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허순복
2020.11.2.
한평생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푸시려고 험한 농촌길을 많이도 걸으신 어버이수령님의 헌신의 로고속에는 강냉이농사에서 위대한 전변을 안아오신 가슴뜨거운 이야기도 깃들어있다.
우리 나라에서 강냉이를 많이 심기 시작한것은 당 제3차대회가 있은 다음부터였다.
전후 어려운 식량문제를 풀기 위하여 《강냉이는 밭곡식의 왕이다.》는 구호를 내놓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안남도 개천땅에서 강냉이농사의 경험을 창조하도록 하시고 그를 일반화하여 온 나라에 강냉이농사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알곡생산을 늘이기 위하여서는 다수확작물을 많이 심는것이 중요합니다.
밭작물로서는 강냉이를 많이 심어야 합니다.》 (《김일성전집》 제18권 492페지)
전후시기 우리 나라에서 알곡문제를 푸는것은 매우 절박한 문제로 나섰다. 정전이 되였지만 적들의 새 전쟁도발책동으로 하여 정세는 의연히 긴장하였고 3년간의 전쟁으로 우리 인민들의 생활은 아직 펴이지 못하였으며 당안에 숨어있던 반당반혁명종파도당들은 우리 당에 악랄하게 도전하여나섰다.
그처럼 어려운 때에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풀고 인민생활을 높이며 인민경제를 급속히 발전시키고 안팎의 원쑤들의 책동을 짓부셔버리기 위하여서는 많은 식량이 요구되였다.
그런데 정전직후까지만 하여도 우리 농민들은 밭에 강냉이보다 조나 수수 같은것을 많이 심었는데 부침땅이 제한되여있는 우리 나라에서 기껏해야 정보당 800㎏이나 1t밖에 나지 않는 조나 수수를 심어가지고서는 식량문제를 풀수 없었다.
대대로 피나 조, 보리농사를 해온 농민들은 땅이 메마른데 강냉이를 심어도 되겠는가, 해마다 강냉이를 심으면 이삭이 작아지지 않겠는가 하는 걱정을 앞세우며 강냉이농사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있었다.
이처럼 조상때부터 내려오는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농민들을 강냉이농사에로 돌려세우기 위하여 주체45(1956)년 1월 평안남도당 전원회의에 친히 친서를 보내시여 평안남도 전체 밭면적의 50%이상에 강냉이를 심을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2월 2일에는 숫눈길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개천땅을 몸소 찾아주시였다.
내리는 함박눈을 다 맞으시며 군안의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오후에는 룡진리 서참농업협동조합(당시)을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올해에도 이 조합에서 조를 적지 않게 심을것으로 계획하고있는데 조를 심는것보다 강냉이를 심는것이 로력도 적게 들고 여러모로 좋다고 하시면서 서참농업협동조합에서 올해부터 조대신 수확고가 높은 강냉이를 많이 심을데 대한 강령적인 교시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이튿날인 2월 3일부터 5일까지 열린 개천군당대표회에 참석하시여 대표들의 토론도 하나하나 들어주시고 알곡생산을 늘이자면 밭다수확작물인 강냉이를 많이 심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농사는 아무리 잘하여도 정보당 1t밖에 낼수 없지만 강냉이를 심으면 2t이상 낼수 있다고 알기 쉽게 가르쳐주시였다.
계속하시여 개천군의 올해 알곡생산목표가 2만t이라고 하는데 적어도 2만 5 000t의 알곡을 생산할 목표를 내세우고 투쟁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강냉이농사를 잘하라고, 강냉이만세를 부르자고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시였다.
강냉이만세를 부르자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그 말씀은 오랜 세월 내려오던 조농사에 대한 미련을 깨뜨리고 강냉이농사의 새 력사를 알리는 장엄한 선언이였다.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주체45(1956)년에 개천군에서는 강냉이재배면적을 대대적으로 늘이고 선진영농방법을 널리 받아들여 해방전에 비하여 무려 2배나 되는 알곡을 생산하였으며 전국적으로는 전후 2년동안이나 계속된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알곡생산이 287만t에 이르러 전쟁전수준을 8%, 해방전 주체33(1944)년 수준을 19%나 넘어서게 되였다.
하기에 강냉이농사를 완고하게 반대하던 일부 로인들까지 팔뚝같은 강냉이이삭을 쥐고 《개천에 운이 텄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라는대로만 하면 만사가 틀림없다.》고 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리하여 개천땅은 강냉이농사의 새 력사가 펼쳐진 영광의 땅으로, 강냉이농사의 본보기고장으로 되였으며 온 나라에는 강냉이농사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모든 협동농장들에서 강냉이영양단지를 하여 모를 옮겨심는 방법으로 강냉이농사를 하도록 재배방법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리하여 기껏해야 정보당 2t밖에 내지 못하던 강냉이농사에서는 위대한 전변이 일어나 한랭전선의 영향으로 세계가 농업위기, 식량위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1970년대에도 우리 나라에서는 그 3~4배나 되는 7~8t 최고 20t까지 내는 자랑찬 성과를 거두게 되였다.
나라의 농업발전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려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냉이는 파악이 있는 다수확작물이라고, 강냉이는 1대잡종종자와 물, 비료만 있으면 정보당 10t은 말할것도 없고 그 이상도 낼수 있다고 하시면서 흙깔이를 하고 비료도 많이 치고 관수를 잘하여 강냉이농사를 계속 힘있게 밀고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참으로 어버이수령님의 헌신의 로고에 의하여 이 땅에는 강냉이농사의 새 력사가 펼쳐지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