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간또땅을 조선사람들의 피로 물들인 일제의 극악한 만행

 2019.5.28.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제는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갔거나 살길을 찾아 건너간 우리 동포들도 야만적으로 학살하였습니다. 간또대지진때 감행한 학살만행은 그 대표적실례로 됩니다.》 (김정일전집》 제5권 420페지)

오늘도 우리 인민은 간또라고 하면 1923년의 대지진을 계기로 감행된 일제의 조선인대학살을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왜 일제가 간또대지진을 계기로 조선인대학살만행을 감행하였는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간또일대에서는 일본력사상 리히터척도로 7.9의 강한 지진이 일어났다. 돌발적인 대지진과 함께 일어난 화재는 간또일대의 대부분지역을 순식간에 재더미로 만들었다.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행방불명자와 부상자는 수십만명이였으며 한지에 나앉은 주민은 수백만명이나 되였다.

간또대지진은 일제에게 심대한 타격으로 되였으며 일본인민들의 민심을 소란케 하였다. 대지진으로 일본인민들속에서는 아무런 구호대책도 세우지 않는 일본반동정부에 불만을 품고 그에 항거하기 시작하였다.

당황한 일본당국은 극도에 이른 민심의 불만의 창끝을 재일조선인들에게 돌려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눅잦히는 한편 이를 대대적인 조선인탄압과 학살의 기회로 삼을 무서운 음모를 꾸미였다.

9월 1일 오후 정보부에 민심안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데 대한 명령이 하달되였다. 이에 따라 정보부에서는 《조선인이 방화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친다.》 등의 류언비어를 날조해냈다. 뒤이어 교활한 일제는 조선인살륙의 필요성과 합법성을 일본인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하여 《조선인폭동설》을 날조해내고 조선인을 적으로 규정하고 무자비하게 학살할데 대한 내용을 담은 계엄령을 일본《천황》의 《칙령》으로 공포하였다.

일본법에 의하면 계엄령은 전시 혹은 사변이 발생한 경우에만 선포할수 있었고 사변인 경우에도 반드시 내란 또는 폭동의 발생이 인정되여야 내리게 되여있었다. 그러나 자연재해구제와는 관계없이 일제는 무고한 재일조선인을 터무니없이 적으로 규정하고 탄압할데 대한 계엄령을 공포하였던것이다.

일본반동정부의 직접적인 관여하에 가장 악질적인 장교들로 간또계엄사령부가 조직되였으며 수만명에 달하는 군대와 경찰무력이 간또일대에 집결되고 불량배들로 《자경단》 등이 조직되여 군대와 경찰들과 협동하였다.

경찰소, 파출소들에는 《불량조선인들이 봉기》하였다는 날조설과 함께 《반항하면 죽여도 일없다.》는 게시문이 나붙었다. 경찰관들은 메가폰을 들고 도시를 순회하며 《조선인들의 폭행에 대하여서는 죽여도 일없다.》고 일본인들에게 공공연히 선동하였다. 일제의 극악무도한 조선인집단살륙범죄의 막은 이렇게 열렸다.

그러면 일제살인귀들이 조선사람들을 어떻게 죽이였는가?

일제살인귀들은 조선사람을 보기만 하면 쏴죽이고 찔러죽이고 목을 매달아 죽이고 배를 갈라죽이고 눈알을 빼고 사지를 찢어죽이였으며 사람들을 불태워죽이거나 물에 던져 죽이는 등 온갖 야수적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인간백정들은 《오래간만에 법이 허락하는 사람잡이이니 흥이 났다. 전주대에 쇠줄로 잡아맨 후 때리고 차고 쇠붙이로 머리에 구멍을 뚫고 참대창으로 찔렀다.》고 자랑하면서 쾌락에 들떠다니였다. 피에 주린 악당들은 길목마다 검문소를 만들어놓고는 조선사람들이 발음하기 힘들어하는 까다로운 일본말을 시켜보면서 조선사람을 골라내여 그 자리에서 가차없이 죽이였다.

간또대지진참변을 직접 목격한 일본인들은 조선인학살에 대하여 《…칼이 없는자들은 톱을 들고나와 산 사람의 팔다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경찰서안은 피가 가득차서 장화를 신지 않고서는 발을 옮겨디딜수조차 없었다.》, 《…한 애젊은 조선녀성의 시체도 있었다. 그 녀성의 배는 갈라져있었고 6~7개월쯤 되여보이는 태아가 창자속에 딩글고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너무나도 놀라 옆으로 뛰면서 물러섰다. 우리 일본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잔인한짓을 했단말인가.…내가 일본사람이라는 수치감을 이때처럼 절감하기는 처음이였다.》라고 증언하였다.

간또지방은 말그대로 무고한 조선사람들의 피로 물들었다. 일제에게 무참히 학살당한 조선사람들의 수는 무려 2만 3 000여명을 헤아렸다.

실로 간또지방에서 감행된 조선인대살륙은 그 목적과 실행에 이르기까지 일제의 주도세밀한 계획밑에 조작된 야만적인 조선인집단학살사건, 반인륜적인 대살륙만행이였다.

일본반동들은 식민지통치시기에 일제가 감행한 조선인대학살만행을 성근하게 사죄하고 배상하려고 하는가?

패망후 현재까지 일본당국은 간또대학살만행에 대한 그 어떤 죄의식과 책임감도 느끼지 않고있으며 《유감의 뜻을 표명할 계획이 없다.》는 후안무치한 망언만 줴치고있다.

일본반동들의 철면피한 태도와 온당치 못한 망언들은 일제의 조선인살륙의 범죄에 죄를 더 쌓는 행위로밖에 달리 될수 없다.

일제가 저지른 죄악은 결코 지울수도 가리울수도 없다.

오늘 간또대지진당시 일제의 조선인학살만행의 진상을 보여주는 력사자료들은 계속 공개되고있다.

몇해전 일본의 가나가와현 요꼬하마에 있는 한 극장에서 간또대지진당시 일제가 감행한 조선인살륙만행을 보여주는 연극공연이 진행된 사실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있다.

연극에서는 일제군경들과 《자경단》원들이 조선사람색출에 피눈이 되여 날뛰는 장면들과 경찰이 확성기를 들고 거리에서 조선인학살을 부추기는 장면 등 일제가 조선사람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하는 장면들을 력사적사실에 기초하여 펼쳐보이고있다.

이 연극의 대본을 쓰고 연출한 일본인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 간또대지진에 대하여 기록한 일기를 발견하였다. 아버지는 14살때 일제의 피비린내나는 조선인살륙만행을 목격하였다고 한다.

연극을 상연하면서 그는 사람들이 간또대지진당시 일제의 조선인학살만행의 진상을 똑똑히 알게 하기 위해 아버지의 일기와 력사기록을 참고하여 연극을 창작하였다고 말하였다.

연극을 본 일본사람들은 요꼬하마는 조선인학살의 진상이 가장 은페되여있는 곳이다. 간또대지진당시에 학살된 조선사람의 절반이 이곳에서 잔인하게 살해되였다고 주장하였다.

일제가 조선인민에게 들씌운 불행과 고통은 결코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뀐대도 지워질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