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 리순영
2020.7.8.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공업화를 실현한 다음 기술혁명의 중요한 과업으로서 중로동과 경로동의 차이, 농업로동과 공업로동의 차이를 없애며 녀성들을 가정일의 무거운 부담에서 해방할데 대한 3대기술혁명과업을 내놓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6권 84페지)
흘러간 력사의 세월을 돌이켜볼 때 녀성이라는 부름은 차별과 멸시의 대명사로 불리여왔다.
우리 나라는 남존녀비의 봉건적질곡이 우심하였고 40년간이나 일제의 강점하에 있었으므로 세계문명이 고도로 발전하던 20세기 중반기에 이르도록 녀성들은 응당한 권리를 가지지 못하고있었다.
이러한 실태를 제일 먼저 헤아려주신분은 바로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해방후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남녀평등권법령을 발포하시여 녀성들에게 남자들과 꼭같은 사회적지위와 권리를 안겨주시였으며 우리 공화국의 첫 헌법에도 남자들과 동등한 녀성들의 권리를 규정해주시였다.
력사의 흐름속에 금문자로 수놓아진 하많은 이야기중에 우리 녀성들을 가정일의 무거운 부담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이름없는 한 밥공장에 친어버이의 로고를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의 전설을 여기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주체58(1969)년 6월 어느 일요일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일이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몸소 중성밥공장에 나오시였다.
먼저 제분기실에 들리시여 국수누르는 모습을 보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비좁게 꾸려진 떡가공실에 들어서시였다.
이때 안에서는 한 종업원이 식칼로 기계에서 나오는 긴 흰쌀떡을 잘라내고있었다.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떡가공실을 좀 더 크게 만들고 떡자르는 일을 기계화하여야 하겠다고 이르시였다.
순간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깊어지는 생각으로 하여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떡을 자르는 세부적인 공정까지 기계화하여 종업원들의 로동부담을 덜어주시려는 다심하고 웅심깊은 어버이의 그 사랑에 모두가 목이 꽉 메였던것이다.
이어 뽀얀 김이 꽉 들어찬 밥가공실에 들리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밥가마와 밥죽을 비롯한 주방도구들을 일일이 살펴보시고 공장뜰안에 나오시여서는 종업원이 몇명이며 생활비는 얼마인가, 종업원들이 모두 녀성인가 등에 대해서 하나하나 료해하시고 나서 국수는 어떻게 공급하는가, 가루를 가져오지 않고 국수를 요구할 때에는 어떻게 하며 어떤 가루를 가져오는가, 국수값은 얼마인가 등 밥을 바꾸는 가격과 공급실태에 대해서도 일일히 물어주시였다.
여러가지 음식의 공급방법과 가공비를 일일히 알아보시면서 인민들의 생활에서 수입과 지출은 맞는가, 밥공장운영에서 수지타산관계는 어떠한가를 몸소 헤아려보시며 수지타산관계도 중요하지만 우리 녀성들을 가정일의 무거운 부담에서 벗어나게 하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시였다.
예로부터 가정일이라고 하면 녀성과 떼여놓고는 생각할수 없는것으로 되여왔다.
더우기 밥짓는 일은 초보적으로 생각할 때에도 녀성이 해야 하는 일로 간주되여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오직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은 녀성들이 마음놓고 사회활동을 할수 있도록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 탁아소와 유치원, 세탁소를 비롯한 온갖 편의시설들을 다 마련해주시고 오늘은 또 가정주부인 녀성으로서의 응당한 사명으로 되여온 밥짓는 부담마저 덜어주시려고 이렇듯 로고를 바치신것이다.
정녕 우리 녀성들을 봉건적질곡에서 해방시켜주시고 남성들과 꼭같은 권리를 가진 나라의 당당한 주인으로, 혁명의 한쪽수레바퀴를 떠메고 나가는 혁명가들로 키워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사랑이야말로 고향집 친정아버지의 따뜻한 정, 살뜰한 손길이였고 그것은 위대한 장군님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에 의하여 변함없이 이어지고있다.
이처럼 우리 녀성들은 대를 이어 베풀어지는 절세위인들의 전설같은 사랑속에 세상에서 가장 존엄높은 녀성들로, 제일 행복한 녀성들로 참된 생을 빛내여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