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나라의 독립을 성취하기 위하여서는 2천만 우리 인민이 단결하여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자그마한 반일적인 요소라도 적극 찾아내여 그것을 귀중히 여기고 로동자, 농민은 물론 지식인, 종교인, 상공인, 민족주의자들까지도 반일의 기치하에 묶어세워야 합니다.》 (
1920년대말
하늘아래 첫동네라고 불리우는 안도현 내도산마을은 백두산기슭의 울창한 밀림속의 산간벽촌으로서 독립군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마을이였다.
그러나 임무를 받고 마을에 들어갔던 조직성원은 난관에 부딪치게 되였다.
내도산마을에는 주로 최가, 김가, 조가성을 가진 사람들만이 있었는데 그들은 천불교를 믿으면서 바깥세상과 담을 쌓고 서로 삼각혼사를 맺고 살고있었다. 이런 조건으로 하여 마을은 천불교신자들의 친척관계로 얽혀져있었으며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발을 붙이기가 매우 힘들었다.
이러한 실태를 보고받으신
천불교신자들은 마을에 《천불사》라는 절간을 지어놓고 열흘이나 한주일에 한번정도씩 가서 기도를 드리였다. 신자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고구려사람들처럼 머리를 우로 틀어올리고 울긋불긋한 옷차림으로 한데 모여들어 꽹과리와 제금을 치고 북과 목탁을 두드렸는데 덩덕궁덩덕궁하는 소리가 아주 장엄하였다. 그래서 절간이름마저 《덩덕궁》이라고 지었다는것이다.
천불교교주의 집을 찾으시여 이야기를 나누시던
종곡을 하려고 간수해두는것인가고 물어보시는 그이께 조직성원은 불공을 드릴 때 쓰는 기장이라고 대답올리였다.
논농사를 하지 못하는 이 고장 사람들은 불공을 드릴 때 백미대신 기장쌀을 썼는데 어느 집에서나 기둥이나 천정같은데 기장이삭을 매달아두고있었다. 먹을것이 없어 끼니를 번지는 때에도 그들은 이 기장에 절대로 손을 대지 않았다. 다만 백두산절간에 불공을 드리러 갈 때에만 그것을 절구에 정성껏 찧은 다음 똑같은 크기의 쌀알만 하나하나 모아 참지에 싸두었다가 깨끗한 샘물에 제밥을 짓군 하였다.
이것을 보고 그는 천불교때문에 내도산사람들이 그만 다 환장하였다고, 사람들의 얼을 다 뽑아가는 절에 불을 지르고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치밀 때도 있다고 하면서 이런 종교쟁이들을 새 사상으로 개조하는것이 과연 필요하며 가능하겠는가고 생각하면서 자기의 생각을
그러나
이처럼