진 높이 1m의 기단은 여기에 비교적 규모가 큰 건물이 세워져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또한 24개돌유적주변에서 드러난 발해기와들은 이 건물이 보통 평민들이 사용하던것이 아니라는것을 시사해준다.
24개돌유적이 어떤 성격의 건축물이였겠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들이 제기되고있는데 가장 유력한것은 국가적으로 존중되는 그 어떤 신성한 우상물을 안치해놓고 숭배하던 신전으로 보는 설이다.
그 근거는 우선 이 유적들이 서로 다른 지방에 위치하고있지만 단일한 설계에 의하여 만들어진 국가적성격이 강한 건물이라는것이다.
그 근거는 또한 건물의 구조구성이 신전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들을 갖추고있다는데 있다.
발해의 24개돌유적의 성격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구를 심화시켜야 하겠지만 이 유적은 발해의 력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의 하나로 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