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민은 항일의 불바다, 피바다를 불굴의 신념과 강의한 의지, 혁명적락관주의를 지니시고 헤쳐오신
우리 인민과 세계혁명적인민들이 시대의 혁명송가로 높이 구가하는
해방이 된 이듬해인 주체35(1946)년 5월 29일부 당시 《로동신문》의 전신이였던 《정로》에는
《할머니의 극진한 심정은 잘 알았습니다.
남아 한번 국사에 몸을 바친 이상 그 몸은 완전히 나라의것이요 민족의것인것은 두말할것 없습니다.
이제 멀지 않어 반가히 할머니앞으로 돌아갈 날이 있사오니 안심하시고 계십시오》
그리운 할머니에 대한 뜨거운 정과 자신의 결심을 피력한 이 편지는
편지의 자자구구에 맥맥히 흐르는 혁명위업에 대한 헌신성, 그 위업에 대한 굳은 확신, 미래에 대한 락관은
혁명가의 인생관이나 인간적품격, 그들의 생활신조와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점은 신념과 의지,락관에 있다.
신념과 의지, 락관주의가 혁명가가 갖추어야 할 기초적자질이지만 고정불변한것이 아니며 환경과 조건에 따라 더욱 굳건해질수도 있으며 약화될수도 있고 변질될수도 있다.
국제당이 강요한 열하원정으로 동북의 항일무장부대들은 군사작전에서 실패를 거듭하고있었고 국내에서는 일제가 조작한 《혜산사건》에 의하여 항일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이 커다란 타격을 받고있었다.
게다가 적들의 《귀순공작》이라는 비렬한 방법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동요가 일어나고있었으며 신념과 의지가 박약한 사람들은 혁명가로서의 존엄을 버리고 배신과 굴종의 길로 굴러떨어지고있었다.
역경에 처하면 인간이 지닌 신념과 의지의 진가가 나타난다.
혁명의 초행길에 결의도 높이 다지고 의기양양하게 나섰던 사람들이 혁명앞에 난관이 조성되자 감옥에서 곤장 몇대에 전향하고 적의 회유기만에 투항, 귀순한것은 례외없이 혁명위업에 대한 굳은 확신, 그 위업을 위해 사사로운 감정을 이겨내는 강의한 의지를 소유하지 못하였기때문이다.
개인적인 감정은 배반을 낳는다.
배반이라는것은 어떤 경우에나 자기라는 개념에서 생기지 우리라는 개념에서는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
투항, 변절, 귀순한자들은 모두 자기자신만을 생각하는 개인적인 감정을 이겨내지 못한자들이다.
그러나 편지의 자자구구에 있는바와 같이
왜 우리
그러나
바로 이러한 투철한 신념과 의지, 락관을 지니셨기에 혁명의 변절자에게 자신의 밀서를 전달할데 대한 관용과 아량을 베푸실수 있었다.
관용과 아량은 강자에게서만이 나올수 있는 너그러움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신심이 없고 동요하고 불안하며 초초한 사람에게서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과 아량이 나올수 없다.
관용과 아량은 인간적인것에 대한 너그러운 리해이며 그릇된 사상과 부패한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고 이끌어주는 진실한 정이다.
그때
혁명의 변절자에 대한 처단이 아니라 남아있는 한쪼각의 량심을 보시고 용서하고 밀서를 전달하도록 한 력사에 전무후무한
그 손길과 정에 의해 배신자 박차석은 량심과 체면만이라도 되찾게 되였으며 할머니에게 편지를 전달할데 대한 약속을 지키였다.
전향자를 통하여 전달한 밀서, 그것은 신념과 의지가 담겨진 편지를 신념과 의지가 베푼 아량으로 전달하도록 한 편지였다.
항일의 그 나날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